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한다.
돌 갓 지난 내가 팔팔 끓는 물을 뒤집어 쓴 날.
맞벌이로 먹고 살기 급급했던 부모님은 나를 돌볼 여력이 안됐다.
그 시절이 지금처럼 보육 시설이 잘 되어 있기를 했나,
전문적인 돌보미가 지원 되기를 했나...
하는 수 없이 종종거리며 이웃이나 가족끼리
서로의 아이를 돌아가며 봐주는 것이 고작인 때다.
겨우 걸음마를 시작할 즈음,
나는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졌다.
할머니는 손이 야물고 바지런한 분이셨는데,
그 날도 커다란 솥에 곰국을 끓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잠시 등을 돌린 사이,
나는 부글대는 솥을 붙들고 넘어졌다.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솥 물을 뒤집어 쓴 채
자지러지는 나를 보는 순간,
할머니는 눈 앞이 캄캄했다 했다.
할머니는 나를 들춰 안고 고함으로 옆집 아저씨를 불러,
차를 얻어 타고 읍내 병원으로 뛰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 누구한테 연락 할 겨를도 없이
나를 안고 뛰던 할머니 머릿 속에
얼마나 무서운 상상들이 오갔을까...
때마침 큰 이모가 할머니 댁으로 전화를 했고,
대신 집을 봐주던 동네 아주머니가 사정을 전했단다.
이모는 다급히 큰 병원의 의사였던 이모부에게 알렸고,
이모부는 당장에 아기를 데려오라 하셨다.
할머니는 곧장, 이모부 계신 대구 행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는 앰뷸란스까지 대기 중이었다니...
안 봐도 난리통인 상황이다.
이모부는 심혈을 기울여 집도를 시작했을터.
여자 아이 다리에 흉이라도 지면 어쩌나
온 신경을 집중하셨다고...
그날 밤, 할머니는 미안하다 울며
밤 새 붕대를 감은 내 다리만 바라보셨단다.
부모의 속은 오죽했으랴,
어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세상 무너질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에도 다음 날 일을 해야하니,
아픈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애달플 수 없었다고...
아버지 차를 타고 돌아가는 길에
도로 양 옆으로 코스모스가 흐드러졌고...
젊은 두 부부는 말 없이 한 참을 울었단다.
고작 어른 팔뚝만큼 작은 아기 하나가
온 집안은 물론, 시골 마을까지 벌집 쑤셔놓듯 뒤집어 놨다.
그럼에도 참 감사한 일은,
모든 어른들이 같은 마음으로 힘을 합친 덕에
내 다리는 거뭇한 자국 외에 매끈히 회복됐다.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이지만,
가족들이 두고두고 그 사건을 가슴 쓸어 내리며 이야기 할때면
나는 어쩐지 뜨끈하게 저릿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나는 온 마을의 정성으로 이토록 무탈한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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