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품격

by 이여름

그리구 돈을 어떻게 단시일에 많이 버느냐를 욕심낼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정당하고 깨끗하게 벌어서 알뜰히 아껴 쓸까를 생각해야 하는 거다.

-손창섭, 『길』(1969, 동양출판사)


‘작은 어머니, 작은 아버지께’

세 배를 드리며 용돈 봉투에 작은 편지를 썼다. 추운 날 바닥에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낡은 부엌에서 명절 준비로 애쓰셨을 어머니들. 설거지 도와드리러 들어가면 괜찮다며 내치시는, 낡은 부엌만큼이나 낡은 습관이 밴 우리 어머니들.

무어라도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글에서나마 반기를 든다. 고작 해낸 건 순서 바꾸기 하나. 그리고 용돈 조금이다.

작은 어머니는 미소가 곱다. 곱슬기 있는 단발머리에 하얀 얼굴, 능청맞은 말투로 농담을 건네시는 작은 어머니. 수염 자국 거뭇거뭇 남아 있는 작은 아버지와 색깔이 잘 어울린다. 작은 어머니는 두 눈 가득 웃음을 지을 줄 아신다. 눈가에는 웃음의 흔적이 퇴적되어 있다.

설 연휴 부모님을 뵈니 감정들이 슬슬 얼굴에 씻기지 않고 남아 있다. 웃음, 울음, 분노, 후회 등으로 얼룩졌을 시간들이 이제는 주름으로 자리한 걸 본다.

‘무상’이라는 단어는 소중함을 불러일으킨다. 강신주는 순간성이 소중함을 가져온다고 했다. 떠날 수 없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무상이라고 했다. 무상함 속에서 ‘돈’을 생각해 본다. ‘돈’은 참 썩지 않는다. 이런 공상도 해보았다. 할당된 금액만큼 쓰고, 사라지는 화폐. 저축할 수 없는 화폐.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에서도 돈을 썩게끔 하는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천연 효모로 빵을 만드는 것. 그렇게 빵을 만들어 판다. 그리고 가족들의 생계유지 이상의 돈을 저축하지 않는다.

돈을 쓰는 것에도 품격이 있겠다. 기꺼이 무상한 존재들을 위해, 썩는 것들을 위해 쓰는 것. 푼돈이나마 봉투에 넣고, 가족들에게 골고루 주며 그들과 함께 무상함을 나눈다. 그들의 맛있는 한 끼 식사를 기원하며.


노랑색 종이질감 배경 귀여운 일러스트 졸업 축하 엽서의 사본.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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