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감정의 파도

by 달콤한복이

그 해의 여름 날씨가 어땠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생각이 안 날까 모르겠다.

아마도 여느 여름과 같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겠지. 매미는 시끄럽게 울어대고 더워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었다.

그나마 기억나는 건 그때도 여전히 기운이 없었고 왔다 갔다 바쁘게 다니느라 길에서 시간을 다 보내고 있었다는 것. 그래도 8월부터는 사무실에 출근하기로 한 사람이 있어서 그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날은 8월 초의 어느 저녁이었다.


급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 아빠가 술에 취한 것 같은데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 집에 못 들어가고 있다는데, 잠깐 가볼 수 있겠나...

도어록 비밀번호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전화가 왔는데 번호를 아무리 알려줘도 술 취한 아빠는 문을 열지 못했고 문이 열리지 않으니 홧김에 도어록을 깨부쉈다고 했다.

그 난리통에 위층에 사는 아주머니가 내려와 보고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주머니 말로는 도어록이 다 깨져서 밖에서는 문을 열지 못한다고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너무 놀라고 떨려서 허둥지둥 정신없이 아빠에게 갈 채비를 하는데 나의 불안을 아이들이 느낀 것인지 갑자기 울며 불며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 상황에 기가 찼다.

대체 아빠는 다 때려 부술 만큼 화날 건 뭐며, 가뜩이나 마음도 급하고 긴장돼 죽겠는데 얘들은 또 왜 이러는 건지.

남편은 자기 혼자 가보고 오겠다며 걱정 말고 기다리라 했지만 지금 아빠는 술까지 취한 상태이다. 아무래도 내가 가는 게 나을 듯하여 고집을 부렸고 결국 아이들을 다 데리고 나갔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다행히 잠겨있지 않았던 베란다 창문으로 위층 아저씨가 들어가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고 했다. 아빠는 술이 얼마나 취한 건지 집에 들어가자마자 잠이 들었다며 내일 날이 밝으면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했다. 남편도 그게 좋겠다고,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아이들을 다 데려가는 것보다 자기 혼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빠가 안방에서 잠이 든 것을 확인했다는 남편의 말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그날 밤에는 내가 어떻게 씻고 누워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음 날 아이들을 배웅하자마자 나는 친정으로 향했다. 1층이라 짧은 계단을 오르면 바로 보이는 현관문은 도어록 주변으로 많이 긁혀있었다. 다행히 도어록은 아랫부분의 플라스틱 뚜껑만 떨어져 나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다. 엉망인 현관문을 보고 있자니 전날 아빠의 화가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술이 깬 아빠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무얼 가지고 저렇게 부쉈냐는 물음에 기억이 안 난다는 말만 했다. 정말 기억이 안나는 건지 차마 기억을 하고 싶지 않은 건지 아님 그새 기억을 지운 건지....

암만 술이 취했기로서니 아빠 나이가 지금...으로 시작해 퍼붓고 싶었지만 아빠를 자극해서 나에게 좋을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에 겨우 참았다.


며칠 뒤에도 현관문 앞에서 전화를 건 아빠는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난다고 했고, 아빠가 놔둔 물건이 제자리에 없다며 호통치는 바람에 나는 본 적도 없는 그 물건을 찾느라 자주 방안을 뒤졌다.

나와 이야기를 하던 중에 무슨 말을 했는지 깜빡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이야기를 생전 처음 듣는다는 듯한 순진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아무래도 우리 아빠가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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