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과 환 Apr 20. 2024

누구보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17 사정

#17 저마다의 사정(事情)

 

영준이 현우를 못 본지 벌써 몇 주나 되었다. 걱정되어 몇 번이나 전화를 해보곤 했지만, 현우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언제나 깔끔하게 꾸미고 다니던 현우가 부스스한 머리에 며칠째 같은 옷만 입고 나온다고 했다. 게다가 일하다 말고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혼잣말로 뭔가를 중얼거린다거나 화장실에서 몇 번이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본 사람이 있다고 했다. 저녁에 대리 운전을 불렀다가 현우가 대리 기사로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현우에게는 자신이 대출받은 돈 2억보다도 부모님의 노후 자금 2억5천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돈을 모두 잃었다고 말씀드렸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눈을 감고 한마디 말씀도 없으셨다. 그 와중에 자식이 혹여라도 잘못된 선택을 할까봐 걱정된 어머니는 그깟 돈이 없어도 밥 먹고 사는데 아무 문제 없으니 현우보고 어깨를 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말을 하면서도 계속 손을 부들부들 떨고 계셨다. 아버지는 소리칠 힘조차 없는 듯했다. 안그래도 요새 부쩍 늙으신 아버지는 조용히 벽을 보고 누워버리셨다. 

 

현우 역시 그 돈이 어떤 돈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그 돈을 빌려서 너무나도 쉽게 투자한 자신이 잠깐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아니었던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했다. 사람은 이익에 눈이 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셈이다.

 

부모님이 한 평생 어떻게 모아온 돈인데...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현우로서는 부모님의 노후 자금을 온전히 돌려드리는 날이 바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날이었다. 그때까지 현우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포기할 터였다. 이 목표가 현재 현우가 제 정신을 부여잡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이유였다.

 

요즘 영준은 투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곤 한다. 멋모르고 코인에 돈을 집어넣었을 무렵, 영준은 자신이 꽤 훌륭한 투자자라고 생각을 했었다. 게다가 투자란 것이 이렇게 쉬운데 왜 진작 이 투자란 것을 하지 않았는가 하고 후회를 했었다. 어릴 때의 가난과 고생이 이 쉬운 투자를 하지 않은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이 있는데, 회사에서 자신의 청춘을 갈아넣어 고작 푼돈 같은 월급을 받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만약 자신이 현우의 상황이 되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단순히 지금 자신의 계좌에 있는 몇억의 돈을 보고 자신의 행운에 감사할 일만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이 섬뜩하곤 했다. 그제서야 자신이 투자한다고 했던 코인이 실제로는 왜 오르는지, 왜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돈을 집어넣었음을 깨달았다. 

 

만약 이 코인을 그때 모두 팔지 못했다면, 지금 남아 있는 코인 수십만 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저 단순히 남들이 내가 가진 코인을 내가 산 가격보다 비싸게 사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코인에 돈을 밀어넣는 것이 과연 투자인지 투기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코인에 돈을 밀어넣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돈을 넣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언젠가 총이 격발되어 누군가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러시안 룰렛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영준은 이 투자를 계속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지금까지 이 투자로 계속 성공하여 돈을 번 것이다.

 

그러면서 돈이란 것이 이렇게까지 사람을 바꿔놓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리고 사실 생각해보니 이미 자신 역시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다. 점차 쉽게 버는 돈에 둔감해지고, 월급이나 회사에서 맡은 업무는 자신의 인생에서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좌 속의 돈이고, 그 돈을 얼마나 빨리 불릴 수 있는가였다. 

가장 큰 문제점은 평범하게 벌어들이는 돈에 만족을 못한다는 것이다. 쉽게 버는 돈의 맛을 알아서,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이 아니면 아무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영준은 그 누구보다도 가장 쉽고 빠르게 돈을 벌고 싶었다. 그러려면 변동성이 큰 신생 알트 코인 투자가 가장 제격이었다.

 

다만, 언제까지나 이 투자를 계속할 수는 없다고 직감했다. 이제 어쩌면 한두번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원하는 금액이 완성되면, 그때는 코인 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누리고자 했다.

