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다 Oct 18. 2023

2인분 이상부터 주문 가능합니다

[내면아이 에세이]_동그라미 시리즈 no.02

눈을 떴다.

몸살 기운에 종일 잠에 취했다가 이제서야 어스름이 내린 천장을 마주했다. 울적해지기 전에 서둘러 전등을 켰다. 뭐라도 먹어야겠다. 꼬부장 쪼그려 앉아 한참 배달 어플을 뒤적였지만 죄다 2인분 이상부터 주문이 가능했다.


하아... 한숨이 새어나간 틈을 비집고 서러움이 스며들자, 외로움은 때를 기다린 무장공비처럼 순식간에 들이닥친다. 늘 이런 식이다. 약해진 새에, 넋을 놓은 중에, 잊을만하면 문득문득. 느닷없이 혼자를 덮치는 그놈이 또 왔다.     


‘별 거 아냐. 건강해서 그래. 건강해서...’


나는 재빨리 머리를 저으며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상황을 회피하려고 정신 승리 중인 아픈 여자의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이는 다윈과 리처드 도킨슨에 빙의되어 만든 몹시 논리적인 방어용 주문이다.

인류는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리 지어 살기 시작했다. 씨족을 만들고 부족이 거대한 국가가 되는 수백만 년의 역사동안 차츰 고차원의 사회적 동물로 진화했고, 인간의 유전자는 집단생활에 유리하도록 정교해졌다.


복잡하게 설명할 것 없이 배달 어플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이제는 떼를 지어 사냥을 나가지 않아도 방구석에서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고도의 문명을 이룩했음에도, 여전히 1인용 식량은 수렵하기 어려운 시스템인 걸 보면... 아무래도 인간은 지독하게 함께 살길 바라는 종인가 싶다.

     

그러니까, 혼자라고 느껴질 때 몰아치는 불안은 대수로운 감정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지극히 원초적인 신호일뿐이다.


외로워서 죽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나약하지 않다. 되려 강렬하게 살고 싶은 사람인지 모른다. 외로움은 삶에의 의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증거. 힘차게 엄마의 젖을 빠는 아기처럼 무결한 본능이다.

이쯤 하면 불안은 맥을 못 추고 설득되어 차츰 무해하게 느껴진다. 천재 과학자에게 맞서 반박할 논리를 찾아 헤매느니 그냥 눈물을 멈추는 게 빨라 보였다. 그리고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같이 구부 자세를 고쳐 앉아 제육볶음과 순두부찌개 ‘2인분’을 주문했다.


혼자서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다짐은 참패를 인정한 지 오래다. 내 그릇으로는 당치 않, 애초부터 오만한 도전이었다. 그러니 이제는 대자연의 순리대로 방향을 다시 틀기로 한다.








작가의 출간 도서 : [일단 좀 울고 시작할게요]

달다 인스타그램


이전 04화 빈 동그라미를 가진 사람은 아프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