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이 이렇게 지나가는구나
마흔의 나를 기록해본다
지난 금요일, 정말 오랜만에 압구정동에 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와 그 친구를 통해 알게 된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수고로움도 감수하고 버스와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너무 오랜만에 교통수단을 이용한 걸까. 우리의 약속 장소가 <압구정>역 근처가 아니라 <압구정 로데오>역 근처였다는 걸 지상으로 올라와서야 깨달았다. 구글맵을 켜보니 식당까지 걸어서 16분. 입이 돌아갈 것 같이 추운 날씨였지만 나는 걷기로 했다. 압구정 골목골목을 걷다가 어지러운 건물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하게 3평 남짓한 공간을 차지하는 작은 책방과 마주했다. 온통 카페며 술집, 음식집, 옷집이 즐비한 젊음의 거리에서 만난 책방. 이 비싼 압구정동 땅덩이에서 잘도 살아남아 따뜻한 온기를 풍기는구나, 싶었다. 너무 좁은 그 공간에 용기 있게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만 사장님을 응원하며 나는 그곳을 빠르게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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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임원 승진 발표가 있었다. 승진자 143명, 신기술 분야 우수 인력 다수 승진, 30대 상무 40대 부사장 과감한 발탁, 여성 및 외국인 승진을 통한 다양성과 포용성 강화... 뭐여. 여전히 여성을 임원으로 승진시킨 것이 하이라이트 될 이슈라니, 남성이 139명이나 승진했으니 '남성'이라는 말은 생략해도 문장을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건가, 싶었다. 나는 여전히 "여성"을 특정화 시키는 문구들에 눈이 거슬린다.
어차피 임원으로 승진도 못할 거면서 시선만 뾰족하다. 잔말 말고 내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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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상과 저녁상을 누가 차려내라는 사람도 없는데 나는 기어이 밥상을 차리고 만다. 퇴근 후 옷도 갈아입지 않고 정신없이 밥을 차렸는데 아이들 먹는 게 시큰둥해 화도 몇 번 낸 적이 있었다. 그러게 시간 없을 땐 적당히 시켜도 먹고 아니면 밑반찬에 간단히 차려 먹으면 좋으련만, 나는 미련하게도 아침저녁 두 번의 상을 번거롭게도 차려내고야 만다.
어제는 딸아이가 저녁을 먹으며 말했다.
"외식을 하면 밥이 맛있고, 집에서 먹으면 밥이 따뜻해"
밖에서 찬밥을 먹는 것도 아닌데 집밥이 따뜻하단다. 그 '따뜻함'이 그 '따뜻함'이 아니라는걸 나는 사실 알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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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는 이야기'라고 하면 뭔가 상업적인 것 같아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전업 에세이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가 '팔려야만'하는 숙명을 안고 산다. 이야기장수 대표 이연실 편집자는 "팔리는 이야기에는 창작자를 빛나게 하는 시간과 공간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라고 하더라. 시간과 공간의 비밀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어차피 전업작가가 되지도 못하는데... 잔말 말고 내 일이나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