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8

#Day 8. 빠이

by J임스

Day 8.


새벽녘에 잠시 깼다가 애매한 시간이라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다.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침을 먹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되었다. 전형적인 늦잠러의 아침. 휴대폰을 보니 이곳 빠이에서 만난 K가 카톡을 보냈다.


"형님, 오늘 어디 가세요?"

"글쎄.. 오늘은 카페라도 가서 밀린 작업이라도 할까 싶은데?"

"같이 가요 형, 그럼."

"그럽시다."


점심은 각자 해결하기로 하고 다시 어제 만났던 그 자리에서 K와 조우했다. 워킹 스트리트의 시작점인 사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미팅 포인트가 되었다. 워킹 스트리트를 따라 걸으면서 적당한 카페를 찾아 나선다. 우선 인터넷이 되는 곳일 것, 다음은 영상 작업을 하는 K군의 노트북 충천을 위한 콘센트가 있는 곳, 그리고 잔고장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연식(?)의 내 허리와 엉덩이를 위한 쿠션이 있는 곳. 써놓고 보니 괜히 카공족 같은 느낌이다. 다만 과거 커피숍을 운영했던 경험(망했다)으로, 평소 진상 고객의 정도를 얼마큼 가늠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부담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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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카페에는 둘이 앉으면 수다가 기본이다. 할 일이 제 아무리 많다고 해도 여간 독하지 않으면 일에 집중할 수 없는 일이다. 두 남자는 사이에 음료 두 잔에 각각 15인치와 13인치 노트북을 추가로 두고 어제의 진중한 얘기들에 치여 나누지 못한 가벼운 사담을 주고받았다. 마을의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카페에서 한 시간 가량을 보내고 나니 음료 잔도 비고 서로의 작업에도 진척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적당한 시간에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빠이 이후의 여행과 여정을 위해 예산을 절약 중인 K군과 나의 여행 스타일이 꼭 맞지는 않았으므로 남은 하루는 다시 각자 쓰기로 하고 헤어졌다. 솔직하면서도 예의가 바른 K와의 인연은 여행을 떠나서도 계속 이어질 것 같다는 감각 같은 것도 있었으므로 굳이 무리해서 서로의 일정을 이어 붙일 필요는 없을 일이다.


"형, 진짜 형하고 같이 여행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니야.. 나는 짧게 보는 게 좋아. 사실 같이 다니면 피곤한 타입일 걸."

"여행 콘텐츠도 만들고 동영상도 같이 만들고 진짜 좋을 것 같은데."

"그런 대단한 작업을 하기에는 형은 이제 열정이 너무 식었다, 야."


"인생이 기니까 시간을 두고 또 같이 할 기회를 보자. 그때가 되면 재밌게 하고."

"예, 형."


농구를 좋아하는 덕에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아마추어 농구팀에 몸을 담고 있다. 팀에는 (타 종목)국가대표도 있고 체대생도 많고 기본적으로 운동을 평균 이상으로 하는 사람들이라 소위 말하는 '운동하는 후배'가 주변에 많은데 사실 K의 느낌이 꼭 그렇다. 건강한 몸에 깃든 건강한 마음의 소유자. 그래서인지 더 정이 가기도 하고-


멋진 형(선배)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차근히 마을을 둘러본다. 걸어서도 볼 수 있는 마을을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니 정오가 지나 한껏 뜨거워진 태양 아래서도 땀 한 방울 흘릴 일이 없었다. 가볍게 스로틀을 당기고 휘파람을 불면서 몸을 스치는 미풍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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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도로에서 꼭 같이 느릿한 속도로 스쿠터를 몰고 오는 여성의 품에 강아지가 앉아 있다. 아니, 정확히는 강아지가 서있다. 사람마냥 핸들바를 잡고 혼자 힘으로 서있는 강아지가 하도 귀엽고 영특하여 로시(난테)를 돌려 운전자(정확히는 강아지)를 따라갔다. 주차를 해두어도 군말 없이 주인을 기다리는 녀석이 너무 신기해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주인분이 그런 나를 보더니 익숙한 모습인지 함께 잠시 세워둔 바이크를 보고는 같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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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8


