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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Mar 23. 2020

세상의 간격

코로나 바이러스를 겪으며



학창 시절 마지막 국민학교 세대를 졸업한 내 또래 아이들에겐 조회 문화가 있었다. 등교를 하자마자 가방을 벗어 놓고 운동장에 반별로 줄을 서서 단상에 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다. 어릴 때 빈혈 때문에 습관적으로 픽픽 쓰러지던 나는 답답한 교실보다 바깥이 좋아서 운동장을 밟으며 곧장 뛰어 나갔지만 그 기분이 지루함으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였다. 올바른 학교 생활의 지침과 바른 어린이 혹은 청소년이 되기 위한 덕목들은 교장 선생님이 얕은 기침을 할 때마다 단상 너머로 흩어졌고 머릿속에서는 장난을 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앞으로 나란히를 하며 앞 친구와의 간격을 어림 잡다가 뒤가 궁금해서 휙 돌아보기도 하고 양쪽으로 선 아이들과 줄이 맞는지 몸을 기울여 관찰하기도 했다. 나같이 가만히 못 있는 애들은 꽤 많았고, 도망가거나 이대로 증발하고 싶다는 상상을 하다 내심 빈혈이 나길 바랐다. 그 시절, 내가 경험한 친구들과의 간격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장난기를 유발했던 종류로 기억한다. 머리가 크면서 세상에는 무마할 수 없는 간격과 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몸이 약하거나 무리에 끼지 못하는 아이들은 쉽게 무시당하고, 습관적인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는 친구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어딘가 약해 보이는 애를 골라 집요하게 굴었다. 장애가 있거나 얼굴에 화상 자국이라도 있는 애는 더 쉬웠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닌데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본능적으로 가해자든 피해자든 어떤 쪽도 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원래부터 무리에서 튀는 걸 싫어했기 때문에 조용히 지내는 편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을 예습하는 장소인 만큼 규율과 안전, 보호망 속에서도 분명 차별과 배제가 존재했다. 6학년 체육시간 때의 일이다. 친구와 짝을 맞춰 연습해야 하는 운동이 있어서 바로 옆에 있던 친구에게 같이 하자고 했다. 걔는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큰 아이였는데 대뜸 내게 “넌 키가 작아서 나랑 친구가 될 수 없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올려다 본 친구는 햇빛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목소리가 또렷이 들렸고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피했다. 가끔 그 장면이 영화의 미장센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전혀 미학적인 추억이 될 수는 없지만 거절의 이유가 얼토당토않은 ‘다름‘에 있다는 것과, 키가 작다는 이유로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의식하게 된 최초의 사건이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바이러스’라고 힘주어 한 말은 심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미국과 유럽에 바이러스가 번지기 전부터 빈번했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적 의식에 불을 지핀 셈이다. 그 말속에는 각국의 표면적 거리를 넘어선 분노와 혐오 감정이 녹아 있었다. SNS를 보던 중 알게 된 사실인데, 세계 곳곳으로 요가 수련을 다니는 한 사람은 최근 스리랑카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숙박을 거부당했고, 싱가포르 출신의 한 영국 유학생은 옥스퍼드 길거리에서 청년들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재난을 겪을 때 각자도생 하게 되어 있지만 의식마저 그렇게 된다면 혐오와 차별은 바이러스보다 더 깊숙이 번질 뿐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아시아인을 코로나 바이러스의 상징처럼 여기더니 정작 모두의 바이러스가 된 지금 차별이 무식이라는 것만 증명했다. 한국의 바이러스 대응에 대한 외신의 긍정적 보도와 찬사, 도움 요청으로 분위기가 전환된 지금, 이제 더 이상 바이러스는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초등학교 때 나 살자고 누군가가 차별을 당해도 모른 척하다가 내게도 그런 일이 생겼을 때의 충격과 함께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의 프레임을 생각하니 너무 가벼워서 우습기까지 하다. 요즘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면 어떤 희망이 느껴진다. 각자 먹고살기 바쁘던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연대하고 있다. 이런 게 공동체가 가지는 힘인가 보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새로운 사회적 키워드가 된 후 개개인의 긍정적인 참여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 몰상식한 교회 단체나 위험에 대한 경계가 없는 혈기 왕성한 클러버, 업장 등이 아닌 이상 밖을 나서면 열 명 중 아홉은 마스크를 끼고, 개인 생활 수칙을 지키며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병원에서 방호복을 입고 흡사 전시(戰時)상황처럼 움직이는 의료진들, 자신의 지역이 아닌데도 자원해서 대구・경북의 상황을 돕겠다는 구급대원들, 물자를 보내고 기부를 하는 사람들, 자신이 확진자임을 감지하고 동선 일지를 써서 남을 배려한 사람 등 모두가 영웅 시민이다. 또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단어 안에서 그 거리를 좁히고 메우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평소보다 더 많은 활동을 해야 할 택배 기사님, 거리의 환경 노동자, 방역 소방 대원과 같이 사회적 ‘안전‘거리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의 노력 덕에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이어간다. 다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투잡을 뛰는 사람들, 마스크를 구할 여력이 없는 독거노인과 장애인, 재택근무를 할 수 없는 노동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히려 사회적 배제로 다가올 수도 있다. 평소 노숙인이나 취약 계층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는 밥차도 감염 우려로 수를 줄인 바람에 한곳으로 사람들이 쏠리고, 도시락 형태로 대체되어 배를 주리는 일이 있다고 한다.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이미 사회적 보호와 시스템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당장 배를 채우는 일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보다 더 급한 일일 것이다. 우리가 사회적 캠페인을 통해 불안을 덜고 마음 편히 일상을 보내는 중에도 누군가는 감염에 노출되고 배고픔으로 거리에 나선다. 사회적 거리는 있어도 마음의 거리는 가까이라는 요즘 말이 이토록 강한 시너지를 내는 시기도 없는 것 같다. 시사IN의 한 칼럼에서 ‘재난은 연대와 각자도생을 둘 다 만들어내는 것 같다’라고 쓰인 말을 보았다. (천관율 기자) 우린 어려움 앞에서 저마다의 삶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그 노력은 연대를 통해 더욱 고양된 가치를 지닌다는 걸 시사한다. 삶의 거리 안에서 서로 모른 척하지 않고 보듬는 간격이 있어서 이번 재난은 분명 희망의 역설이 될 거라고 믿는다.        


지인으로부터 받은 한 장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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