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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Oct 13. 2024

소나기는 언제나 왔다.

우울증은 마치 비 오는 날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처럼 찾아온다. 하늘이 잔뜩 흐린 것도 아니었고, 비 냄새가 맡아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것은 언제나 그래왔다. 내가 잠시라도 허술해진 틈을 타 기어이 밀려드는 고요한 파도처럼.


그날도, 아마 그런 날이었을 것이다. 길가에 서 있던 나에게 우연히 찾아온 불행, 그리고 그 불행이 나를 사정없이 덮쳤다.

차량 접촉 사고. 나의 잘못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그 순간 상대방의 눈빛 하나가, 그의 억압적인 표정 하나가, 마치 날 범죄자로 만들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가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그와 동시에 내 사고체계는 멈춰버렸다.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듯했다.

이 불가항력적인 순간마저도 마치 내가 짊어져야 할 벌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다시 찾아와 나를 무너뜨릴 것이고, 그때마다 이 공포 속에 갇힐 것이 분명했다.

세상은 그렇게 참 잔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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