전 국왕(라마 9세)의 영향으로 태국에서는 애견 문화가 발달해있다. 태국의 국민견(犬)으로 불리던 '통댕'의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본래 유기견이었던 강아지를 故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거두어 통댕(Tongdaeng)이라는 이름을 주고 기르게 되는데 국왕과 왕실에 대한 존경이 대단히 큰 태국인들의 정서상 이는 당연히 금세 화제가 되었다. 통댕 역시 국왕과 온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일약 견생역전(犬生逆轉)의 스타가 되었으며 국왕이 발간한 책(당연히 베스트셀러)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매너와 공손함을 갖추고 왕실의 의전에도 익숙한 통댕은 여성에게 붙이는 존칭인 '쿤'으로 불릴 정도(참고로 암컷이다)로 인기가 많았다. 자연스레 국민들도 가정에서 개를 기르는 애견 문화가 발달했고 지금까지도 많은 태국 가정에서는 애완견을 키운다. 하기사 굳이 애견이 아니더라도 태국은 어디를 가도 개가 많다. 불교의 국가답게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으니 편의점이나 가게 앞에 몇 마리씩 널브러져 있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 포인트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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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8


동네 어귀에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시장이 있다고 하여 찾아가 본다. 확실히 마을의 중심가인 워킹 스트리트를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물가가 확연히 다르다. 태국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물건에 대해 묻고 가격을 흥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시장을 둘러보는 일을 이곳 태국에서 하나의 취미로 여기고 있다. 태국이 지내기에 가장 편한 부분 중에 하나가, 상대가 외국어를 모르더라도 가격을 부르고 답하는 과정에서의 덧붙이기(덤터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불교의 나라인 까닭에 현생의 업보가 후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으므로 이런 부분에서는 상당히 여행자에게 편하고 안정감이 있다. 물론, 여행자를 전문으로 상대하는 상인(장사치)들에게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이 있다. 특히나 방콕, 파타야, 푸켓 등의 주요 관광지에서는 섣부른 결정과 판단은 조금 경계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곳 빠이(Pai)는 마을이 작고 외진 덕에, 관광객들이 크게 증가함에 따라서 그냥 물가가 전체적으로 조금씩 상승한 상태로 보인다. 이 또한 여행의 생리라고 생각하니, 구태여 좋을 것도 또한 나쁠 것도 없었다. 다 살아가고 살아지는 순리리라-


지리적 위치 덕분에 시간적 제약 혹은 멀미에 대한 부담감이 커서 빠이를 방문하지 못하는 여행자가 있다면 비행기 편을 이용할 수도 있는 것 같다. 마을에서 전단을 보니 치앙마이에서 항공편으로 빠이를 왕복할 수 있다. 이런 것이 있었나? 산자락 어드메에 작은 공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다만 사진이 프로펠러 비행기를 나타내고 있었으므로 몇 차례의 '난기류 다이어리 in 프로펠러 비행기'를 경험한 한 사람으로서는, 탈 일이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개인적 경험과는 반대로 해당 구간의 비행은 대부분 안정적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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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하루였다. 오늘은 조금 걷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 로시(난테)를 주차하고 나왔다. 하릴없이 대충의 방향으로 길을 걷다가, 5-10분 간격으로 멈추어 근처 골목길을 돌고 또다시 새로운 방향으로의 걷기를 반복하며 빠이를 즐겼다. 시장에서부터 작은 사찰에 이르기까지 마을과 오늘이라는 하루가 내는 분위기는 다르지 않았지만, 그 속에 제 각각의 모습으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냥 관찰하며 즐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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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저물어 갈 때 즈음 숙소로 돌아와 가볍게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왔다. 어제 먹었던 버거집이 너무 취향에 잘 맞았으므로 새로움을 찾기보다는 또 하나의 익숙함을 만들기 위해 구글 지도에 찍어둔 위치로 다시 찾아갔다. 숙소를 나선 시각부터 내리던 부슬비가 도중 큰 소나기로 바뀌었다. 급하게 비를 피하기 위해 처마가 있는 타투(Tatoo) 샵에 붙어 섰다. 한글이 적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주인장이 누군가에게 멋진 타투를 새겨주고받은 감사의 표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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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8


