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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Aug 25. 2017

여름 단상



새벽  , 아파트 7 베란다의 문을 열어 바깥을 바라본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습도는 깊게 들이마셔도 코끝에 텁텁함만을 남긴다. 가로등 불빛에 온몸을 던지는 하루살이의 산만한 움직임 아래 한낮의 뜨거움이  식은 아스팔트 위를 차들이 웅성거리며 지나간다. 시선을 정면으로 두면 맞은편 산에 빽빽하게  있는 나무들 사이로 어둠이 들어 더욱 짙은 명암이 느껴진다. 모든 것이 멈춘  같지만 불규칙하게  내는듯한 매미소리가 다시 뜨거운 낮을 기다리는듯  울음을 보내고, 간간이 우산을  사람들은 핸드폰 불빛을 보며 지나간다. 가로등과 아직 불이 꺼지지 않은 정류장의 불빛 때문에 밖은 여린 회색빛이다.


나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보려고 부러 눈을 크게 뜬다. 한낮이라면 땅에 닿는 비의 경쾌한 볼우물을 보는 것도 좋지만 밤에는 가로등이 퍼뜨리는 은근한 불빛에 의지한  떨어지는 빗방울의 산발적인 움직임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어서이다. 어둠  풍경에 대한 호기심은 이내 먼지 쌓인 철창의 견고함과 촘촘한 철조망의  때문에 시선과 함께 흐려지고 만다. 매일 겪는 익숙한 풍경이 낯설게 보일 때가 있는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도  나쁘지 않다. 관찰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힘을 주기도 하지만 이미 알고 있던 것을 낯설게 보는 재미도 주기 때문이다.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다른 모습을 발견하듯 내가 머무는 공간이 새로운 감각을 깨워  때가 있다. 사실 이런 재미라도 발견하지 않으면 매일의 일상은 버티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을 늘어놓는 것이 누가 알아주는 것도, 대단한 발견도 아니지만 어떻게든 재미를 찾기 위한 무의식적인 행동이다.  


같은 아파트에서 5년을 넘게 살았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길과 동네 입구에 있는 편의점의 위치를 파악하고,  도착해야 하는 곳과 꼭짓점을 이어  정류장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으로 생활의 발견은 시작되었다.  번의 사계절을 지내며 동네에 감나무와, 대추나무, 모과나무 말고도 이름을 알게  나무의 목록이 생겼고, 완연한 봄이 오기 전에 복도식 계단을 오르면 2층과 3층에 걸쳐 목련나무에 꽃이  장관을   있다는 것도 알았다. 요즘에는 경비실을 오른쪽으로 끼고돌아 동네 현관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보이는 무궁화에 시선을 빼앗긴다. 크기만 다르고 똑같은 형태로  아파트 단지 안에도 수많은 꽃과 벌레들과 나무들이 계절을 보내길 반복하고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다. 주변의 모든 것과 일면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함께  쉬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파트 층간의 작은 소음조차 느껴지지 않는 시간이라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막차로 보이는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에도 감각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유심히 바라보다 갑자기 이곳은 영원히 머무를  있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여름의 낮은 길지만 계절은 그렇지 않다. 분절된  마디가 아니고 빠른 유속을 가진 흐름이다. 시선을 끄는 정돈된 거리며 도로 건너편에 보이는 산과  옆의 건물들은 내가 사들인 물건들과 함께 어쩌면 나보다  오래 남을 것이다.


인간의 생이 머물다 가는 것이라는 자연적 순환과 맞물려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 ‘지금 여기’의 이상한 마법이 시작된다. 여행의 순간과 장소가 소중한 이유는 돌아올 비행기 티켓과 더불어 오래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반대로 언제든 볼 수 있다면 머잖아 공간은 특별할 것 없는 하나의 풍경에 그칠 것이다. 그래서인지 여행의 한정된 시간은 평범한 거리며 사람들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마음먹고 떠나는 며칠의 여행은 아니지만 산책을 하며 계절의 흐름을 의식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제철 음식을 나눈다. 다정한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고 가끔 책에서 좋은 글귀를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는 일상도 매일의 편도 여행이라 생각하면 뭐든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쉰다. 미세하고 텁텁하긴 해도 엷은 새벽의 공기가 느껴진다. 하루의 뜨거움과 먼지와 일과의 부산물 닿을  있는 표면이라면 어디든  들러붙어 있는  같다.  뜨거운 계절을 열심히 살아내는 것들. 번식하고 썩고, 팽창하는 것들을 떠올린다. 마치 나도  일부가   같다. 모든 순간이 절정인 것처럼 하루살이는 아직도 불빛 주위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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