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달력도 얼마 후면 곧 넘어갈 것이었다. 아빠의 기억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아 신경외과에 예약을 했고 진료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청소를 하려고 아빠 집에 다녀갔던 날이었다. 우연히 만난 위층 아주머니에게 놀라운 말을 들었다.
아빠가 창밖으로 물건을 던진다거나 지나가는 사람에게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거나 성적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이상행동들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른 아침에.
다만 아주머니도 직접 본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건너 들어서 확실하지 않다는 말로 자기의 말은 아니라고 못을 박았다. 그래도 혹시 그런 일이 지속되어 무슨 일이라도 있을까 봐 딸이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얘기해주는 거라며 선심을 썼다.
당연히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없었다.
고집불통에 성질 급한 노인네이긴 해도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다. 배움이 짧아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남의 이목을 많이 신경 쓰는 사람이라 행여 남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잔소리를 해대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아빠의 그런 모습을 본 사람이 없고 최근까지 아빠를 만나고 얘기해본 나에게는 허무맹랑한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말이 맞다면 아빠는 우리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우리 아빠는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안다. 분명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아빠를 믿지만, 내가 아는 아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지만 혹시라도 진짜라면. 정말 누가 본 사람이 있다면. 내가 아는 아빠가 아빠가 아니었다면... 확인이 필요했다.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답답한 가슴이 달달 떨려왔다.
온갖 불필요한 생각에 터질 것만 같은 머리를 억지로 진정시키며 자전거를 끌고 운동 나갔다던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언제 왔노? 오늘은 덜 바쁘나?
자전거를 타고 얼마나 멀리까지 다녀온 것인지 쌕쌕거리며 반가운 티를 냈다. 평소와 다름없다. 그냥 내가 아는 우리 아빠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했다. 혹시나 아빠가 상처받을까 최대한 돌려 물었다.
| 내가 그럴게 뭐 있노. 언제 말이고? 무슨 말 하는지 몰따. 내가 만다고 그럴까 봐.
역시 평소와 다름없다. 흥분을 하지도, 그렇다고 억지로 차분하지도 않다. 저것까지 아빠가 연기하는 거라면 이 세상에 내가 알던 아빠는 없는 거였다. 그럼 그렇지. 그럼에도 행여나 하는 노파심에 베란다 앞에서는 웃통도 벗지 말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는 말도 걸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그제야 땀에 범벅이 된 아빠 얼굴이 보였다. 분하고 억울해서 화가 났다.
이제 곧 80인 노인이었다.
십여 년 전에 지병으로 집사람을 먼저 떠나보내고 그 죄책감과 미안함을 이기지 못해 허구한 날 술로 매일을 보내다 당신마저 큰 병을 얻은 나약해 빠진 사람이다.
늦은 나이에 얻은 다섯 딸들을 가진 게 넉넉지 않아 공주처럼 귀하게는 못 키웠어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느라 환갑이 넘을 때까지 취미생활 하나 없이 궂은일만 하고 살아온 불쌍한 사람이다.
얼마 전에 막내딸을 끝으로 다섯 딸 모두를 출가시키고 갑자기 적적해졌음에도 둔한 손끝으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빌라 앞 큰길을 내 집 앞마당 쓸 듯 쓰는 사람이다.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빠에게 직접 확인을 하고 왔음에도 아주머니의 말이 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도 계속되었다. 아닌 거 아는데 무엇 때문인지 그 마음에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다.
그런 말을 들고 어떤 자식이 맘 편할 수 있을까. 모두의 마음이 내 마음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빠를 믿기에, 아빠의 결백을 주장하려면 우리가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했다. 혹은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다른 조치를 해야 했고 그 행동이 아빠 혼자 있을 때만 나타나는 거라면 더욱 그랬다.
우리는 상의 끝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요즘 자꾸 깜빡하는 아빠가 조금은 마음에 걸렸고 본인이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마음 한편에 아주 작게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의 입장에서 마음이 좋을리 없었다. 확인할 길이 없어 답답한 이 마음 하나 편하자고, 또 아빠를 위해서 내린 결정 이건만 죄스러운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아팠다. 언니들과 동생들도 모두 나와 같았으리라...
cctv는 안방 베란다를 향해 달렸고 이제 확인하는 일만이 남았다. 아니길 바라지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사실 그보다 더 많이. 믿지 못할 말을 우리 눈으로 확인하게 될까 봐서 두려웠다.
녹화 영상은 언니가 수시로 확인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며칠을 지켜본 결과 아주머니가 말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들의 오해를 살 만한 행동이라고는 머리를 감고 윗옷을 벗은 채 창문 앞에서 바람을 쐬는 것 외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다만 안방 베란다 창문 밑에 의자를 하나 갖다 두고 꽤 많은 시간을 그곳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구경하더라는 언니의 말에 안쓰럽고도 애처로워 눈물이 차올랐다.
거기 앉아 있지 않아 보이지 않는 시간엔 자전거를 타고 운동삼아 나가거나 케이블방송에서 매일 내보내 주는 야인시대를 보며 침대에서 졸거나 또는 방바닥에 작은 이불 하나 깔아놓고 화투점을 보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 아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