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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임스 Jun 06. 2019

Stations, Sydney, 2019

아주 짧은 역세권 연구보고서

8년 만에 호주에 왔다.


대자연이 선물한 그림 같은 풍경과 그 속에서의 경험, 평생 곁에 두고 사귈 만한 벗을 한 명 알게 된 것으로 치면 인생에서 나름 중요한 이벤트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라는 나라에 별다른 애정은 없다.


이유를 꼽아보자면 첫 번째로 인종차별이 심했고, 두 번째로는 인종차별을 본인이 직접 겪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생활권의 분리(Segregation)가 매우 심했다. 호주인과 비호주인의 구분은 물론이고, 국적을 한국으로만 국한해도 유학생과 워홀러 간의 벽은 매우 단단했다. 1년을 가까이 지내면서도 한 번도 소속감을 느낀 적이 없다는 점을 상기하면 태국에서의 경험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한 번은 영어실력 때문에 내게 먼저 다가온 유학생이 내가 워홀러임을 알게 되었을 때 순식간에 보인 차별적 적대감을 기억한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가 호주에서 유학을 하고 왔기 때문에,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악감정을 가질 연유가 없었다. 크게 보면 본진(한국)을 떠나 멀리(여행)에서 도전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공유할 만한 여유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후에 몇몇 유학생의 입장도 들을 수 있었고, 나름 그럴만하다고 그냥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역시나 나로서는 악감정을 가질 이유와 까닭이 없었다. 딱히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갈 언어(영어)와 실력이 있었음은 다행히도 자신감의 원천이 되었다.


여행의 종반부에 접어들면서 다음 행선지를 고민했다. 대체로 이번 여정은 저가 항공권을 따라다녔으나 이제 동남아시아에서 동선을 잘못 짜면 시간과 비용이 함께 엉키는 수가 있었다. 가고 싶은 곳은 몇 곳 압축이 되었으나 고민 끝에 방향은 의외의 호주로 결정이 났다. 물론, 남반구에 홀로 동떨어진 이 거대한 나라가 주는 매력은 분명히 있다. 여행을 한 번 나오면 길게 돌아다니는 성격이다 보니, 이번 여행의 종반에서도 다음의 여정을 생각하게 된다. 병이라면 병이다. 대단한 증세.


오세아니아를 이번에 내려오지 않으면 단독으로 따로 떼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좀 더 다녀보고 싶은 곳 중에서 남미 하나가 남았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무리를 해서라도 업데이트를 하기로 한다. 일이 아니라, 순수한 관광으로써는 최초의 방문이다. 장거리를 나는 비행기의 좁은 좌석에 앉아서도 과연 바른 선택인가를 고민한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연속선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작업을 고민했다. 무엇을 담을 수 있을 것인가.


도착하자마자 큰 변화가 없는 시드니의 모습에 놀라고, 살인적인 물가에 또 한 번 놀랐다. 과거 호주달러가 국제적으로 매우 강세인 시기에 워홀 기간을 보냈고 지속적인 수입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인지를 하지 못했던 기억이 현재로 업데이트되면서 큰 오류를 불러왔다.


어찌어찌 셰어(Share)를 구해서 자리를 잡았으나 고민이 컸다. 도착한지 첫 주만에 과외 약속을 잡았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다. 그래도 남반구의 낮고 푸르른 하늘, 청청한 공기와 이십 분만 나가면 금세 보이는 아름다운 시드니 하버(Harbour)가 마음의 평온을 줬다.


하릴없이 방황하던 차에 빵집을 찾아 이스트우드(Eastwood) 역에 갔다가 묘한 풍경을 만난다. 역을 기점으로 좌와 우가 극명하게 갈린 생활권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번 작업은 그렇게 결정이 났다. 매일같이 역을 하나씩 정해 관찰일기를 담았다.


어느 역 하나 좌와 우가 같은 법이 없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었다. 좋은 셋자리를 알아보러 발품 파는 부동산 업자 같은 느낌도 조금 났다. 여기는 이래서 이게 있고, 저기는 저래서 잘 되는구나. 물론 인식이 정답이라는 것에는 큰 오류가 있다는 사실은 알아야 한다. 여튼, 즐거운 일이었다.


반면에 육체적으로는 꽤나 고된 일이었다. 공간을 인식하기란 피사체를 몇 두고 담는 일보다 더욱 추상적인 일이었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집중력이 빠르게 소진되어갔다. 영어권 국가가 으레 그렇듯이 보안과 안전에 관련 이슈가 민감하기 때문에, 역무원이나 공간주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큰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호주의 관련한 법 조항을 모두 뜯어봤다. 간만에 영어공부를 제대로 했다.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드는 작업은 아니었다. 공간을 넘어 그 생활권에 대한 인식은 단편적인 이미지로 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간에 그런 문제점을 인식했지만 어쨌든 시작한 것은 마무리하기로 했다.


한국에 돌아가게 되면 아주 오랜 친구를 만날 좋은 핑계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부동산 전문가인 녀석에게 다소간의 썰을 풀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좋을 것이다.


생활권(生活圈)이라고 한다면- 생활이 공간을 만드는가 아니면 공간이 생활을 창출하는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질문인 것을 알면서도, 궁금증에 연신 고개만 좌우로 갸우뚱거릴 뿐이다.


Stations, Sydney, 2019 @dalaij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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