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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Aug 27. 2018

취향의 선택



가끔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간다. 매일 끼니를 때우듯 마시는 커피도 중요하지만 일부러 시간을 들여 즐기는 커피가 필요하다. 일상의 수많은 선택 가운데 먹는 일만큼은 참 정직하게 마음이 동한다. 그래서 누군가와 친해지려면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닌가 보다. 밥은 함께 먹을 때 더 맛있다는 느낌이 들어도 커피는 꼭 그렇지 않았다. 커피 시간에 품을 들인 결과 생긴 두 가지 기준이 생겼다. 첫째, 혼자 마실 것. 둘째, 카푸치노를 첫 잔으로 마실 것. 다르게 말하면 혼자 마실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하면서 카푸치노가 맛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카푸치노가 첫 잔이어야 하는지는 아주 간단하다. 몇 해 전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마신 카푸치노 때문이다. 그때는 한겨울이라 움직일 때마다 코트  자락으로 찬바람이 들어서 윽 소리가 절로 났다. 지도를 보며 걷다 보니 노란 불빛으로 가득한 커피숍에 도착했다. 낡은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곳인데 대문 옆에 문패처럼 쓰인 간판 덕에 맞게 찾아온 걸 알 수 있었다. 작은 뜰을 지나 계단 몇 개를 오르고 문을 열었다. 빵 굽는 냄새와 커피 향이 밖에서 본 빛과 섞여 한기가 서린 몸에 닿았다. 공간을 채운 사람들과 열린 주방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적당한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카푸치노 한 잔을 시켜 둥근 원목 테이블이 있는 자리에 앉았다. 투박한 하트가 그려진 따뜻한 잔을 손에 머금고 후루룩 첫 입을 들이켰다. 우유가 조금 섞여서 부드럽고 쌉쌀한 맛이 입안에 가득 찰 때쯤 윗입술로 느껴진 우유 거품에서 원두의 기분 좋은 탄 내음이 났다. 금방 식고 줄어드는 커피 잔을 아쉽게 바라보면서도 그 한 잔으로 이미 충분해진 기분이었다. 그 마음을 배턴 터치하듯 뜨거운 원두커피로 이어갔다. 우연한 경험이 확고한 취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날의 커피로 기억한다.


취향이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같은 빵을 먹어도 “팥빵이 팥빵이지”라는 식이 아니라 “나는 이런 스타일이 좋아”, “이건 이런 차이가 있어서 다르다”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사람. 취향이라는 고유한 색을 가지면서도 타인의 취향을 너른 눈으로 지켜볼 수 있는 배경색을 지닌 사람이 좋다. 좋아하는 사람은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취향이라는 명사가 가진 범접하기 어려운 첫 이미지와는 달리 국어사전에서는 취향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으로 정의하고 있다.

 

내가 아는 사람과 건너 건너의 인맥을 다 통틀어도 아직 엄마만큼 마음 방향을 잘 따라가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합창단, 그림, 수영, 볼링, 줌바 댄스, 기타, 가요 교실, 탁구 교실, 사주 명리 등 엄마가 취미라는 이름으로 배운 목록들만 얼핏 떠올려 봐도 가짓수가 꽤 된다. 몇 년 전부터는 인터넷 카페에서 결성된 탁구방의 총무가 되어 2년을 이끌었고, 지금도 계속 탁구를 치러 다닌다. 나는 그동안 숨겨진 조력자로서 게시할 글을 대신 올리곤 했다. 사실 카페에 올라온 동영상 속 엄마를 보면 실력이 늘 그대로인 것 같다. 아주 잘 하는 것도 못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실력이랄까. 그렇지만 보기 좋은 건 실력이 아니라 활짝 웃으며 그 순간을 즐기는 모습에 있었다. 엄마는 운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모임이 즐겁다고 했다.


최근 엄마는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조금씩 배우더니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한 달 이용권까지 끊었다. 만날 때마다 자전거를 타자는 엄마에게 가을쯤 연습하면 어떻겠냐고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루 함께 잔 날 아침에도 날 깨워서 따릉이를 타러 갔다. 아직 페달을 밝고 나아가는 것도 불안해서 안장을 잡아 줘야 하는데 30분도 안 돼서 온 몸에 땀이 나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온갖 잔소리를 늘어놓는데 엄마가 웃으면서 말했다.


“두고 봐. 잘 못해도 꾸준히는 할 수 있어.”


“잘 못한다”와 “꾸준히 한다”는 말이 이렇게 결속력이 있었나 싶을 만큼 단단하게 들렸다. 뭔가를 뛰어나게 잘 하지 못해도 취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오랜 시간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남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취향은 마음의 방향이 가리키는 신호다. 취향이 그동안 당당하게 취급받지 못한 이유는 취향을 곧 유용성의 잣대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때문이다. 취향은 편리함 이득 요령 결과와 어울리지 않는 고유함이 있어서 애초에 타인에게 평가받을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오래 두고 본다면 잘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잘 하려다가 중도에 그만두느니 하고 싶은 일을 오랫동안 즐기고 싶다.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팟캐스트를 들은 지 꽤 되었는데 듣고 흘려보내는 게 아쉬워서 노트를 만들었다. 노트 정 중앙에 '팟캐스트'라 쓴 스티커를 붙이고 여백에 내용을 채우기 시작하니 들을 때 더 집중하게 되고 기록이 남아서 좋다. 뭐든 종이에 적는 습관이 취미로 이어진다는 건 꽤 든든한 일이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면에서 취향은 취미랑 닮았다. 취미 부자가 되고 싶다. 그렇게 마음이 만드는 방향을 따라가다 보면 살아야 해서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에 이끌려서 사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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