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닿지 못하고 맴맴 맴도는

by 달콤한복이


| 지금 하원차와서 애들 내리는데 너 어디니?

| 저 아파트 주차장이요. 주차하고 있어요. 금방 가요. 우리 애들 좀 봐줘요!

| 넌 매일 뭐가 그렇게 바쁘니? 혼자 아주 공사가 다망하셔~ 일찍 일찍 좀 다니자~


친한 언니의 장난스러운 말이 훅 하고 찔렸다. 그러게요.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저는 매일 뭐가 이리 바쁠까요.

진짜였다.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바쁘게 다니느라 집안일은 자꾸 쌓여 집은 집대로 점점 엉망이 되어 갔고 회사일은 회사일대로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처럼 실수를 해댔다. 그래도 한때는 일 잘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지.

거기다 이 회사는 일을 잘못하면 남편에게 혼이 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내가 실수한 건 맞지만 막상 남편에게 한소리를 들으면 서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이렇게 실수를 하는 건지 답답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오늘이 며칠인지도 모르고 다닐 정도이니 알만했다. 나에게 매번 실망했고 이제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에 속상하던 차에 날아온 남편의 한마디는 자존심을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눈물이 났다.

결국은 내가 잘못한 것이었기에 남편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고 그 눈치는 나로 하여금 우리 관계가 상하관계로 느껴지게 했다.

하루하루 쫓기듯 출근을 하고 집안일에 아이들 케어까지 모두 내 몫이었고 나의 고충을 몰라주는 무심한 것 같은 남편에게 서운함과 불만이 쌓여갔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조바심이 났어도 눈치만 볼 뿐이었다.

숨이 막혔다. 퇴사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루 종일 밥도 못 먹었는데, 아이들이 잠들기 전까지 편하게 쉰 적도 없이 계속 움직였는데, 나도 피곤하고 힘든데, 왜 나는 퇴근은 없고 출근만 있는 건지.

나름대로 한다고 하고 있는데 억울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 몫의 월급을 따로 받는 것도 아니었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남의 일이 아니고 '우리 일'이라는 말만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듣기 좋은 말도 아니었다. 그렇게 치면 집안일도 우리 일 아닌가? 어떻게 해서 집안일은 나의 일이고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회사일은 '우리' 일이 되는 거지? 답답하고 부당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삼켰다.




남편은 다정다감한 사람이다. 그의 성격적인 여러 부분들이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것에는 아직 변함이 없다. 다만 그에게 우선순위가 바뀐 듯하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무리 다정하다고 해도 그것이 진심으로 느껴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내가 아는 그는 내 사람, 내 가족이 늘 우선인 사람이었다. 최소한 우리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결혼 전부터 그가 해오던 일을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회사를 차렸다. 그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고 결코 쉽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해냈다.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뿌듯해했다. 꾀부리지 않고 꾸준히 부지런히 열심히 자기 일을 해내는 그가 대단해 보였고 존경스러웠다. 그의 시작부터 모든 것을 다 봐왔기에 나도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해왔다.

그러나 한 회사의 대표가 된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남편은 일도 많았고 생각도 많았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때그때 잘 비워내는 편이 아니었기에 그의 안에서 그것들은 점점 쌓여갔을 것이다. 그러다 그게 흘러넘치면 나에게로 버려졌다. 기분이 좋을 리 없었지만 그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혼자서 그 모든 것을 감당해내는 그가 안쓰러운 마음이 컸기에 비워주고 싶었고 기꺼이 받아냈다. 그래서 집에서 만큼은 편하게 쉬게 해주고 싶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해야 할 일이었다.

새벽에 출근하는 시간에 맞춰 아침을 차렸고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 남편의 식성에 맞는 저녁을 차렸다. 남편이 소파나 안마의자에서 쉬며 핸드폰을 만질 때 나는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개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웠다.

주기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든 시기가 찾아왔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남편에게 어떤 것도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세 아이의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쉬고 있는 남편에게 놀아달라고 달려드는 아이들을 말릴 정도였다.

그의 업무량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내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 또한 힘들었지만 혼자 다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바보같이.

남편도 그랬을지 모른다. 집안일을 도와 달라는 말에 남편은 그렇게 힘이 들면 사람을 불러 도움을 받으라고 얘기했다. 꼭 남의 일을 얘기하는 것처럼 귀찮아하는 듯 들렸고 무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큰 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작은 손 하나가 아쉬울 뿐이었다. 햇살 좋은 주말 아침 나와 함께 물걸레질을 하던 남편은 더 이상 없었다.

중요한 회사로 나가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아주 중요한 돈을 벌어오는 남편에게 집안일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이 되어갔다. 일밖에 모르는 그에게는 아무래도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 일을 중요하게 하고 있는 나로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대단하지도 않은 일을 혼자 다 해내지 못해 바쁜 남편에게 징징거리는 무능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아니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결혼 후 나는 여태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잘 먹고 잘 살았으니까.

말로는 나를 위하고, 사랑하며, 우리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그런 나와 가족을 위해 그가 하는 것은 중요한 회사일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덜 중요한 집안일은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더 중요한 회사일을 실수 없이 열심히 하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회사의 대표이기에, 그가 맡은 책임이 크기에, 자신이 아니면 해낼사람이 없기에 남편을 충분히 이해하다가도, 나는 부하직원 이전에 가족이기에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남편과 일 얘기, 집안일 얘기, 육아 얘기를 하고 있으면 답답했다.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었고 어항 속에 갇힌 것 같았다. 그건 상대도 같을 것이었다.

마주 보며 얘기하면서도 각자의 말은 서로에게 가 닿지 않았다.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어 닿을 수 없도록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수만 가지도 넘게 있었지만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여전히 싸우고 싶지 않았다.

분명 처음엔 우리도 '싸움'이란 걸 했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하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남편의 기분을 살펴가며 툴툴거릴 뿐이었다.

남편은 나의 투정을 잘 받아주는 편이었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터질 수밖에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남편이 화를 내는 게 무서워졌고 나의 입은 점점 꾹 다물어지고 말았다. 화를 내는 남편이 무서워 내 화를 오히려 꾹꾹 눌러 담았다. 안으로, 더 안으로.

어차피 나는 그에게 공감받지 못했고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나에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나누는 단짝 친구와도 같았던 사람인데 점점 남편과의 대화가 즐겁지 않았다.

누구의 잘못으로 달콤했던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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