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사이클 다이어리 in Thailand #9

#Day 9. 빠이, 치앙다오

by J임스

Day 9.


빠이를 떠나기로 한 날. 우려와는 달리 피로도는 조금 있었지만 숙취는 없었다. 산 공기가 맑아서 그런 건가- 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렸다. 세계여행자인 K군, 간밤에 만난 J와의 짧은 인연이 이 곳 빠이에서는 가장 아쉬운 내용이었으므로 두 친구에게 각각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아무래도 오늘 떠날 것 같아."

"형, 벌써 가세요?"

"오빠, 어디로 가게요?"


치앙마이에서 지내면서 처음 바이크로 태국 북부를 여행하고자 했을 때, 이동수단의 신선함은 있었지만 사실 이미 태국을 나다닌 지가 꽤 오래된 여행자였으므로 주요한 도시는 대부분 경험한 기억이 있었다. 그중에 몇몇 도시는 새롭게 전해 들은 정보나 동선 중의 기착지로 삼아 첫 경험을 해볼 요량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지역은 치앙다오였다.


'New' 빠이(Pai)라고 하여, 매년 증가하는 관광객들의 등쌀에 지친, 작고 조용했던 마을 빠이의 명성을 그리워하고 다시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드는 곳이라고 한다. 천혜의 자연경관이 느릿하고 여유로운 지방의 소도시 분위기와 어우러져 최근 장기 배낭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 중에 하나라고 들었다. 몇 개월 전 방콕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커플이 치앙다오에 대한 칭찬과 자랑을 하도 해서 새겨들었다가, 좀 더 인근인 치앙마이에 와서 온/오프라인으로 열심히 정보를 맞춰 보았다. 사실 치앙마이에서의 거리가 빠이보다도 가깝다고 이동하는 길도 훨씬 수월했으므로 당일치기로 바이크를 몰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나에게도 새로운 이 도시를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길을 떠났다.


물론 빠이에서의 시간이 이전의 기억과는 사뭇 달랐으므로 치앙다오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재촉해 좀 더 빠르게 움직이게 만든 이유도 있다. 다만 역시 다시 만날 K와 J였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이곳 '빠이에서의 시간'은 또 언제 재현될지 모르기 때문에 아쉬움이 한가득한 마음으로 출발 직전까지도 고민은 계속되었다. (사실 전날 예약한 치앙다오의 숙소에 체크인 변경을 요청하기도 했다)


짧은 일정의 J가 오늘 빠이 캐년(Canyon)에 갈 것이라고 한다. 나도 이번엔 빠이에 와서 주변 어느 곳도 다녀오진 않았기 때문에, 서둘러 짐을 싸고 함께 식사를 하고 빠이 캐년에 그녀를 데려다 주기로 했다. 괜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국수를 사고서 그녀를 태우고는 빠이 캐년을 찾아갔다. 비가 온 다음 날의 서늘한 시골 산길을 달리는 기분이 좋은지 그녀가 소리 내어 웃는다.


"와, 진짜 너무 좋아요."

"저기 구름 봐 구름."


그녀의 밝고 유쾌한 성격이 이내 나의 마음까지도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J에게 조금 더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바이크의 속도를 내다가 늦추다가를 적당히 반복하며 목적지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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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이 캐년에도 변화가 있었다. 없었던 입구가 생기고, 가게가 들어섰으며, 관광객들에게 좀 더 친절하고 접근이 용이한 관광지가 되었다. 물론 빠이 캐년에 이르는 길에 생긴 수많은 대형 카페도 눈에 띄었다. 좋은 일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나쁜 일이라고 하기에도 분명 전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고 느끼고 돌아갈 이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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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9


빠이 캐년은 그랜드 '캐년'의 협곡을 닮은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물론 규모는 비록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그 아기자기함에 주는 색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다. 가벼운 등산을 하기에도 적합하고, 멋진 사진을 찍기도, 무엇보다도 일몰이 아름다워 적당한 시간에 찾으며 기대 이상의 근사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계단을 따라 협곡을 오른다. 이내 시원하게 모습을 드러낸 빠이 캐년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는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빠이를 찾았다는 J도 앳된 얼굴에 금방 화색이 돌았다. 이리저리 휴대폰 카메라를 돌리는 그녀를 보니 나도 잔잔한 미소가 났다.


"오빠 사진 좀 찍어주세요."


