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I Sep 03. 2018

 플라스틱 오염과 안녕을 고한다



어린 시절 놀이터는 들어서자마자 발이 움푹 들어갈 정도로 흙과 모래가 가득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줄도 모르고 놀이터를 누비다 더 이상 할 것이 없어지면 철퍼덕 앉아 땅을 팠다. 손으로 한 움큼 집어 보기도 하고, 작은 돌이나 지나가던 개미를 유심히 살피기도 했다.


하루는 땅파기를 하다 뭔가 손에 걸려서 계속 파보니 검은색 조각이 끌려 나왔다. 나를 발견한 친구가 득달같이 달려와서 골똘히 보더니 이건 예수님의 옷이라고 했다. 그때 엄마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어리둥절했지만 아무리 봐도 땅 속에 오래 방치된 비닐봉지 같았다. 친구는 다시 잘 묻어놔야 한다고 했고 그렇게 놀이는 끝이 났다. 지금도 놀이터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때면 그 장면이 자동으로 연동된다. 땅 속에 매립된 비닐이 분해되는 시간은 500년. 만약 친구가 예수님의 옷이라 한 게 정말 비닐이라면 아직도 건재하겠구나.


스페인 해안에서 사체로 발견된 향유고래의 사진을 봤다. 십 미터나 되는 체격을 가진 고래의 몸 안에서 우산 페트병 그물망 비닐이 자그마치 29kg나 나왔다고 한다.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발견된 바다거북의 코에 빨대가 꽂힌 모습이 담긴 동영상은 재생을 누르기도 두려울 만큼 끔찍했다. 빨대를 빼려는 연구팀에게 몸을 맡긴 채 피를 흘리며 신음하는 눈빛을 보니 왠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육지에서 강으로 다시 해안으로 떠내려간 플라스틱 쓰레기가 결국 해양 생물의 목숨을 위협한다. 관련 기사를 보다가 검정 봉지를 들고 있는 북극곰의 사진도 보게 됐는데 비닐에 남은 냄새 때문에 먹이인지 아닌지 헷갈려하는 표정이었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재료들이 생산과 쓰임에만 열을 올리는 사이 말없이 썩고 곪아가는 생명들이 있다. 우리는 항상 환경 전문가들이 “30년 뒤에는”, “50년 뒤에는”이라고 하는 경고를 유통기한 정도로만 취급하는 걸까.  


마트에서 고기를 사면 비닐에 넣고 손에 묻지 말라고 비닐에 한 번 더 담아준다. 빵집에서는 비닐에 따로 싼 빵을 큰 비닐봉지에 넣어 준다. 집으로 가져가는 시간만큼을 벌기 위한 편의다. 커피숍에서 음료가 담긴 플라스틱 컵에 플라스틱 빨대를 끼운다. 일회용품에 배달된 음식을 먹고, 세탁 비닐에 싸인 옷을 찾아온다. 너무 당연하게 사용하다 보니 타성에 젖었다. 타성은 ‘오랫동안 변화나 새로움을 꾀하지 않아 나태하게 굳어진 습성’을 뜻하는데 당장 내 일이 아닌 영역엔 새로움을 요구하지 않는다. 노력을 진통처럼 앓고 나서야 걸러지는 미립자가 작은 변화의 시작일 텐데 말이다.     


나는 플라스틱 오염의 가해자다. 우리 집 세탁실 위 찬장에는 비닐봉지가 쌓여있다. 웬만하면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는데 급하게 나오거나 예상 밖의 물건을 살 때 하나 둘 보관하다 보니 쓰레기를 버리는 날마다 사용하고도 남을 만큼의 비닐봉지가 있다. 비닐봉지가 쓰레기를 버리기 위한 예비 쓰레기로 사용되는 것이다. 물을 자주 마시는 습관을 들이려고 일부러 작은 페트병을 배달시킨다. 물을 쉽게 마시는 데 성공했지만 버릴 페트병이 수시로 쌓인다. 예쁘다고 산 텀블러가 열 개도 넘는데 세척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일회용 잔에 담긴 커피를 더 자주 마신다.


그동안 세계 곳곳의 플라스틱 폐기물을 수입해 온 중국이 올 초 수입을 중단하면서 유통업계나 산업 전반의 변화를 앞당겼다. 중국은 값싸게 수입한 플라스틱 폐기물을 재가공해서 수익 구조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중국 자체의 생산량이 높아져서 수입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 우리의 고민을 덜어주던 중국이 더 이상 플라스틱 폐기물을 받아주지 않으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원료, 제조, 처리 방식과 비용을 아울러 고민해야 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결국 환경을 위한 일이니 반가운 일이다. 스타벅스는 2020년까지 전 세계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없애기로 했고, 백화점 편의점 대형 마트와 같은 유통업계에서도 일회용 봉투에 대한 규정이 보다 엄격해지고 있다.


요즘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가면 유리컵이 달그락대는 소리가 들린다. 실내에서 음료를 마실 때는 일회용 컵이 아닌 유리컵에 제공되고 있어서 직원이 계속해서 컵을 씻어 나른다.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스타벅스에서 유리컵을 훔쳐가는 사람이 있다는 글을 보기도 했다. 도벽이 있는 사람은 둘째치고 역시 커피는 온도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컵이 가장 잘 어울린다. 한여름에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챙겨 나가면 하루 종일 얼음이 녹지 않아서 얼음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예쁘고 가볍다는 이유로 하나 둘 모은 천 가방은 더할 나위 없는 장바구니가 될 수 있다.


사주 애플리케이션에서 심심풀이로 클릭한 포춘 쿠키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우리가 걱정하던 내일입니다.’


아뿔싸. 그러고 보니 가해자에게는 걱정할 시간이 없다.  








작가의 이전글 취향의 선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