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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10시간전

4화: 숨겨진 기억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뇌파 센서를 떼어내자 시간이 물처럼 흘러내렸다. 의식이 마치 오래된 얼음장처럼 금이 가고, 그 밑에 숨겨져 있던 기억들이 검은 강물처럼 솟구쳐 올랐다. 하진은 자신의 뇌 속에 두 개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나는 정부가 심어놓은 투명한 유리창 같은 기억. 다른 하나는 그 아래 숨죽이며 흐르는 시커먼 진실.

첫 번째 기억은 열 살 때였다. 형광등 아래 줄지어 선 아이들. 뇌파 센서를 처음 달던 날이었다.

"이제 우리 모두 완벽해질 거예요. 감정이라는 혼돈을 넘어, 이성이라는 빛으로."

선생님의 목소리는 달콤했지만, 그 손길은 서늘했다. 센서가 관자놀이에 닿는 순간, 차가운 전류가 뇌 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가락이 기억을 더듬는 것처럼. 그때부터 하진의 꿈은 사라졌다. 노을도, 새소리도, 첫사랑의 설렘도 모두 희미해졌다. 대신 차가운 평화가 찾아왔다.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결함이에요. 그것이 우리를 진화의 길에서 멀어지게 했죠. 하지만 이제... 우리는 나즈라가 보여준 길을 따라갈 거예요."

그때는 '나즈라'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선생님도 그 말을 내뱉고는 흠칫 놀란 듯했다. 마치 실수로 금기를 깨뜨린 사람처럼. 하진은 그날 밤 처음으로 이상한 꿈을 꾸었다. 까만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별. 오리온의 벨트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세 번째 기억은 가장 선명했다. 대학 연구실에서 발견한 고문서. 누렇게 바랜 종이 위로 이상한 문양들이 그려져 있었다. 신경망처럼 얽히고설킨 선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공명석'이라 불리는 장치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었다.

검은 구체의 표면에는 빛이 나선형으로 퍼지며 맥동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심장처럼 고동쳤고, 하진은 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의식이 자신을 응시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은하수를 담은 듯한 문양들 사이로, 한자가 희미하게 빛났다.

'共鳴石者 星之遺物 人心制御 其本也'
(공명석은 별의 유물이니, 인간의 마음을 통제하는 근본이라)

그 아래에는 더 충격적인 문구가 이어졌다.

'나즈라, 저 오리온자리에서 온 이들.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자 감시자다. 인간의 불완전한 감정을 혐오한 나머지, 자신들의 완벽한 이성에 도달하기를 바라며 우리를 실험한다. 그들에게 인간의 감정은 진화의 걸림돌이자 수치스러운 결함이었다. 지금도 지하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으며, 공명석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조작한다. 그들의 육체는 잠들어 있으나, 그들의 의식은 여전히 깨어있어 우리를 감시한다.'

하진의 마음속에서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서윤희와의 첫 만남, 그들이 나눈 대화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하진 씨, 혹시 꿈을 꾸나요?"

그녀가 처음 건넨 말이었다. 이상한 질문이었다. 뇌파 센서를 단 사람들은 꿈을 꾸지 않는다. 아니,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그녀는 물었고, 하진은 대답했다.

"가끔... 세 개의 별을 봅니다."

서윤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날부터 그들은 가까워졌다.

그녀는 다른 연구원들과 달랐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 질문하는 영혼이, 의심하는 정신이.

"선배님은 왜 저를 믿으시는 거죠?"

서윤희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의 눈빛이요.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그들의 눈은 죽어있어요. 하지만 당신의 눈에는... 아직 물음표가 살아있어요. 의심하고, 고민하고, 아파할 줄 아는 영혼이."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나도 한때는 그랬어요. 하지만 이제는... 너무 많이 알아버렸죠.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완벽한 통제예요. 감정 없는 인간, 의심 없는 기계... 그게 나즈라가 꿈꾸는 진화의 완성이에요."

마지막 기억은 지난 여름, 서윤희와의 순간이었다. 뉴로맥스 지하 연구실에서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날. 그녀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전하려 했다.

"하진 씨..." 서윤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은 특별해요. 당신의 뇌파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요. 공명석이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마치 오래된 기억을 간직한 것처럼."

그녀의 손이 하진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차가웠다. 마치 오래전부터 체온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처럼.

"강화도로 가세요... 지하 도시에서... 나즈라의 진실을... 그리고 기억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경보가 울렸다. 붉은 비상등이 번쩍였다.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둘러요!" 서윤희는 하진을 밀어냈다. "당신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여전히 품고 있어요. 감정도, 희망도, 자유도... 그러니까 절대 멈추지 말아요."

그날 이후 서윤희는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휴대용 단말기가 진동했다. '자각'에서 온 메시지였다.

[당신이 깨어났군요. 서윤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나즈라의 실체를 발견했어요. 그들은 우리의 조상이자, 우리의 감옥 지기입니다.]

하진의 가슴 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충돌했다. 하나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거짓 속에 머물자는 속삭임. 다른 하나는 위험하더라도 진실을 마주하자는 외침.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두려움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두려움조차 느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것을.

"이제는 알겠어요, 선배님. 우리가 왜 깨어나야 하는지."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강화도로 가겠습니다. 나즈라가 숨겨둔 진실을, 그리고 선배님을 찾겠습니다.]

창밖으로는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빛이 스며들었다. 마지막 별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오리온자리였다. 나즈라가 온 곳.

이제 하진은 두렵지 않았다. 비록 완벽한 세상의 이면에 끔찍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다 해도, 그는 기꺼이 그것을 마주하기로 했다. 강화도로 향하는 길은 적막했다. 그 고요 속에서 하진은 자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었다. 불규칙하고, 불완전하고, 그래서 더욱 생생한 소리를.

관자놀이의 상처가 다시 한번 욱신거렸다.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자아가 마침내 깨어나는 것처럼.

"나는... 진실을 보겠습니다."

하진의 마지막 중얼거림이 새벽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이 트기 전, 그는 강화도를 향해 떠나기로 했다. 나즈라의 감시자들이 그를 쫓아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진실은 언제나 완벽한 거짓보다 위험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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