 

처음 돈을 벌고 술집에서 몇백만원을 쓴 적도 있었다.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몇십만원의 고가 선물을 하기도 했고, 그간 힘들었을 자신에게 보답한다며 한 벌에 수백만원이 넘는 명품옷을 사기도 했다. 하이엔드 고층 오피스텔로 이사를 와서 밤마다 화려한 야경을 바라보며 값비싼 술과 함께 자신이 성공한 인생임을 자축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영준은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임을 안다. 입었을 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이 없다. 원했던 돈을 벌고 은퇴를 한 후엔,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을 생각이었다.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난다. 영준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몇 주 뒤에 시간이 나면 아버지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준규는 요새 괜시리 죄책감에 잠을 못 이루곤 한다. 현우와 여자 문제로 싸운 적이 있다지만, 그래도 현우와 준규는 서로 죽이 잘 맞았다. 준규가 현우의 말에 더 크게 화가 났던 것도 어쩌면 자신이 갖지 못한 남성으로서의 매력을 현우가 많이 갖고 있어서 질투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우는 준규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준규는 몇 번 현우의 자리로 찾아가 본 적도 있었지만, 멀리서 보고는 그냥 돌아갔었다. 자신이 만약 현우의 상황이었다면, 이렇게 다시 회사 생활을 한다는 것은 꿈도 꾸질 못할 터였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준규는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외할머니네 집은 그 동네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었다. 덕분에 준규의 집도 늘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았다. 어릴 때부터 좋은 집에서 남들이 갖지 못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그런데 어린 준규의 기억 속에 아빠는 집에 거의 들어오질 않았었다. 그 언젠가 길가에서 아빠를 보고 뛰어갔더니 아빠 옆에는 처음 보는 아줌마가 서 있었다. 아빠는 어린 준규를 보고는 반가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모른 척 냉담하게 대했었다. 어린 준규는 아버지가 지금 장난을 치고 있으며, 며칠이 지나면 다시 예전의 다정한 아빠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었지만, 며칠이 몇 달이 되고, 몇 달이 몇 년이 되면서 기억 속의 다정했던 아버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었다.

 

준규의 엄마는 준규를 보고는 늘 ‘너만 아니었다면’이란 말을 했었다. 혼전임신으로 준규의 아버지와 결혼했던 준규의 어머니는 준규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꼬이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여유롭게 살았으되,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어린 준규의 마음은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실금이 많이 가 있었다. 사랑을 받은 적이 없으니 자존감이 낮았고, 누가 그 자존감을 건들면 알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그 상처를 감추기 위해 남들에게 자신의 돈을 자랑하기도 하고, 남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길 원했다. 언제나 남들의 인정을 원했다. 

 

그래서 준규는 많은 돈을 원했다. 돈이 없으면 자신이 원하는 남들의 인정 또한 모두 사라질 터였다. 마음 속에 수없이 그어진 실금들이 준규의 자존감을 매일 갉아먹었다. 오로지 돈만이 그 자존감을 채울 수 있을 터였다. 소개팅에서 여자들에게 늘 차였어도, 돈도 없는 것들이 감히 자신을 차다니,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거라고 스스로 애써 자위하곤 했다.

 

준규는 현재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8억에 가까운 돈을 모았다. 물론 대부분 코인 투자로 번 돈이기는 하지만, 34살에 8억이라니... 집안의 도움 없이 자신이 스스로 모은 돈들이었다. 

엄마와 인연을 끊은지도 오래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서울의 중위권 대학이 아닌 일부러 학비가 싼 지방의 국립대를 선택해서 갔고,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스스로 충당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엄마의 도움 따윈 필요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준규는 가끔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길가를 걸어가는 어린 아이들을 보면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고 마음 한편이 아렸었다. 

 

준규의 코인 투자는 벌써 여러 번째였다. 다행히 지금까지 많은 적든 늘 이익을 거둬왔었다. 단 한번도 실패란 것에 대해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주변 친구들에게 가끔 투자 정보를 준 적은 있었어도, 이렇게 같이 투자를 한 것은 영준과 현우라는 회사 동기 녀석들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절박하게 같이 하자고 매달린 사람도 영준과 현우 둘 뿐이었다.

준규는 언젠가부터 사람들 마음 속의 구멍이 잘 보였는데, 영준과 현우에게서도 자신과 비슷한 구멍이 있음을 발견하곤 그 둘을 자신이 하는 코인 투자에 껴준 것인지도 몰랐다. 

 

준규 역시 문득 지금 자신이 하는 투자가 처음으로 두려워졌다. 34살. 지금까지 준규는 연애 빼고 모든 일은 다 잘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포르쉐 카이엔을 몰고 있고, 강남의 고급 오피스텔에서 2억 5천만원의 전세금을 내고 마음 편히 살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 중에 자기만큼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지금껏 거의 보질 못했다. 회사에서 자신의 평판이 안 좋은 것은 알고 있었으나, 어차피 회사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다. 남들이 뭐라하는 것을 한 귀로 흘려버리는 것은 어릴 때부터 아주 익숙한 준규였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앞으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상하게 망망대해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처음으로 모든 것이 허무했다. 가끔 달이 밝은 밤에는 자신의 삶에 단 하나가 없다고 생각했다. 

바로 사랑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누구보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16 몰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