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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징 Apr 17. 2022

시행착오를 기다려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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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식사 후에 아이들의 숙제나 공부를 봐주고 있으면, 남편은 설거지를 한다. 항상은 아니지만 꽤 자주 남편이 저녁 설거지를 한다.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노라면, 이렇게 묻는 경우가 있다.

  "남편 설거지가 성에 차? 우리 남편은 잘 하지도 않지만, 해도 영 맘에 안 들어서 내가 하고 만다니까."

  "성에 안 찰 때도 있지. 그래도 해봐야 늘잖아. 간혹 진짜 제대로 안 씻어진 건 나중에 조용히 다시 해. 그리고 남편에겐 아무 말도 안 해."

  "왜? 뭐라 해야 다음부터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잔소리하면 아예 안 하고 싶어 할까 봐. 내가 조용히 몇 개 다시 하면 되지. 그러면 잘못한지는 몰라도 하면서 늘더라고. 그리고 남편이 먼저 기름때가 안 진다 이런 얘기를 하면 그때서야 밀가루를 부어주든 새 수세미를 주든 해. 내가 먼저 얘기하진 않아."

  "답답하지 않아? 아으 난 못 견디겠던데."

  "남편이 설거지하는 동안 난 다른 걸 할 수 있으니 만족해.  내가 설거지하는 것보단 시행착오를 기다려주는 게 낫더라. 그리고 남편은 남의 자식이라 괜찮은 거 같아. 내 자식은 그게 안되는데...".


  나는 설거지 외에도 남편에게 거의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남편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부인이 바가지를 긁니 어쩌니 하면 '우리 와이프는 그런 건 전혀 없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이래라저래라 잔소리가 많다. '아니 이럴 땐 이렇게 하는 게  낫지' 대안을 자꾸만 제시하려고 한다. 남편에게 하듯이만 하면 될 거 같은데, 아이들의 시행착오를 기다려주지 못한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고 이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해갈 것임을 알면서도, 조금이라도 쉬운 길을 알려주고 싶은 애정과 더 나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앞선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욕심을 덜어내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행동하고 실패하고 다시 일어나고 다시 선택하는.... 수많은 기회들을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 나는 또 쉽고 정확한 길을 제시하고 싶어질 거고, 그런 날도 있을게다. 그래도 가 어떠한지 알고 있다는 것으로도 유의미하지 않을까, 어떤 날은 좀 더 나은 엄마일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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