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하게 견디기

이연,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by 이여름

신영복 선생님은 머리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머리로 아무리 궁리하더라도, 결국 한 걸음의 실천이 삶을 바꾼다. 못한다의 다른 말은 기대가 높다는 말이라고도 생각이 든다. 요즘 사회에서는 특히 비교대상들이 많다. 이를테면 SNS가 있겠다. SNS를 보면 힙한 사람들 천지다. 잘생긴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돈을 잘 버는 사람, 요리를 잘하는 사람. 잘하는 사람들 틈에 나를 멀찌감치 세워놓으면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타인의 모습이 비치는 것만으로, 타인의 기준이 우리 삶에 침투한다. 타인의 침투는 내 삶의 주체성만 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구도 앗아간다. 완벽주의의 탄생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도 분명 있겠다만,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김장하 선생님의 말씀 마따나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노력과 평범한 사람들의 욕구다.

완벽주의는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한 역치가 높다. 나 또한 이런 사람에 가까운데, 정말 완벽한 것을 이루어 내기 위해 하는 것일까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 잘 살펴보면 실패할까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지레 짐작하여 시작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단념하는 것이다. 관념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지 않을까. 관념적인 사람은 미래로 미래로, 오늘을 밀어낸다. 오늘은 썩는다. 썩은 어제를 먹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최근까지도 관념적인 삶 때문에 앓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서 욕구가 마음속에 쌓여갔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의 계획은 무궁했지만, 그것을 내 몸이 따라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인가 생각했다. 나는 부끄러운 것이 싫었다.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다. 나는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일기장에 그림을 그려 넣으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잘 되지 않았다. 내 그림이 너무나 형편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며칠을 잇지 못하고, 또 그림을 포기하곤 했었다.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 내게 이 책 제목이 와닿았던 것은, 여느 책들과 다른 제목이기 때문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법'이라고 쓰여있지 않았다는 점도 특이했다. 책의 내용은 그림 그리는 방법을 밝혀두었는데, 그림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였다. 삶을 당당하게 직시하고 지금 있는 부족한 모습 자체를 견뎌내는 법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가끔 창작자에게 필요한 것은 대단한 재능과 영감이 아니라 감정을 견딜 비위라는 생각이 든다'. (50p)


다정한 말들은 이렇듯 확실하다. 확실한 글은 삶 속에서 태어난다. 이연의 글은 진솔함에서 힘을 갖는다. 작가는 미술 입시의 과정,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따라 살아온 삶, 타인과 비교했던 기억들을 진솔하게 드러낸다. 나는 부끄러운 감정 자체와 멀어지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부끄러움이 견디기 어려우니, 애써 외면하며 시도조차 어려워지는 삶. 혹은 부끄러움을 도피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부끄러움을 헤쳐가는 과정이 커가는 과정인 것 같다. 하루에도 몇 번씩은 과거의 기억들이 파고들어 오면 수치심에 이불을 걷어차기도 한다. 부끄러운 나의 모습, 혹은 부끄러운 나의 실력을 언제쯤 다정하게 안아줄 수 있을까.

우선 시도해 보고 싶다. 무어든 부족한 모습으로 있는 그대로 부딪히고 싶다. 지난 5년간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것은 부족한 모습으로 부딪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족하다는 자각이 있었지만, 부족한 모습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머리와 마음, 그리고 몸으로의 나아감은 견뎌냄에 있다. 선배에게 이런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지금 너무 비참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선배는 근심 가득한 나를 보고는 다정하게 이야기했다. 견뎌내는 것이 힘이라고. 그저 견뎌내다 보면 자신의 자리로 드러나는 것이 있다고 했다. 누가 뭐라고 하든, 이것을 안 하고서는 버틸 수 없는 상태. 욕을 먹더라도 이것을 꼭 해야 되는 상태.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비참함을 느낄 때,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 잘하고 못하고를 기준 삼을 것이 아니다. 나아감과 물러섬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두 다리가 멈춰있는가, 움직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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