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을 자본주의

와타나베 이타루,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by 이여름

새해를 맞아 군대 동기를 만났다. 책을 함께 읽다가, '네가 관심 있으면 내가 재테크 정보 알려줄게'라고 넌지시 말은 얹는다. 나이가 서른을 넘어가고, 집값으로 다달이 내는 이자에 허덕이고 있던지라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 그러더니 친구는 뜨뜻미지근한 내 얼굴로 잃었던 기운을 금세 회복하곤 지식들을 쏟아냈다. 통장은 월급 통장, 예비 통장, 비상금 통장, 생활비 통장 등등으로 쪼개어서 관리해야 되고, 버는 돈의 일정량은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갑자기 얹은 가벼운 말 한마디에 나는 빨려 들어갔다. '나는 지금부터 일을 그만두더라도 2년 정도는 내가 벌어둔 돈으로 살 수 있어'. 친구가 여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함께 솟아나는 내 처지의 부끄러움에 복잡했다.

나는 자본주의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모른다. 친구가 그것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시스템을 모르면 모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오히려 몰랐기 때문에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더욱 옥죄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맞는 말이었다. 나는 자본주의 속에서 근근이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일을 그만둔다면, 나는 지금까지 내가 누려왔던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망가질 것임이 훤했다. 그리곤 자본이 갖는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게 되었다. 나는 북클럽에 가입해서 멤버들과 함께 토론을 한다. 그때 나의 단골 주제는 자본주의였다. 나는 독서토론을 하는 순간이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꼭꼭 꼬집어 지적했고, 그럴 때마다 통쾌했다. 성실히 갚아나가는 이자는, 성실히 억울함이 되었다. 자본을 싫어하면서도, 자본을 통해 자유를 얻고 싶어 하는 나의 모습은 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중에도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자본주의에서 추구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자본은 잘 썩지 않는다. 내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신년에 만난 친구는 돈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했다. 돈이 돈을 번다는 것은, 돈이 돈을 재생산해낸다는 말이다. 친구는 자본의 속성을 정확하게 찔러낸 듯하다. 자본은 자본으로 자본이 된다. 어떻게 하면 자본을 순환하게 할 수 있을까. 와타나베 이타루는 순환을 꿈꿨다. 그래서 시골에서 빵집을 차리기로 했다. 썩는 것으로 경제를 만든다는 기발한 생각. 천연 효모를 통해 빵을 굽고, 정당한 이윤을 받아, 자신이 사는 시골 안에서 함께 나눈다. 자본을 썩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람과 네트워크, 그리고 교류라는 말을 책 전반에서 역설하고 있다. 사람이 발효종이 되어서 건강한 자본을 만드는 것이지 않을까. 그가 발견한 비유의 힘이 이토록 든든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거기서 김장하 선생은 '돈은 똥과 같아서 모으면 냄새나지만 두루 나누면 좋은 거름이 된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나누어서 순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자본의 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큰 과제이지 않을까?

그러나 자본주의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지역에 살면서 마을의 다양한 네트워크에 후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조금씩 불안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의 노후는 어떻게 되는 건지, 내가 이렇듯 후원을 한다고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러니 깊게 고민해 본다면 자본주의는 불안을 먹고 자라는 시스템인 것이다. 노후 준비라는 관념은 행동을 구속한다. 물화된 관념이 나를 이끌고 가고 있음을 스스로도 느끼기에, 나의 돈을 누군가와 나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서 라다크 부족은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자본주의는 노인을 쓸모없음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커 파머가 말했듯이 나이 든다는 것은 성장이 멈추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 듦은 지적인 성숙, 영혼의 성숙, 지혜의 성숙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러한 노인을 노동력에서 상실된 사람으로 쉽게 치부해 버린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며 독서 토론에서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한 분께서 말씀하셨다. 자본주의라는 지붕 아래 다들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도 대안적 삶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고 말이다.

와타나베 이타루는 과학을 발전시킨 인류의 업적은 물론 대단하지만, 인간 각자가 지닌 내면의 힘도 크고 훌륭하다고 말한다. 인류는 기술로 대체될 수 없는 영혼이라는 가치가 있다. 영혼은 부지런히 사람들과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 빛깔이 드러난다. 내 것을 줄 수 있는 사회, 순환하는 사회를 꿈꾸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아름다운 세상이다. 자본주의는 모순이 많다. 그러나 거대한 이상과 비판 속에서는 실천이 싹트기 어렵다. 내 눈앞에 있는 것부터 도전해 보며, 또 연결되고 싶다. 나는 그 일환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작은 글, 볼품없는 영혼도 자본주의를 부패시키는 발효종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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