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의 수고가 재생이라 읽혔다.
예상치 못한 삶에서 길어 올린 쉼이라는 행복.
일 년 전, 복싱을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것이 필요했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나는 굳이 복싱을 선택했다.
자주는 못 가도 일주일에 한 번 복싱짐을 찾는데, 10분 러닝, 10분 줄넘기, 10분 개인 훈련 후 10분간 코치님께 코칭을 받고 나면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힘들다. 죽을 것같이 헐떡거리는 나를 보면서 일의 보람을 느낀다는 코치님 덕분이다.
그렇게 한 시간 운동을 한 후 20분 동안 땡볕을 걸으며 더 많은 땀을 빼낸 후 집에 와 샤워를 하고 맥주 한 캔을 들이켜는데... 나는 사실 이 순간을 위해 죽을 듯이 운동을 한다. 알코올로 인한 근손실이 있다한들 나는 나의 행복이 근육보다 우선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복싱을 시작하고 3kg이 쪄버렸다.
맥주를 마시며 업무를 보다가 메일도 연락도 오지 않는 시간이 오면 잠시 가벼운 에세이를 꺼내 읽는다. 갑자기 업무가 치고 들어와도 바로 책을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에세이를 읽다가 잠깐 잠이 드는데, 나의 행복은 이때 정점을 향한다. 이 맛에 운동하고 맥주를 마시고 재택을 하고 에세이를 읽는 것 같은 기분이다.
또 한 번 내가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나는 이상하게도 아이들을 돌보다 부엌과 친해진 상황인데, 아이들 저녁 반찬에 맞게 그날의 술을 곁들이는 것이 어느 순간 나의 낙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눈감고도 만들 수 있는 계란말이와 두부무침, 멸치조림과 김치볶음을 만들고는 예쁜 그릇에 담아 막걸리와 곁들이면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 그 느낌을 맛본 후로 나의 부엌 생활은 시작되었다.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음식, 그리고 정돈된 부엌은 일하며 애도 키워내야 하는 피곤한 삶에 쓸데없는 부지런함을 선물해 준 소중한 순간이다. 자칫 힘들다 생각할 수 있지만 늦은 퇴근 후에도 손수 저녁상을 차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 책 <재생의 부엌>을 읽고 나니 왜 이리 내 얘기가 쓰고 싶은지. 작가님의 혼자인 삶이 마치 나의 삶인 것 마냥 상상도 해보고, 부엌에서 느끼는 재생의 시간이 공감이 되기도 하면서 너무 행복했다.
아... 나만큼 피곤하게 사는 사람이 저기 일본에 또 있구나. 분명 지금 이 시간에도 혼자 먹을 주말 저녁을 위해 부엌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시겠지. 나도 이제 오늘의 세 번째 밥상을 차리러 부엌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