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한창이다. 되도록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외출을 삼가야 하는 것이 어색하지만 봄의 풍경이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다. 아파트 화단에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문득 보이는 모습으로 계절을 실감하고 있다. 부풀어 오른 빵처럼 꽃잎이 나뭇가지를 뒤덮어서 봄을 봄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어진 요즘, 비로소 계절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 봄은 소리도 없이 거리를 채색하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이맘때 괜히 비 소식이 있지 않을까 일기 예보를 보게 되는 것도 꽃을 오래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어차피 마음대로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봄은 짧게만 느껴진다. 어디 봄만 그럴까. 좋은 순간은 이상하게 몇 배속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어린 시절, 나는 가족끼리 주말에 어디를 갈 때마다 “이다음엔 뭐해?”라고 묻는 아이었다. 엄마는 이만큼 놀았으면 되지 않냐고 핀잔을 주면서도 다음에 또 놀러 가자며 나를 달랬다. 놀면서도 이 즐거움이 끝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항상 그다음 일을 확보하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이 없다는 걸 알고 나면 괜히 풀이 죽었다.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 땐 옆에 있던 친구까지 일어나서야 집에 가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그럴 때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놀이터 한쪽에 흙을 파 두거나 나만 아는 장소에 돌멩이나 찧은 꽃과 풀을 두고 다음날 찾아가는 일명 ‘흔적 남기기 놀이’를 했다. 그렇게 해 두면 왠지 집에 돌아가서도 놀이의 기분을 이어갈 수 있었다. 전날 남긴 흔적이 다음날에 그대로 있으면 게임에서 이긴 것처럼 짜릿했다. 이제는 안다. 언제고 끝나지 않을 즐거움은 없다는 사실을. 놀지 않을 때에도 놀이를 이어가던 어린 시절을 지나 아쉽고 슬픈 마음을 자주 의식하느라 좋은 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기도 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그렇지만 익숙하면서도 생경한 계절이 찾아올 때, 여행지에서 낯선 거리를 걸을 때, 물속에 몸을 띄울 때, 사랑하는 사람들과 있을 때 좋은 순간으로 가득해져서 어린아이의 것과도 비할 수 없는 행복을 아는 사람도 되었다. 영원히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걸 알아서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는 마음은 한창때의 꽃을 보는 마음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놀이동산의 대미는 퍼레이드로 장식된다. 화려한 불빛과 귀여운 인형 탈을 쓴 캐릭터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공연자들이 신나는 음악과 함께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우리는 언젠가 퍼레이드가 끝난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에 몰입한다. 아마 밤새 열리는 퍼레이드는 지루할 것이다. 아름다운 순간은 끝과 함께 각인되기 때문에 다음날 같은 퍼레이드를 또 보지 않아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다. 카피라이터 유병욱의 책 <평소의 발견>에서는 여행을 할 때 가장 아쉬운 순간을 ‘튜브에서 바람을 빼야 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여행을 하며 제멋대로 널브러진 짐을 다시 원상태로 싸야 할 때와 돌아올 날짜와 시간이 적힌 비행기 티켓을 볼 때 그런 아쉬움을 느꼈다. 분명 좋은 순간에는 끝이 있는데 그 무거운 비례가 영원한 끝이 아님을 보여주는 재밌는 문장이 있었다.
튜브에서 바람을 뺀다는 건, 이제는 짐을 싸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내일과 모레가 다를 바 없는 일상으로 돌아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다음 여행을 기다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중략) 하지만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튜브에서 바람을 빼는 바로 그 순간 때문에,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거라고. 여행엔 늘 ‘끝’이 있습니다. 돌아가는 날이 있습니다. 나에게 여행지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길어야 일주일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인지도 모릅니다. 다시 못 올 곳이니까 온 힘을 다해서 돌아다니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기꺼이 차를 타고, 버스 창밖의 표지판을 관찰합니다. 며칠 전에는 내가 ‘후짱’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외할머니의 여든다섯 번째 생신이었다. 엄마는 할머니 생신이 돌아올 때면 항상 새 옷을 선물하고 화장을 해드린다. 덕분에 이 날은 평소보다 더 진하게 립스틱을 바르고 볼터치를 한 할머니를 볼 수 있다. 곧 조카의 돌도 다가와서 겸사겸사 이모네 식구들도 함께 모였다. 중국집에서 코스 요리를 배불리 먹고 동생네 집 쪽으로 걸어오는 길에 벚꽃길이 쭉 펼쳐져 있었다. 벚꽃 명소도 아닌 그냥 아파트 앞 작은 가로수 길인데도 그곳을 가득 채운 꽃무리에 다들 걸음이 느릿느릿해졌다.
“우리 사진 찍자 “
9명의 식구들이 엉거주춤 서서 잠시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는 걸 아는 건지 아직 돌도 안된 조카가 카메라를 빤히 쳐다보는 게 귀여웠다. 꽃길이 예뻐서 사진을 찍게 된 것이지만 그 순간은 모두가 만발한 꽃처럼 환했다. 사진을 남긴다는 건 떨어질 꽃과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일이다. 꽃이 지고 오늘이 또 다른 오늘로 잊힌대도 보란 듯이 남을 기억이다. 나는 일부러라도 이런 순간을 자주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창’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가장 활기 있고 왕성하게 일어나는 때. 또는 어떤 상태가 가장 무르익은 때’를 말한다. 벚꽃처럼 매일이 한창일 순 없으니 나는 어떤 날도 사소하지 않게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 날도 아닌 때에 엄마께 꽃을 선물하고 매일 걷는 길을 유랑하듯 걷는다. 일전에 엄마께 꽃을 선물하는 나를 보더니 할머니는 “어차피 죽을 거 아까워서”라고 하는 말과 함께 평생 꽃집에서 꽃을 사 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말 대신 “꽃 향기 좀 맡아보세요”라고 꽃을 들이밀었는데 할머니는 향기를 맡더니 환하게 웃으셨다. 좋은 걸 숨기지 못하는 속수 무책의 웃음이었다. 속으로 앞으로는 엄마 꽃을 사면서 할머니 것도 준비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무 날이 아니더라도.
한창때의 행복을 아쉬워하며 또 다른 때를 도모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아닌 오늘을 아무거라도 있는 날로 여기고 싶다. 어제와 오늘이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일상 같은 것. 가령 어제 읽은 책은 다시 오늘 읽는 책이 되고, 책장을 덮는다 해도 세상에 읽어야 할 책들은 많은 것처럼. 곧 봄비가 온다고 해도 괜찮다. 벚꽃은 떨어지는 모습도 충분히 아름다우니 말이다. 마스크를 낀 2020년의 봄은 그마저도 소중하다. 한창때의 봄에 아쉬움은 조금 접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