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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NI Aug 20. 2018

정리의 기술?

 



한때는 간소하게 사는 삶이 화두였다. 인테리어부터  먹고사는 방식과 생각까지 잘 덜어내는 것의 중요성을 책이나 여러 방송 매체에서 부각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가정집이나 연예인의 집에 찾아가서 공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보여주는 형식의 프로그램이 흔했다. 서점에도 ‘~하는 법’ 식의 관련 책이 눈에 띄는 평대에 줄줄이 진열되어 있었다. 자기 계발서에는 관심이 없던 나도 베스트셀러에 있던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을 사서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 2012년에 초판이 나오고 2년 만에 12쇄를 찍을 정도였으니 당시 서점가에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미니멀 라이프’의 지반을 증명한 셈이다. 이 책이 인기가 있던 이유는 왜 소유하려는지 모르고 계속해서 뭔가를 원하는 사람들의 과열된 욕망을 어느 정도 식혀 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단순히 주변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정언명령식으로 풀어낸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이라는 삶의 질적인 측면을 함께 끌어올린 흔적이 보이는 책이었다. 가끔 어질러진 집을 막막하게 바라볼 때, 양손 가득한 쇼핑백을 정리도 안 된 집 안에 쑤셔 넣는 기분이 들 때 처방책처럼 꺼내보곤 했다. 이 책이 우리 집 서가에 다시 봉인된 시점이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이 책을 다시 펼치게 되었다.  


결혼 후 인테리어를 해서 들어온 첫 집은 원금과 함께 갚아야 할 이자가 매달 같은 날에 통장에 찍히고 있다. 아껴 쓰면 용돈으로 두 달도 쓸 수 있는 돈이 매달 통장에서 유령처럼 빠져나간다. 내가 사는 공간에 빚을 지고 있다. 애초에 빚을 지겠다는 사람도 나였다. 언젠가 완전하게 소유하게 ‘될’ 내 집에서 이사도 가지 않고 평생을 살고만 싶었다. 사람 마음이 얄팍하고 간사하다는 걸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 인테리어를 맡겼을 때 업체 사장님이 귀찮아할 만큼 매일 드나들면서 내가 상상한 집을 꾸미는 데 품을 들였다. 주방 타일의 위치와 간격이 기준에 맞지 않아서 다 뜯어서 다시 붙였고, 들어오자마자 튀어나와 있는 냉장고를 가리기 위한 가벽 디자인까지 그림으로 그렸다. 성가신 고객에 지친 사장님은 인테리어가 끝나고 감사 인사를 드리기도 전에 도망치듯 우리 집을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신혼, 5년이 넘은 시간 동안 영원한 새 것은 없다는 듯 공간에 사는 사람도, 물건들도 세월의 흔적을 보이고 있다. 요즘 들어 한 번 앉으면 허리가 아플 정도로 푹 가라앉아서 자꾸 자세를 고치게 되는 천 소파하며 물푸레나무로 만든 결이 고운 서랍식 TV장도 그 무게의 압박에 휘어졌다.


나를 위해 최적화되어 있다고 생각해온 공간과 물건들과의 권태기가 온 것이다. 감정을 이기지 못해서 헤어지거나, 다시 잘해보자며 관계를 이어갈 수도 있는 애매한 중간지점에 있다. 상상은 다른 공간에 대한 호기심으로 불어났다. 아파트라는 반듯한 정형성과 비인간성, 온기 없는 시멘트 거인의 어마 무시한 몸값을 생각하면 몇 년 새 값이 부쩍 오른 집을 팔고 집값 변동은 없어도 더 크고 깨끗한 집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시골에 대한 동경도 있다. 아파트 키즈로 시작해서 계속 아파트에서만 자란 사람의 뭣도 모르는 호기심 같은 거다.      


눈엣가시 같은, 아니 내가 눈엣가시라고 치부하는 사물들을 생각하다가 최근에 읽은 책에서 온라인 사전을 기획하고 만드는 사람이 전한 ‘정리의 기술’이 생각났다. 사실 그 챕터가 제일 재미없었다. 요는 물건을 쌓고 ‘덩어리 짓고’ 관찰한 다음 주관적으로 분류하라는 이야기였는데 정확성을 요구하는 사전을 만든다는 사람이 이게 무슨 억지인가 싶었다. 여기서 ‘덩어리 짓는다’는 표현 안에는 쌓이는 물건을 관찰하면서 내적으로 자연스럽게 분류체계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이런 모호함의 이유는 물건이 계속해서 쌓이기 때문이다.         


「심플하게 산다」와 그 재미없던 챕터가 동시에 떠오른 건 우아한 포용력을 갖춘 책을 통해 심리적 만족감을 얻고 왠지 모를 희망을 가지다가도 현실은 정리 안 된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소파나 TV장 같은 큰 물건들은 권태기와 상관없이 당장 없으면 불편할 게 뻔해서 그냥 둔다고 치자. 나 또한 음반을 모은다는 사전 전문가처럼 그동안 읽은 책이 점점 쌓이고 있다.


신기하게도 시간이 흘러 이해되는 맥락이 있었다. 우리집에는 작은 방에 한쪽 벽면을 꽉 채우는 책장이 있고, 거실과 안방에 책 선반이 하나씩 걸려있다. 책상 옆 책 수레까지 합치면 책을 놓는 공간이 네 군데인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방 서가에는 다 읽은 책들이 있고, 안방의 선반은 흥미가 붙지 않아서 잠들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들이 너덧 권 있다. 책상 왼쪽에 있는 선반에는 그냥 보기만 해도 좋은 책을 전시하듯 두었고, 오른쪽에 있는 책 수레에는 최근에 산 책들이 3층 간격으로 누워있다. 따지고 보면 곧 읽어야 하는 책들은 책상 가까이에 있고, 나머지는 이미 읽은 책과 잠들기 전에 잠깐씩 보는 책으로 나뉘는 것이다.




집과 여행 가방은 우리가 지극히 물건을 두는 장소다. 그 안에 담겨야 할 것은 결국 영원한 유목민에 지나지 않는 우리 자신 뿐인지도 모른다.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 中



정리 방법이 누구에게나 체계적이지 않은 건 물건에는 사적인 취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간을 채우는 물건에는 어떤 식으로든 취향이 묻어나고 물건이 있을 자리도 정해지는 것이다. 사전 전문가가 정리해야 할 물건을 ‘덩어리’로 표현한 이유를 어렴풋 알 수 있었다. 물건을 정리할 기술을 가진 사람은 나 뿐이니 말이다.


누구나 유독 아끼는 물건이 있겠지만 분명 내 집, 내 공간, 내 물건에 대한 첫 애정이 있었다. 그리고 애정의 근원지는 이곳에 살기로 선택을 한 자신에 있다. 은행 이자가 끝나지 않은 집, 점점 늘어가는 살림, 내가 사용한 만큼 낡아가는 가구. 이젠 새 것이 아닌 모든 사물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이 아니라 다시 최초의 애정을 기억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리하는 빠른 손이 더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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