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국을 살아내며 나를 위로해 준 건 바로 ‘자연’이었다. '뽀드득' 자라는 새싹은 ‘봄이 왔어요.’하고 속삭이는 것만 같았고, 무성하고 푸르른 나무는 무더운 여름 대신 한껏 시원함을 안겨주었다.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우울했던 가을은 신선한 바람에 굴러가는 낙엽을 쫓아다닐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했고, 으슬으슬 뼈마디가 시린 겨울이 오면 평소 돌아보지도 않던 구상나무(크리스마스트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오너먼트의 조화로운 매력에 쏙 빠져버렸다.
내가 꽃시장을 찾는 이유도 같다. 계절별로 뚜렷한 변화를 한 번에 느낄 수 있어 나는 꽃시장이 좋다. 꽃시장은 어린이집과 집 중간 어귀에 자리 잡고 있어 퇴근길 들리는 꽃시장은 어느새 내 힐링이자 취미생활이 되었다. 꽃시장을 둘러보고 돌아가는 길 내 두 손에는 꽃이 한아름 안겨 있다. 눈에만 담기 아쉬운 마음에 집까지 데려가는 거다.
선택된 아이들은 집에 가자마자 화병에 담는다. 줄기에 달린 잎과 가시를 제거하고 화병에 차곡차곡. 들판에 핀 꽃을 한 움큼 꺾어 그대로 담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말이다. 그런데 웬일, 들판에 강아지라도 다녀갔는지 내 화병 속 꽃들을 쑥대밭이 따로 없다. 남들은 대충 느낌으로 꼽아도 예쁘기만 하데. 도대체 내건 왜 이런 건지 알 수가 없다.
첫날 센터피스에 이어 오늘은 화병꽂이다. 드디어 나도 예쁜 화병 꽃꽂이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부터 들떴다. 먼저 꽃줄기에 달린 잎과 가시를 정리하는 컨디셔닝을 마치고, 꽃이 싱그러워지도록 물올림도 했다. 이젠 이론수업이다.
화병은 장소와 꽃 종류에 따라 달라지지만 나처럼 초보자는 화병 입구가 몸통보다 작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몸통이 넓어 꽃이 골고루 꽂아질뿐더러 입구가 몸통보다 작아 양옆으로 쓰러지는 것을 안정적으로 잡아줄 수 있다. 반면 입구가 넓고, 몸통이 작은 화병은 꽃이 바깥으로 퍼지는 각도는 넓어지지만 몸통이 좁아 안정적으로 잡아주지 못한다. 일자 꽃병은 위, 아래 크기가 같아 꽃이 퍼지는 각도에 한계가 있다. 화병에도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다니. 갑자기 집에 있는 화병이 어떤 모양인지 궁금해진다.
꽃을 꼽는 방법은 3가지다. 화병 입구에 테이프를 십자로 붙여 꼽는 방법과 잎사귀 소재를 얼기설기 꼽아 그 사이에 꼽는 방법, 치킨망(철사로 만든 그물)을 화병 입구에 넣어 구멍 사이로 꼽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도 있지만 초보자 꽃린이에게는 3가지 방법만으로 충분하다. 오늘은 집에서 손쉽게 사용한 수 있는 테이프를 이용한 꽃꽂이이다.
화병 입구에 십자로 테이프를 붙인다. 만약 화병 입구가 크다면 십자 테이프를 붙인 반대 방향으로 더 붙여준다. 오늘 사용할 꽃은 알렉시스 장미, 아트 데코 장미, 카네이션, 옥스포드, 시레네, 아스틸베, 스위트피, 피토스 포륨, 유니폴라다. 먼저 잎사귀 소재인 피토스 포륨으로 테이프 사이사이에 얼기설기 꼽아 전체적 라인을 잡아준다. 가장 긴 부분괴 짧은 부분으로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꼽아주고 사이사이 얼굴이 큰 장미를 넣는다. 한 곳에 몰리지 않고 무게감이 쏠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굴 큰 꽃이 자리를 잡았다면 얼굴 크기가 작고 잔잔한 꽃들을 채워 넣는다. 빈 곳을 채우기도 하고 가끔 톡 튀어나와 입체감을 살려주기도 한다. 하고 싶은 대로 그냥 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송이마다 정성을 다해 꼽지만 어딘가 어색한 부분이 보인다. 그때마다 선생님은 내가 꼽은 꽃 얼굴을 돌리거나 위치 조정을 한다. 작은 변화이지만 느낌이 확 달라진다. 느낌적인 느낌이 바로 이런 건가?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작은 변화가 드라마틱한 효과를 내는 것이 신기하다.
꽃을 시작한 지 이제 2주. 코로나19로 팍팍해진 삶에 찾아온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꽃을 찾았다. 결코 쉽지 않지만 나는 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순간의 행복! 지금 이 순간 꽃처럼 행복을 주는 게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