대체로 태국에서의 비는 스콜성 강우라서 하늘에 구멍이 난 듯이 내리다가도 30분 안에 멈춘다. 날씨 때문에 여행을 걱정하는 여행자들이 있다면 이 변덕스러운 날씨도 나름 여행의 한 페이지 추억이 되리라- 라고 변명해본다. 물론 비가 온 후에는 맑음이 있으니, 나는 내심 그 맑음을 기대하며 지나가는 비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햄버거 가게를 찾아가는 길에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인 J를 만났다. 워킹 스트리트 골목을 서로 스치는 길에 그녀의 귀에 꼽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볼륨이 하도 커서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래도 한국인인 것 같아 말을 걸었다.


"한국인이세요? 지금 저녁식사하러 가는 길인데 일행이 없으시면 같이 식사하실래요?"

"아, 네. 저 근데 밥을 먹어서.."

"그럼 같이 콜라라도 마셔요. 제가 살게요. 혼자 계속 밥 먹으면 심심해서."


굳이 귀가 먹먹할 정도로 음악을 듣고 길을 가는 사람을 붙잡고 세웠으니 말을 걸어두고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 저녁식사 자리에 합석해줄 것을 물었다. 다행히도 그녀가 머뭇거림 없이 환한 미소로 화답하여 우리는 이내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J는 나와 비슷하게 홀로 느릿한 속도로 한 곳에서 오래 머물며 여행하기를 좋아하는 여행자 같았다. 방콕에서 한 달 정도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치앙마이, 빠이 쪽을 한번 둘러볼 요량으로 올라왔다고 한다. 훤칠한 키에 누가 봐도 아름다운 미소와 순하고 호기심 많은 사슴 눈을 가지고 있다. 첫 만남부터 홀로 햄버거를 우걱우걱 입에 넣으며 대화를 이어가는 게 조금 미안했지만, 호탕한 그녀의 반응과 친절한 화술에 그간의 외로움이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 서로의 여행 이야기와 신상을 조금 업데이트하고 자리를 옮겨 맥주를 한잔 마시러 가기로 한다.


지코가 사라진 지코바(Jikko's Bar)에 가서 반쯤 젖은 방석에 서로 몸을 기대고 앉아서 여행 얘기를 지나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한다.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린 J가 그 생각의 깊이와 은연중 상대의 의중을 읽고 배려하는 모습은 나보다 훨씬 성숙하구나- 라고 느껴졌다. 대학교를 지나 곧바로 직장생활을 하고, 다시 희망하는 바가 생겨 퇴직 후 대학으로 돌아갔다는 그녀를 보면서 'YOLO'라는 단어에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과 원하는 바를 향해 노력할 줄 아는 '용기'가 덧붙여졌다. 여행이 끝나면 동시에 방학도 끝나기 때문에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니 시간이 빠르게 갔다. '미인과 있으면 1시간이 1분처럼 느껴지고 뜨거운 난로 위에서는 1분이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진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이 과연 사실이다. 상대성 원리라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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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8


"2차?"

"좋죠."


술도 못하는 주제에 대화에 취해서는 호기를 부려본다. 1차라고 해봤자 각자 마신 맥주 2병이 전부다. 그래도 그녀나 나나 스치는 시간을 인연으로 만들기 위해서,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연설에서 언급했던 '점을 이어 직선으로 잇기 위한' 서로의 암묵적인 성의와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녀와 술잔을 부딪히는 동안 한시도 지루함이 없었다. 이른 밤을 스치고 간 물기가 채 가시지 않은 길바닥 위로 가로등 불빛이 일렁이는 밤거리를 돌아오면서, 우리네 인생에도 이처럼 다채로운 색깔과 풍경으로 물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 주행거리: 0.5KM

숙소 정보: Baan Kon Pai (아고다)



+)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의 글 형식(본 양식)을 확정함. 이어지는 인연.

-) 여행 기록(글)과 사진의 정리가 계속 지연되는 중.

=) 미모의 J를 만나고 YOLO의 참모습을 보다.


&) 오늘의 OST-

https://youtu.be/yuFI5KSPAt4

Red Hot Chili Peppers - Snow (Hey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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