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달교사 Jun 21. 2022

어린 시절,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네.


엘리베이터를 지나, 길게 늘어진 복도를 걷다 보면 하나, 둘, 셋… 일곱, 여덟, 아홉, 같은 모양의 대문이 즐비하다. 그중 다섯 번째 집이 우리 집이다. 아파트는 총 10층인데 나는 3층에 살고 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처음 살았던 집이고, 유년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우리 집 대문에는 ‘305호’라는 팻말이 붙어있고 그 아래 열쇠 구멍과 손잡이가 있다. 어린 시절 스스로 문을 열고 들어간 기억이 거의 없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나는 문 앞에 의자를 놓고 진땀을 빼고 있었다. 문을 열긴 했는데 도무지 열쇠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열쇠를 돌릴 때마다 ‘철컥 철럭’ 잠금장치가 열렸다 닫쳤다를 반복하는데 왜 빠지진 않는 거지? 문 닫고 집에 들어가야 하는데.. 이러다 도둑이 열쇠 뽑아 가는 거 아니야?’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순간 겁이 나고 눈물도 났다. 옆집 문을 두들겼다. “아줌마 우리 집 문이 고장 났나 봐요. 열쇠가 빠지지 않아요.” 그때 아줌마가 열쇠를 반 바퀴만 돌리니 ‘쏙’하고 빠졌다. ‘아!! 문을 열고 닫을 때는 오른쪽, 왼쪽 한 바퀴씩 돌리지만 뺄 때는 반 바퀴만 돌려야 하는구나’ 내 나이 여덟 살! 열쇠 구멍의 진실을 처음 알았다.

출처 Unsplash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발장이 있다. 그곳을 지나 오른쪽에는 작은 방이 있고, 왼쪽에는 주방이 있다. 정면에는 마루가 있다. 요즘 말로 거실.  기억  마루는 우리 집에서 제일 넓었다. 정면에는 텔레비전 장이 있고 뒤편에는 낮은 테이블과 소파가 있었다. 나는 매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봤다. 채널은 동그란 버튼을 ‘딸깍딸깍돌려야 화면이 바뀌었다. 그때만 해도 리모컨이  . 누워있던 몸을 일으키거나 “오빠! 오빠!!” 소리 질러 방에 있던 오빠를 다급하게 불러내 “다른데  틀어  하곤 했다. 그러다 맞기도 부지기수였다.

출처 Unsplash


어느 날은 숙제도 공부도 하지 않고 텔레비전에 빠져 있었다. 뭐라 해도 텔레비전을 끄지 않아 아빠는 전선 코드를 가위 ‘싹둑’ 자르기도 했다. 그때마다 눈물을 펑펑 쏟았던 기억이 난다. '아빠! 언제 다시 고쳐줄 거야?’ 질문을 반복하던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오니 텔레비전은 고쳐져 있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주야장천 텔레비전만 보던 나. 지난 기억을 잃은 나머지 전선 코드는 또다시 잘려 나갔다. 너덜너덜 한 전선, 내 기억 속 우리 집 텔레비전이다.


맞은편 테이블 위에는 아이보리 전화기가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이보리는 누런 빛을 띠긴 했지만 방방곡곡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기에는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전화를 걸려면 숫자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빙그르’ 돌려야 한다. 숫자가 크면 클 수도 번호를 돌렸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잠깐의 시간이 아까웠을까?' 돌아오는 다이얼 속도가 빨라지라고 억지로 돌리기도 했다. 요즘은 각자 핸드폰이 있어 전화기 없는 집도 많다. 간혹 사용해도 인터넷 전화를 사용한다. 연결잭 역시 인터넷 연결선을 사용한다. 나 때만 해도 정사각형 모양 위에 동그란 막대가 양 끝으로 네 개 볼록 튀어나와 있는 전화코드를 사용했다. 이 또한 추억 속 물건이다.

출처 Unsplash


마루를 지나  들어가면  하나의 방이 있다. 마루와 방을 분리하는 문은 불투명 유리창에 빗살무늬 패턴으로 만들어진 미닫이문이다. 아파트에 미닫이문이라니. 지금 생각해보니  아이러니하다. 그곳은  공부방으로 책상과 책장 하나만으로도 방이  찰만큼 작았다. 나는 주로 이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마루에 식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그림자가 보였다. 나는 그림자의 크기가 커지고 작아지는 것을 지켜보며 만화책을 훔쳐봤다. 그림자가 커지기 무섭게 만화책은 책상 아래로 낙하한다. 그리고 나는 공부하는 척한다. 이때 중요한  책상 아래 방석이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럼 만화책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덕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 언니 손에 자랐다. 언니는 밤마다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라디오를 듣곤 했다. 그 시절 내 자장가는 이문세 아저씨의 목소리였다.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참 듣기 좋았다. 어른들의 이야기는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도 크면 라디오에 사연 보내야지.' 그렇지만 이제껏 사연 한 번 보내본 적 없지만 그때 기억 때문이지 요즘도 난 운전 중 라디오를 듣는다. 아날로그 감성, 그때의 낭만은 없지만 추억을 되새기기에는 충분하다.


출처 Unsplash


세상이 변하고 사용하는 물건은 변했지만, 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