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의 계획보다 하루 일찍 집을 나섰다. 21박 22일 여행이 22박 23일 여행이 된 것이다. 원래는 용인에서 완도까지 차로 가고 다시 제주도까지 배로 가는 일정이었다. 집에서 완도까지만 약 410km 아이들에겐 너무 고된 길이 될 듯했다. 그래서 전날 출발해서 중간에서 한 번 쉬기로 했다.
"이왕 가는 거 바닷가에 들려서 가볍게 놀까?"
남편이 말했고, 작년에 tvn의 '윤스테이'방송을 본 후로 종종 한옥에서 자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온 아들은
"엄마 나 한옥에서 자보고 싶어."
말했다. 나는 완도까지 가는 동선의 바닷가들을 중심으로 한옥펜션을 검색해보다가 에어비엔비에서 복층 방 한 칸을 발견하고 예약해뒀다.
바다를 바라보고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함평 주포 한옥마을은 예뻤다. 아들은 차에서 내리기 전부터 한옥의 외관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여기야? 와! 와! 엄마 엄청 예뻐. 너무 멋져! 최고!"
그렇지만 우리가 빌린 공간은 한옥 끄트머리의 작은 방이었고, 아들은 순식간에 풀이 죽었다.
"방이 왜 이렇게 작아? 집은 멋있는데 방은 멋있지가 않아."
"크고 멋진 방은 비싼걸. 우리는 제주도 가는 길에 하룻밤만 잘거니 이곳도 충분해. 다음에 더 멋진 곳으로 여행 가자."
방은 작았지만 네 명이 자기에 충분했고, 마당은 예뻤고, 주인아저씨는 친절했다.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돌머리 해안이 있었다. 마침 간조라서 아주 넓은 갯벌이 드러나 있었다. 우리는 갯벌에 종종 가는 편이라 냉큼 신발을 벗어놓고는 갈퀴 삽을 들고 갯벌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어느 갯벌을 가도 있는 것이 고둥이지만, 이렇게 많은 고동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고둥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해서 지압판 수준이라 신발 없이는 다닐 수가 없었다. 돌아가 신발을 신고 다시 땅을 파기 시작했지만 위치 선정을 잘못한 건지 아무리 해도 조개는 캐지못했다. 그래도 게와 쏙을 잡고 아들은 만족했고 딸은 아쉬워했다.(생물들은 언제나 곧 돌려보내 준다.)
돌아와서 마루에 앉아 먹는 아이스크림은 맛있고, 노을은 예뻤다. 한옥 마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바람이 솔솔 불고, 마당의 꽃들은 한들거리고, 노을이 진 하늘은 분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이들은 작은방에 대한 불만은 씻은 듯이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