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 제거에는 베이비오일이 특효

#045

by J임스

#045


빠이에서의 아침.


게스트하우스 앞 강가에 자욱하게 안개가 끼었다.

나무를 덧대어 만든 다리를 너머 저 언덕까지.


오늘은 마을 주변을 탐사하기 위해서 바이크를 빌리러 나왔다.

산드라와 레나는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그냥 우리 뒤에 함께 타기로 했다.


045_1.jpg

나와 한 짝이 된 레나는 내 어깨 위에 얹은 손에서 마구 땀이 날 정도로 겁이 많았다.

뒷좌석의 불안감이 전이되어, 어느새 내 심장소리도 더욱 크게 들려왔다.


그러다 일이 터졌다.


나갔다가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미처 그만 포장공사 중인 도로 위에서 꽈당!

뒤쫓아오던 일근이네도 함께 넘어지는 바람에 네 명 모두가 타르로 뒤덮이고 말았다.


아득한 고통 속에서도 모두 무사한지 돌아보니, 다행히 두 독일 아가씨들께서는 큰 부상을 입지 않은 것 같았다.

다만 나는 팔에, 일근이는 다리에 피가 철철 났다.

도로 위에 검은 타르와 잔뜩 엉킨 채로 검붉은 피가 사고가 난 방향을 그대로 알려주는 듯했다.


순간 통증보다도, 이대로 여행을 마쳐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과 공황에 사실 아픈지도 몰랐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단 마을로 돌아왔다.

간신히 바이크에는 군데군데 타르로 더러워진 것을 빼면 성능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


온몸이 새까맣게 엉망이 된 우리를 보고 여행자들도 꽤나 놀란다.

무슨 영문인지 물어보는 사람들 덕분에, 몰골은 엉망인데도 뭔가 기분이 묘하다.


이야기는 여행자를 더욱 여행자스럽게 만든다.


상처와 이미 한 몸이 된 것만 같은 아스팔트 찌꺼기 녀석은

도체 너덜한 피부에 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일근이가 "팔을 잘라야 하나?"라는 비관적인 농담으로 애써 나를 웃겼다.


우리가 안쓰러웠던지, 정유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한 미국인 아저씨가 방갈로에서 나와서 베이비오일을 써보라고 조언을 해주고는 다시 들어갔다.

세제를 포함해 벤젠까지 써서도 안 지워지던 찌꺼기들이 신기하게도 지워진다!


몸부터 씻고 역시 함께 더러워진 바이크도 청소했다.

가게에서 우리가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며칠을 바이크 샵 앞으로 지날 때마다,

주인장에게 한껏 설계된 미소를 건네느라 얼굴 근육에 살짝 경련이 오기는 한 것 같지만.


045_2.jpg

낮에는 상처에 쏟았던 위스키를, 밤이 되자 위에 한가득 털어 넣었다.


속도 쓰리고 상처도 쓰린데도 이상하리만치 정신은 맑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치앙마이에서 빠이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