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6
#046
걱정이 많았다.
몸도 많이 아팠고.
레나가 아침 일찍부터 우리 방으로 건너와 독일제 연고를 전해줬다.
불안한 마음으로 팔과 다리에 난 상처에 몇 번이나 덕지덕지 발랐다.
나의 몸 왼편으로 길게 늘어진 상처들은 여전히 검붉다.
하지만 우린 오늘 폭포를 찾아간다.
사실 어제 이 폭포를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난 것이었다.
사고 덕분에 네 사람 모두 바짝 긴장해있다.
그래도 우리는 여행자라는 이유 없는 근성으로,
여기까지 왔으니 결국 폭포를 반드시 찾아야만 했다.
산속에 숨어 있는 폭포는 그 규모는 매우 작았지만 아름다웠다.
폭포 앞에는 사람 머리가 잠길만한 깊이의 웅덩이가 형성되어 있었다.
일근이는 물을 엄청 좋아한다.
제일 먼저 상처고 뭐고 신경조차 쓰지 않고서 폭포로 뛰어들었다.
여자 친구들은 반면에 조심스럽다.
비치타월을 걸친 채로 발만 조금씩 물에 첨벙첨벙 담그고 있다.
양손에 가득 술과 먹을거리를 들고 각국의 여행자들이 폭포로 몰려들었다.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나는 원래 꽤나 상처에 민감하고 소심한 편이지만, '아무래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근이를 따라 함께 폭포로 입수한다.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결국엔 폭포 제일 깊은 곳까지 억지로 헤엄쳐서 다녀왔다.
까치발도 소용없는 깊이의 폭포 아래서 왠지 모르게 나체로 수영하고 싶었다.
발을 아등바등 거리면서도 결국 팬티까지 다 벗었다.
완전 나체다.
맥주병 주제에 죽음의 문턱까지 굳이 일부러 걸어가는 그런 느낌도 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 가까워질수록 생명에 대한 의지는 더욱 강렬하다.
어리석게도 오묘한 그 간극이 내심 궁금했던 것일까.
산드라와 레나를 마을에 내려주고 우리는 좀 더 멀리 다른 지역을 탐험하기로 한다.
산을 넘어 더 높은 곳으로 가면 고산족인 카렌(Karen)족이 사는 마을이 나온다는 이야기에-
매홍손(Mae Hong Son)으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별다른 특징도 없지만 그냥 굽이굽이 치는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달리는 그 기분이란!
한 시간이 넘도록 달리다 보니, 산의 구석구석에서 조그만 마을들이 보인다.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올라가 보았다.
여행자들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는 그들만의 평온한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도 우리가 신기한지 서로가 서로에게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이질감이 주는 여행의 쾌감이 잠시 왔다가 갔다.
그리고는 문득 허락 없이 너무 갑작스레 이들에게 다가온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일근이를 툭하고 쳤다.
그렇게 자꾸만 뒤가 돌아보고 싶었으면서도 꾹 참고서 마을에서 다시 내려왔다.
매홍손으로 조금 더 달리니 어느덧 산의 정상이다.
뷰 포인트(View Point).
유려한 능선 위로 빛의 장막이 구름 사이사이를 지나 마치 커튼처럼 드리워졌다.
근사하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직도 매홍손까지는 절반밖에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일로 다녀올 거리가 아닌 것 같아, 우리는 그냥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마을로 돌아오니 한 무리의 친구들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수코타이에서 잠깐 만난 적이 있었던 마커스였다.
마커스 뒤에서 누군가 익숙한 얼굴이 손을 흔든다.
션이다!
이렇게 새로운 고리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마트에서 위스키를 사서 방갈로로 돌아왔다.
모기들을 벗 삼아 숙소 가운데 자리한 평상에서 함께 마시기로 했다.
언듯 보기에도 히피 같아 보이는 차림의 남녀가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이뮤와 버디로, 덴마크에서 온 남매란다.
두 사람 모두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묘하고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또 새로운 고리로 시작된 여행자들의 노래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멀리서는 풀과 나무가, 그리고 바람과 생명들의 노래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