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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교사 Apr 23. 2022

손 편지 받아본 적 있나요?


2022.02. 7살 된 건우에게 받은 편지


2022년 2월, 7살 된 건우가 보낸  편지다.

읽을 때마다 마음이 몰랑해진다. 그런다가도 건우의 귀여운 실수를 볼 때면 나는 '풋!'하고 웃고 만다.


좁 슬프니? 나는 좁 웃기다.

건우야! 선생님 옆반에 있으니 우리 자주 많나자.



손글씨로 편지를 주고받았던 적이 있다. 친구와 주고받는 우정편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쓰는 연애편지, 국군장병 아저씨에게 보내는 위문편지, 마지막으로 같은 내용을 일곱 명에게 똑같이 써야 하는 행운의 편지까지. 인터넷, 핸드폰이 지금처럼 대중화되지 않은 20세기 이야기다. 요즘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가 발달해 앉은자리에서 안부를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과거처럼 손편지를 주고받는 일은 보기 드물다.


여전히 손편지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바로 만 3~5세 유아기 아이들이다. 이 시기 아이들은 하루에 열댓 장씩 편지를 쓰고 그린다. 대상이 친구 혹은 부모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교사이다. 교사에게 쓴 편지는 목적성을 띨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색종이를 접다가 망쳤을 때,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지만 버리기 아까울 때, 정리시간 손에 있는 종이를 손쉽게 정리할 때, 이 모든 편지는 교사 몫이다. "선생님 편지요", "고.. 마워"

2021.05. 6살 하린이에게 받은 편지


아이들은 편지를 주고받을 때 서로의 반응을 살핀다. 간혹 친구가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울상을 하고 교사에게 달려온다. "선생님, 친구가 편지를 받았는데 '고마워'라고 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고마워'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때마다 편지를 준 친구와 받은 친구의 마음을 읽어줘야 한다. 발달 특성상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교사는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도록 말로 풀어 설명한다. 이로써 유아는 내용보다 편지를 주고받는 상황과 타인의 반응에 더 크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머! 우리 지은이가 예쁜 그림 편지를 선생님에게 주었구나. 지은아! 너무 고마워. 소중한 지은이 편지, 여기에 붙여놔야지." 이런 반응은 다른 놀이 하던 아이들마저 편지를 쓰게 한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많이 받다 보니 일과 마무리할 때쯤 교사 책상 위에는 종이가 한 무더기다. 모든 것이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다. 구겨진 색종이를 시작으로 그리다가 만 종이, 찢어진 종이까지 다양하다. 그 사이 진실된 마음이 담긴 편지도 있다. 선생님 얼굴 옆에 비뚤배뚤 이름을 적은 그림 편지부터,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고마움이 담긴 편지, '선생님 사랑해요' 애정 듬뿍 담긴 편지까지, 한 장 한 장 훑다 보면 하루의 노고가 싹 풀린다.

2021.12. 6살 연우에게 받은 편지


초임 시절, 나는 아이에게 받은 편지가 소중해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학기가 끝나고 아이들에게 받은 편지는 신발 상자로 두 박스를 훌쩍 넘었다. 한 해, 또 한 해가 지나고 편지 상자는 다섯 박스를 넘어 가려한다. '이걸 또 가져가야 하나?' 박스를 부여잡고 고민하던 나에게 경력 많은 선생님이 "그거 한 번이라도 열어본 적 있어요? 그냥 순간에 집중하세요."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 못 했는데 나도 경력이 쌓이고 나니 그 뜻을 알 것 같다.


이제 편지와 이별할 때가 됐다. 편지 박스를 고이 간직한 초임 시절의 나는 이제 없다. 내일 받을 편지를 위해 오늘 받은 편지와 이별한다. ‘순간’에 집중했던 나. 편지 받은 순간 폭발적인 반응을 했고, 마지막 떠나보내기 전 다시 한번 읽어본다.


79,561통의 편지는 이제 내 가슴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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