내가 까칠한 날에는 아마도 '사진가에게 셀카를 찍어달라고 하다니'하며 쌜쭉해져서는 한바탕 잔소리를 할 법한 순간이었으나,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뒤의 캐년을 가리키는 그녀를 보면서 그따위 사소한 것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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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언제나 누군가와의 기억과 추억이 퇴색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그나 그녀와 그저 하루를 더 지내는 일보다도 우선이었으므로 스스로를 거듭 다독이며 신속하게 퇴장하기로 마음먹었다. 캐년을 내려가려는 그녀에게 당분간의 작별을 고한다.


"나 간다. 잘 둘러보고. 발 조심하고."

"어? 지금 가시게요?"

"응. 나는 서둘러 길 떠나야지, 안 그러면 길에서 고생해."


다시 돌아선 그녀와 가벼운 포옹을 나누고 여느 여행자들과도 같이 서로의 여행운을 빌어주었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는 것은 다시 만날 때의 기쁨도 크다는 것을, 지난 경험들을 통해서 잘 안다. 아마도 그녀와의 재회도 역시 마치 예정된 적금처럼 이내 큰 기쁨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서둘러 마을에 돌아와서는 이번엔 K군에 연락을 했다.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꼭 보고 싶은 사람이었다.


"형 아쉽네요 진짜."

"나도 그렇네. 그래도 우리 다시 볼 거잖아?"

"그쵸 형. 몸 건강하세요."

"너도. 항상 안전하고 즐겁게 여행하고. 금방 또 보자."


간만에 로시(난테)에 동여맨 배낭의 무게가 무거운지 마음이 무거운지 살짝 헷갈렸다. 악수하며 꽉 잡은 서로의 손이 단단하고 분명했다. K는 마을을 떠나가는 내 뒷모습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니 또 그 커다란 몸을 꾸벅하고 반으로 접는다. 정말 고맙다, K야-


아이러니하게도 마을을 떠나 숲길을 달릴수록 마음이 점차 가벼워졌다. 마치 마을에서 멀어질수록 마음은 더욱 본래 여행자의 가벼운 마음가짐이 되는 듯했다. 옅어져 가는 마음에 일부러 K와 J의 얼굴을 차례로 떠올리며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눌러 담았다. 그리고서는 곧바로 길로 돌아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도로에서 한껏 속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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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분을 채 달리지 않았으나 숲 속의 공기가 점차 차가워지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인연들을 두고 먼저 떠나는 나의 야박함에 대한 업보인가? 라고 반문하면서, 바이크를 멈추고서는 서둘러 우비를 꺼내 입었다. 아무래도 비가 예사 비가 아닌 것 같았다.


극악의 지루함과 난이도를 자랑하는 빠이-치앙마이 구간의 커브가 굵고 세찬 소나기와 맞물리면서 날을 한참이나 잘못 만난 여행자를 집요하게 괴롭혔다. 설상가상으로 보통 그동안 달린 길에서는 외길이라도 중간에 쉼터가 간간히 보였는데 이 구간에서는 도통 보이지가 않았다. 아니 사실 너무 야속하게 내리는 빗줄기가 시야를 한참이나 가렸기 때문에 끊임없이 반복되는 커브길에서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다.


경험상 중간에 휴게소가 한 군데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 휴게소를 찾아 도착하기까지 3시간 반이 걸렸다. 미니밴으로는 이미 빠이에서 치앙마이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 2배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고 있었다. 핸들을 돌려 뒤로 돌아가기에는 앞 뒤 상황이 꼭 같았으므로 계속 나아가는 수 밖에는 없었다. 우비를 통과한 빗방울과 이미 젖을 만큼 젖어버린 바지에 뚝 떨어져 가는 체온이 가장 걱정이었는데 휴게소에서도 마땅한 방법이 없었으므로, 라면과 초코바, 콜라(당이 되는 먹거리)를 일단 열심히 먹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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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시계가 5시를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더 지체할 경우 밤을 만난다. 낯선 곳에서의 야간 주행, 몸이 젖은 상태에서 숲길로 들어서는 일 등 모든 경우의 수가 좋지 못했으므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서둘러 길을 떠난다. 결과적으로는 잘 한 결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6시가 되어 해가 떨어질 즈음부터는 비가 멈췄다. 비가 내리는 구간을 피했다는 표현이 좀 더 적절할 수도 있겠다. 빠이 구간의 산길을 빠져나오는 마지막까지도 산 전체에 걸친 수증기와 운무가 가득했으니까.


