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호호호> 소소한 이야기

나는 뭘 좋아했지?가볍게 읽고 무겁게 생각해봤다.

by 작은 책방

적당히 좋아하는건 많지만, 덕질은 잘 못한다. 덕질이 아니더라도 깊이 있게 집중해서 좋아하는게 딱히 없다.

한창 꾸미는거 좋아할 나이인 중고등학교 때도 외모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 다닐때는 화장도 잘 안했는데, 나이 먹은 지금도 로션에 선크림만 바르고 회사에 출근하는 날이 많다. 차라리 외모에 자신있을 정도로 미인형이였다면 그러려니 할것을, 아직도 왜이러는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옷이며 가방, 신발이며 헤어 스타일까지, 외모와 관련된 모든것에 관심이 없다. 지금 이정도라도 하고 다니는건 사회적 체면을 유지하기 위한 학습된 행동이라 하겠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나도 어지간히 이상한 사람이다.

먹는거는 어릴때 참 좋아했는데, 나이들면서 그 수준이 적당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한국에서는 적당한 몸무게를 나이 먹어서도 유지하고 있으면, 관리 잘하고 있는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연애인 포함해서 누군가를 무지하게 좋아했던것도 크게 기억에 없다. 순간순간 좋아하는 사람은 생기지만 그리 오래가지도 않는다. BTS가 그나마 오래 갔다.

영화나 드라마가 좋아서 밤을 새본적도 없다. 그냥 영화는 데이트를 위한 도구였고, 평생 본 드라마는 손에 꼽는다. 최근에 본 <헤어질 결심>은 잔상이 오래가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싫어하는것도 없다. 한마디로 별 색깔없이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이였는데, 그랬던 내가 2년 전부터 책에 빠져서 사는거 보면 참 신기하다.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다.

업무 특성상 밀물과 썰물처럼 일이 흘러가는데, 일이 몰릴때는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도, 일이 없을 때는 시간이 너무 안가 정신줄을 놓는다. 요즘이 마침 일이 없어 정신줄 놓는 그런 때인데, 자리에서 하염없이 시간 보내기 싫어 밀리의 서재를 구독해 매일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다가 오늘 가벼운 마음으로 윤가은 작가님의 <호호호>를 읽게 됐다. 그녀의 글이 너무 재밌어 사무실에 앉아 코와 입을 틀어막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마스크 밖으로 웃음이 삐집고 나가지 못하도록 그렇게 참아댔으니, 부장님이 지나가다 보셨다면 '제가 어디 아픈가' 싶었을꺼다. 그렇게 읽어나간 그녀의 삶은 내가 너무나도 덕질하고 싶어지는, 그런 인생이였다.

나도 그녀처럼 좋아하는 소소한 무언가를 붙잡고 <호호호> 웃으며 유쾌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고 한다면, 윤가은 작가님! 성공하셨습니다!!(갑자기?)

아무튼 오늘의 내 시간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채워준 이 책이 왜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역시나, 삶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는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