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I Aug 13. 2018

아직 저자는 아닙니다만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



매일을 선택하며 산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물론이고 아침에 일어나서 물을 마실지 커피를 마실지도 선택한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일상에서 엄청난 선택을 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사소한 선택이 훗날 더 큰 기쁨과 후회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이틀 전 급하게 항공권을 끊고 떠난 여행이 너무 좋았다거나 제목만 보고 충동구매를 한 책이 의외로 생각지도 못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파장을 일으키는 일상의 변주는 나 자신이 만드는 일이라서 사소한 선택이라도 신중하게 따진다. 어떤 일을 잘 하고 싶다는 마음에는 적극적인 사심이 개입된다. 온 마음을 다해 누군가를 좋아하고, 잘 하고 싶은 일에 여력을 아끼지 않는 건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축복이다.


아쉽게도 세상은 사람들의 속도에 맞게 움직이지 않는다. 원인보다는 결과를 요구한다. 결과는 단매로 내려치듯 짧게 관통하지만 순간의 감각만 강조된다. 감각이 사라지고 나면 또 다른 결과를 기다린다. 결과물로 평가를 하고 받아야만 가치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초의 마음, 애정으로 시작한 일이 발현될 때 과정이 주는 내적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평창 올림픽이 끝나고 한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이상화 선수는 자신의 경기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자료화면으로 경기가 나갈 때도 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37초를 뛰기 위해 3시간의 워밍업을 한다는 그녀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뭐든 결과로만 평가받을 수밖에 없는 선수의 애환이 느껴졌다. 비단 국가대표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러하니 말이다.        


나는 ‘고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오로지 쓰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렇게 쓰면 온통 쓰기 위한 사람인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준비운동이라는 게 참 게으르다. 먹고 놀면서도 걱정을 하는 셈이다. 몸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선수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젠 일주일에 하나의 에세이를 쓰는 게 습관이 되고 일이 되었지만 이쯤 되면 물성이 있는 결과물을 만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 지점에도 걱정은 있다. 지금보다 글쓰기 근육이 단련되고 읽는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글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책을 만들지, 후회하더라도 일단 저지르고 봐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전자는 평생 생각만 하다가 끝날지도 모르고 후자는 일시적 만족은 얻겠지만 또 다른 치부를 드러낼 수도 있다.


고민이 시작되다 보니 왜 읽고 쓰는지에 관한 생각까지 하게 됐다. ‘세상에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이 많은데 왜 감정을 언어화하려고 하지?’, ‘글로 표현되는 순간 다른 감정은 배재한 채 활자에 생각을 가둬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왜 많은 책을 읽을까’와 같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그동안 이런 고민을 하지 않은 이유는 너무 단순하다. 좋아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걸 잘 하려다 보니 생겨난 굳은살 같은 거다. 굳은살이 생긴 걸 의식하게 되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를 원점에서 되짚을 수 있었다. 좋아서 하는 일에도 관성이 생긴다. 익숙하다는 착각이 환기되는 순간이 있어서 자신을 객관화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도 얻는 것 같다.

              

세상에는 저마다의 상황에 따라 탄생한 결과물이 너무도 많다. 서점에 차곡차곡 진열된 책들을 보면 왠지 모를 경외감까지 느껴진다.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세상의 모든 결과물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부풀려진 문제도 본질로 돌아가면 쉽다. 애초에 나는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기로 했다. 물론 적극적인 사심으로 시작된 일에 욕심을 부릴 날도 올 것이다. 누구에게나 완전한 결과물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 욕심을 부리는 나를 나 자신이 믿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서 혜민 스님은 ‘일이나 공부를 열심히 하긴 하되 열심히 하는 기분에 빠지지 마세요.’라고 적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기분에 빠지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열심히 하는 쪽은 집중하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즐기는 반면 열심히 하는 기분에 빠지는 쪽은 보여주기에 급급하다. 본질에는 비본질의 문제가 항상 따라붙게 마련이니까 의식도 칼처럼 날을 세워야 한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지만.


물에 뜬 돌멩이는 언젠가 가라앉게 되어있다. 문제는 가라앉을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는 마음이다. 내가 괴롭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대부분 그랬다. 돌멩이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는데도 당장 해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생각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것이다. 문제의 본질에는 털끝만큼도 다가가지 못했는데 감정에만 빠져서 허우적대는 모습이랄까. 어쩌면 사뭇 진지하게 문제를 바라보는 게 두려워서 좀 더 쉬운 감정으로 도피한 걸지도 모른다. 어떤 쪽이든 쉬운 건 없으니까 뭐가 낫다고 할 수 없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는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탓을 하다 보면 한 번 물꼬를 튼 곳으로 마음이 흘러가는 기분이 들더라. 그렇다고 남 탓을 하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도 자주 이야기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