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준 선물
월, 화, 수, 목, 금 드디어 기다리던 토요일이다. 아침 일찍 눈을 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빵집에서 좋아하는 버터 브레첼을 사고, 스타벅스로 가서 샷 추가된 저지방 라떼 한 잔을 주문한다. 쫀득하고 짭짜름한 빵과 부드럽고 고소한 버터의 조합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묵직한 바디감을 가진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다. 내가 토요일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바로 '꽃꽂이'이다.
코시국이 되고 나는 사회와 단절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예배가 멈췄다. 자주 만나던 친구들과 거리두기를 하며 삶의 반경도 함께 줄어들었다. 하루의 반나절 이상 마스크 착용은 불편하기만 했고,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보육교사로 아이들이 기침만 해도 깜짝 놀라고, 미열이 나면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그렇게 높은 긴장도를 유지하며 살아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시국을 버티기 위해 돌파구가 필요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그런 곳 말이다.
퇴근길, 집 앞에 꽃집이 새로 생긴 것을 보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이름 모를 꽃들은 싱그러웠다. 주변을 둘러보니 늦 봄과 초 여름 사이로 푸르름 속에서 초록색 나뭇가지와 연둣빛 잎사귀가 돋아나고 있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데 내 시간은 아직 겨울에 멈춰있었다. 나는 무작정 꽃집으로 들어가 꽃꽂이 클래스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평일은 퇴근이 불규칙해 주말 수업과 사람들과 최소한 접촉을 위해 일대일 수업 가능 여부도 체크했다. 모든 것이 준비된 것처럼 내가 원하는 시간과 방법으로 꽃꽂이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시간은 움직이기 시작해 계절에도 변화가 왔다.
평소 꽃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봄이 되면 친구들 따라 벚꽃 구경 따라간 게 전부였다. 지나가다 꽃을 보면 '예쁘네' 정도 감탄사를 표현할 순 있지만 주저 않아 하염없이 바라보고 사진 찍는 꽃순이는 아니었다. 그랬던 내가 요즘 꽃만 보면 헤벌레 웃는다. 핸드폰으로 꽃 사진을 보고 또 보고 있다.
예전에는 아는 꽃이라곤 장미, 안개, 튤립 정도였다. 하지만 꽃꽂이를 배우면서 내 식물 지식이 무지하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장미만 해도 종류는 수십 가지다.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독특한 자신만의 이름도 가지고 있다. 정말 신기한 건 같은 꽃인데 얼굴이 조금씩 다르다는 거다. 꽃 얼굴의 크기가 다른 건 당연하고, 꽃잎마다 색깔이 미세하게 다를뿐더러 모양도 달랐다. 활짝 핀 아이, 주름진 아이, 동그란 아이, 하트 모양을 가진 아이. 모두 제각각이다. 꼭 일란성쌍둥이를 보는 것 같다. 언듯 보면 똑같지만 어디가 조금씩 다른 느낌. 그 느낌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꽃송이 하나하나, 꽃잎 하나하나 눈에 새기길 여러 번. 요즘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게 바로 꽃이다.
토요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오늘은 어떤 꽃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한다. 선생님께 오늘 수업 내용에 대해 물어볼 수 있지만 나는 묻지 않는다. 커피와 빵 조각을 뜯으며 오늘 수업을 상상하는 이 시간이 행복하기에... 이번 주도 토요일을 위해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