여행자의 무용담 같은 험난한 여정의 끝에는 치앙다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움에 대한 갈망과 그것이 곧 눈 앞에 있다는 성취감은 종일(終日)의 고생을 쉽게 흘려보내게 해 주었다. 예약한 숙소에 9시가 넘어서야 도착하고 나니, 마치 여행자의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는 듯이 포근하고 가족적인 미소의 주인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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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torcycle Diaries in Thailand #9


오일(Oil)은 이 게스트하우스의 실질적인 주인이자 운영자다. 그녀는 현재 방콕에서 큰 회사에 재직 중인 엘리트 커리어우먼인데, 도시에서의 삶과는 달리 지향하는 바가 자연친화적인 방향의 삶이라 새어머니가 계시는 이곳 치앙다오에 게스트하우스 사업을 시작했다. 매 주말마다 점검 차, 어머니를 돕고자 이곳에 온다는 그녀를 첫날부터 만날 수 있어서 정말 운이 좋았다. 영어 실력도 출중해서 소통에도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겸손한 그녀의 말투와는 달리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게스트하우스 건물과 부지가 매우 컸다. 나는 인터넷에서 본 방갈로(Bungalow) 독채를 빌려서 쓰기로 했다. 이왕 치앙다오까지 온 김에, 나 역시도 좀 더 자연과 가까운 느낌으로 지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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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과는 떨어져 마당에 위치한 방갈로는 찝찝했던 내 몸의 상태와는 다르게 보자마자 포근함과 아늑함을 주었다. 샤워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짐을 던지듯이 두고는 서둘러 샤워를 했다. 뜨거운 온수가 장시간 비와 바람에 노출된 몸을 녹여주었다. '친환경'의 마음가짐과는 다르게 한껏 뜨거운 샤워 물줄기 아래 몸을 두고 한참 동안 온기를 되찾았다. '첫날'이고 '고생'도 많이 했으니까- 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저녁식사를 아직 못 한 상태여서 다시 본관의 오일(Oil)을 찾아 식사할 곳을 물으니 늦은 시간 게스트하우스 내에서는 어렵고 다시 마을로 나가야 한다고 한다. 다시 바이크 안장에 앉을 마음이 없어 그냥 돌아서려고 하니, 지금 본인 친구들이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와 있어 같이 나갈 예정이니 함께 가자고 묻는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이지만 호의는 물론, 현지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따라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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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부터 마을에서 유명한 펍(Pub)에 자리하고 앉아서 밀린 식사를 주문한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버거(Burger)가 주문 안 되는 것을 붙임성 좋은 주인장이 내 대신 직원에게 사정해준다. 덕분에 허기를 감안하더라도 완벽했던 맛의 수제 햄버거를 먹고서, 오일과 친구들의 자리로 합석하여 시끌벅적한 그들의 밤의 관찰자가 된다. 오일 말고는 다들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으나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짧은 태국어와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감사, 그리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설렘을 무기로 그들 속에 동화되어 기어코 또다시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어낸다.


총 3차에 건친 술자리는 결국 노천 온천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친구들을 위한 그 날의 가이드를 자처한 오일(혼자 술을 마시지 않았다)은 우리를 깜깜한 숲 속으로 데려갔는데 거기엔 주민들이 주로 쓴다는 노천 온천이 있었다. 드럼통 같은 것이 하나둘씩 계곡 옆에 있었고 안에는 뜨거운 물이 흐르고 있어 한두 명씩 들어가 몸을 담글 수 있게 되어있었다. 플래시가 없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으므로, 다들 적당히 탈의한 채로 드럼통에 나뉘어 몸을 담갔다. 극한으로 쌓인 피로와 맥주 두어 잔에 달아오른 얼굴이 금세 녹아내렸다. 차츰 몸을 내려 얼굴만 남기고 나니 참기 힘든 탄성(신음일지도)이 났다.


고개를 드니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별들이 한없이 보였다. '별의 도시'인 치앙다오에 와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 순간이었다. 온천욕에 몸과 더불어 생각까지 녹아내렸는지, 이후 마치 누군가 들어서 옮겨준 것처럼 밤자락의 기억까지도 가물해졌다.


총 주행거리: 176.0KM

숙소 정보: Ashi Bamboo House 1 (아고다 Homes)



+) 치앙다오에 무사 도착. 태국인 친구들과의 불타는 밤.

-) 이번 여행 통틀어서 가장 험난했던 주행. 내일 안 아프면 다행.

=) 별의 도시라는 명성을 실감하다.


&) 오늘의 OST-

https://youtu.be/GgEVfjalThQ

Rage Against The Machine - Born Of A Broken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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