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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태용 Nov 29. 2024

10화: 의식의 새벽

SF소설  《무의식、통제사회》

그날 새벽, 나는 처음으로 진짜 빛을 보았다.


회색빛 하늘은 두터운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바람이 불지도 않았고, 새들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저 멀리 구름 속에서 무언가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빛이었다.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은빛 광채가 도시를 적시더니, 차갑고 날카로운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도시를 가득 채우던 인공의 불빛들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네온사인도, 홀로그램 광고도, 공중 드론의 경고등도 모두 침묵했다. 빛은 도시의 심장부를 향해 내려왔고, 그 속에서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주.

“저게 바로… 나즈라의 집단의식이에요.” 서연이 조용히 말했다.


나는 입을 열지 못한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방주는 우리의 물리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형상이었다. 건축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유기적이고, 생명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기하학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공간 자체를 왜곡하며 떠 있는 차원의 틈 같았다. 표면은 끝없이 움직였고, 거대한 무늬는 살아 있는 듯 호흡했다.

서연의 손이 떨렸다. 그녀의 피부 아래에서 희미한 빛이 한 차례 번쩍였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손을 잡았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인간의 체온이 내 손바닥에 전해졌다.


“보여요?” 그녀가 속삭였다. “저 틈 사이로…”


나는 방주의 표면에 난 틈을 바라보았다. 완벽해 보이던 구조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균열이 점점 넓어지더니, 그 틈으로 푸른빛이 쏟아져 나왔다. 빛의 흐름은 단순한 광자들의 파동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다. 방주를 이루던 나즈라의 집단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두통이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몰려왔다. 균열에서 쏟아져 나온 기억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순간 나는 나즈라의 과거를 보았다.


나즈라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수천 년 전, 그들은 모든 불확실성을 제거하려 했다. 각자의 의식을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집단의식으로 통합했고, 모든 뉴런과 시냅스를 양자 얽힘으로 묶었다. 모든 개인의 경험은 동기화되었고, 무작위성과 혼돈은 차단되었다. 그들의 의식은 완벽한 코히어런스 상태에 들어갔다. 그들은 꿈을 꾸지 않았고,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술은 사라졌다. 예측 가능한 것들만이 남았다. 사랑 또한. 양자적 불확정성이 제거된 세계에서, 그들은 사랑 대신 계산된 감정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완벽함은 완전한 공허를 의미했다.

나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오래전에 제거된 양자 뇌파 센서의 흉터가 여전히 욱신거렸다. 그 장치는 나즈라의 기술로 만들어졌다. 우리 인간의 의식을 강제로 집단의식에 묶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했다. 우리의 뇌는 완벽한 얽힘을 거부했고, 불확정성과 무작위성을 허용했다. 인간은 통제될 수 없는 존재였다.

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녀의 떨리는 손가락 사이로 푸른빛이 다시 번쩍였다. 그녀의 몸속에 남아 있던 공명석의 잔재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우리도 저렇게 될 뻔했어요.”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떨렸지만, 낮고 단호했다. “완벽한 얽힘을 추구하다가… 모든 걸 잃었을 거예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주가 다시 울부짖었다. 공기가 떨리는 소리가 귀를 찢었다. 방주의 표면에 균열이 점점 깊어졌고, 차원이 무너지는 듯한 진동이 도시를 삼켰다. 나즈라는 완벽한 코히어런스 속에서도 자신의 파멸을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균열 사이로 흘러나온 빛은 우리를 덮쳤다.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지막 저항이었다. 빛은 사람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일부는 그대로 쓰러졌다. 다른 사람들은 뇌파가 일그러지며 나즈라의 집단의식에 다시 얽혀갔다. 서연 역시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안 돼…” 그녀가 신음처럼 말했다. “하진 씨… 저기… 그들이… 다시…”

나는 그녀를 꼭 붙잡았다. “서연씨, 정신차려요. 나 좀 봐요! 그들은 당신을 통제할 수 없어요. 우리는 달라요.”


그녀의 손이 떨렸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지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그녀의 체온이 내 몸에 닿았다.


그 순간, 방주가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 표면의 균열이 폭발처럼 터져 나왔고, 11차원의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시공간이 왜곡되며 건물들이 무너졌다. 나는 서연의 손을 붙잡고 소리쳤다. “서연씨! 나를 믿어요!”

푸른빛이 도시를 강타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나즈라의 얽힘이 깨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서연의 몸에서 푸른빛이 희미해졌고, 그녀는 떨리는 숨을 내쉬며 내 품에 쓰러졌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것은 순수한 인간의 감정이었다. 불확정성과 예측할 수 없는 삶이 만든 결실이었다.


새벽빛이 도시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것은 차가운 인공빛이 아니었다. 황금빛으로 타오르는 불규칙한 스펙트럼이 도시를 적셨다. 나는 서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고, 혼란스럽지만… 그래서 살아 있는 거예요.”


서연은 눈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방주의 파편들은 하늘을 떠돌며 빛났다. 그것은 나즈라가 처음으로 경험했을지도 모르는 양자화된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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