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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Jan 28. 2019

로마,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

1월 20일, 2019년의 기록을 옮겨 쓰다.

로마에서는 일주일 간을 머물렀다.

로마라는 두 글자만으로도 기대감이 컸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상상력에는 항상 여유가 있는 타입이므로, 바티칸에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나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느 여행자들처럼 테르미니 역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되었다. 소매치기와 집시 등이 악명이 높다고 하여 이태리 여행 중에는 내내 긴장을 하고 다닌 탓인지, 개나리색의 다소 눈에 띄는 캐리어를 밀고 다니면서도 복잡한 역사를 무난하게 탈출하여 숙소에 안착했다.

공간은 다소 좁았지만 일주일 간의 숙소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높은 층수에 있어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과 버스, 트램 그리고 골목과 골목에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를 관찰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로마의 유적은 상당 부분이 특정한 구역들에 집중되어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도보여행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교통 편으로는 버스와 지하철, 트램까지 있으나 노선과 배차 간격이 마구잡이 식으로 여행하기에 용이하지는 않았다.

다리가 아파 걷기를 잠시 쉬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려고 하면, 대기시간과 실제적인 이동시간이 그냥 다시 걷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동선을 신중하게 설계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은 이번 여행을 통해 족저 근막염이라는 불청객을 만난 여행자에게는 썩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경험상 여행지에서의 피로는 여행과 도시의 만족감을 저하시킨다. 태국처럼 필수 코스인 마사지로 여독을 풀기도 어렵고, 한국에서처럼 곳곳에 스타벅스나 부담 없는 커피숍 등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주일 간 도시를 탐험하기 위해 나서는 매일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통증 환자가 아니었다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괜히 늘어가는 연식을 불평하게 되었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나와 꼭 같이 무릎이나 허리를 두드리거나 잠시 기댈 공간을 찾는 이들이 꽤 많았기 때문에 꼭 나만이 느끼는 피로감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5일쯤이 지나니 도시의 매력과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도시의 관광이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와 같은 이유가 첫째요, 대도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경(도시청결도)과 관광객들을 향한 소수(지만 분명한)의 인종차별적 응대가 그 뒤를 이었다.

유창한 영어에도 불구하고 앞선 이와 나, 나와 다음 이에 대한 서비스 차이를 거의 매일 접하다 보니 너그러움과 온화함의 성품을 고집하는 여행객의 미간에도 결국 주름살이 지푸려졌다. 도시 곳곳에서도 피부색에 따른 생활권의 분리가 너무 철저하게 눈에 띄었다. 똘레랑스를 병적으로 집착하는 프랑스와의 직접적인 비교를 하자면 상황은 더욱 극명했다.

만족스럽지 않은 경험과 감정들이 몇 차례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유적은 몇 번이나 굳게 닫힌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도시 경험은 다소 아쉬웠다.

결과적으로 꼭 와보고 싶은 곳, 와서 좋았지만, 다시 제 돈을 주고 굳이 찾아오지는 않을 곳- 으로 정리가 되었다.

마음의 문제였는지 사진작업에도 썩 마음에 들게 몰두하지 못했다. 첫 며칠 만에 발 전체로 번진 통증이 몸과 마음을 동시에 지치게 만든 시기적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기대와는 괴리감이 생긴 로마 속에서도 바티칸을 직접 둘러본 것은 개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시기적으로도 비수기인 겨울, 주말을 피해 주 중에 다녀온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처음으로 가이드 투어라는 것을 해보았는데, 역시 모르면 배워서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굳이 가격(성비)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좋았다.

다만, 이번 바티칸 미술관의 경험에 비추어 다시 한번 종교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과 비종교인으로서 가질 수 있는 의문점, 아쉬운 부분들이 더욱 명확해졌다. 여행지에서의 인연인지 기독교학을 전공하고 있는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나 이틀이나 시간을 넉넉히 두고 대화를 하면서, 종교를 넘어선 인간애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에 위로를 받고 또 숙제로 남기기로 했다.

로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나니 이태리에서 갈망하던 많은 부분들이 해소가 되거나 정리가 되었다. 남은 일정은 좀 더 남쪽으로 내려가 몇 도시들을 더 둘러볼 예정이다.

지금에 와서는 이태리에 유독 많은 동선과 일정을 할애한 것에 다소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우리네 매 인생과 같이 여행에서의 선택도 언제나 만족스러울 수는 없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몫일 것이다. 더욱 의미 있게 만들거나, 후회를 남기거나. 물론 언제나 전자를 택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타입임에는 틀림이 없다.

#로마
#이탈리아

#여행생각


로마, 밀린 숙제를 마친 기분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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