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감옥같이 쿰쿰했던 내 삶에 꽃송이가 터지고 향긋한 꽃내음이 나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나는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아직 7시. 수업은 11시부터 시작이니 4시간 남았다. 똑딱똑딱 초는 움직이는데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딘지. 시간은 순리대로 움직이고 있으나 마음이 조급한 나에겐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계 보던 나는 잠깐 졸다 깨났다. '헉!' 10시 45분. 부랴부랴 세수하고 달려 나갔다.
'잘랑' 문에 달린 조그마한 종소리가 나를 반겼고 산뜻한 미소를 가진 선생님이 어서 들어오라 손짓했다. 첫날 무작정 들어가 꽃꽂이 수업이 있는지 물어보던 대담함은 사라지고 수줍은 듯 몸을 배배 꼬며 안으로 들어갔다. 화이트 벽이 둘러싼 꽃집 한가운데 우드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깔끔하면서 따듯한 느낌이었다. 음료 판매도 같이 하는 곳이라 선생님은 나에게 아이스 라테 한 잔 내려주었다. 이때부터 시작이다. 꽃꽂이 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는 내 힐링타임이.
주변을 둘러보니 수국과 장미, 리시안셔스 그 외 이름 모를 꽃들이 투명한 통 안에 가득 담겨 있다. 오늘 사용할 꽃 재료인 듯하다. 한가운데 자리 잡은 파란 수국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언뜻 보면 보랏빛도 맴돈다. 수국 얼굴 크기는 어마어마하다. 거짓말 조금 보태 내 얼굴만 하다. 수국으로 얼굴 가려가며 사진 찍는 재미도 쏠쏠했다.
수국 다루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수국(水菊)은 물을 좋아하는 꽃이었다. 다른 꽃은 얼굴에 물이 닿으면 일찍 시든다. 그렇지만 수국은 시들 거리면 물이 담긴 대하에 직접 꽃 얼굴을 담가 물올림을 한다.
선생님은 수국 이외에 다른 꽃 이름과 다루는 법도 알려주었다. 플라워 컨디셔닝, 물올림, 가시 제거기, 사선 처리. 듣도 보도 못한 이름들이다. 내 입은 앙다물어지고 두 볼은 한껏 부풀어 올랐다. 내 모습을 본 선생님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꽃꽂이하려고 왔는데 한 시간이 되도록 꽃 한번 못 만져보지 못하고 이론 공부만 하고 있다. 살짝 따분함 올라오려 해 고개를 양옆으로 저어가며 정신집중을 했다. ‘피식’하고 선생님이 웃으며 말하길 “예쁘게 꽃꽂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꽃에 대해 알아야 처음 모습 그대로 오래 유지할 수 있어요.” 이 말을 끝으로 나는 플라워 컨디셔닝을 시작했다. 서툴지만 꽃을 만지는 내내 내 마음은 두근두근 설레었다.
드디어 컨디셔닝이 끝났다. 다음으로 플로랄폼을 준비한다. 초록색 벽돌 모양의 플로랄폼은 바로 ‘오아시스’다. 알고 보니 오아시스는 플로랄폼을 만드는 가장 유명한 회사 이름이라고 한다. 이래서 ‘브랜드 네이밍’이 중요하다. 플로랄 폼 사용방법도 숙지한 나는 초록색 벽돌 모양의 플로랄폼을 화기 모양으로 잘랐다. 플로랄폼에 물을 먹인 뒤, 화기 안으로 ‘꾹’ 눌러 넣었다.
첫날이라 준비 시간이 길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이제 꽃만 꼽으면 된다. 동그란 화기에 꽃도 동그랗게 꼽으면 된다. 머릿속 구상도 끝났다. 제일 먼저 커다란 수국 줄기를 짧게 자르고, 꽃 얼굴과 줄기가 만나는 안쪽을 손끝으로 잡아 플로랄폼 안에 넣었다. 수국만 넣었을 뿐인데 꽃꽂이가 끝난 듯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고난은 두 번째 꽃을 꼽는 순간부터였다. 꽃마다 얼굴의 크기가 다르니 줄기의 길이도 조절해서 잘라야 전체적으로 동그란 모양이 완성된다. 종류가 다른 꽃은 그렇다 치지만 장미 역시 얼굴 크기가 제각각이라 쉽지 않았다. 플로랄폼에 꽃을 꽂고 빼기를 여러 번. 플로랄폼에 구멍이 숭숭 나서 더 이상 꽂을 곳도 없었다. 생글거리던 내 얼굴은 울상이 되었다. 변해가는 낯빛에 선생님도 눈치를 챘는지 구멍 난 부분 위쪽으로 꽃을 비스듬하게 눌러 꽂았다. 메워지지 않을 것만 같던 구멍은 감쪽같이 꽃 뒤로 숨었다. 들쭉날쭉한 곳도 선생님 손이 스치니 완만한 곡선을 이뤄냈다.
선생님의 손길 덕분인지 첫 작품치고 완성도는 퍼펙트였다. 그렇지만 내 마음은 너덜너덜했다. 우아하게 앉아 꽃만 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실수 한번 할 때마다 플로랄폼에 구멍이 하나씩 늘었다. 꽃꽂이는 독창적인 감각과 수많은 판단력을 요구했다. 앞으로 실수는 용납하지 않으리. 힐링하러 왔건만 의욕만 불타오른 꽃꽂이 첫날이었다.
#플라워 컨디셔닝
: 꽃을 손질하는 작업으로 꽃이 신선한 상태를 유지되도록 돕는 과정을 말한다. 컨디셔닝 방법으로는 꽃가위 혹은 꽃 칼을 사용하여 꽃 얼굴 아래 1/3 정도만 남기고 불필요한 잎이나 가시 등을 제거한다.
#물올림
: 꽃에 물을 먹인다
#가시 제거기
: 장미의 가시나 잎을 제거할 때 사용한다. 보편적으로 집게 형태를 하고 있으며, 오목하게 들어간 부분에 줄기를 넣고 훑어주면 줄기에 붙은 잎과 가시들이 아래로 후드득 떨어진다.
#사선 처리
: 줄기가 공기 중에 노출되면 물관이 막혀 물 흡수를 막는다. 물 흡수를 돕기 위해 줄기 끝을 45도 이상 사선으로 자른다. 사선으로 자르면 물 흡수되는 면적을 넓어져 물올림이 잘 된다.
<오늘의 꽃 : 수국>
수국은 초여름(6월)에 가지 끝에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꽃이 흰색으로 피기 시작하지만 점차 청색, 붉은색, 보라색으로 변한다. 색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토양 성분에 따라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수국의 꽃말은 거만, 고집, 냉정, 무정, 변덕 등이지만 색깔마다 각자의 꽃말을 가지고 있다.
노랑 수국은 짝사랑, 흰색 수국은 변덕, 변심이고
빨강이나 분홍 수국은 소녀의 꿈, 처녀의 꿈이다.
보라 수국은 진심을 의미하며
파란 수국은 거만, 냉담, 냉정, 무정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