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가방을 망가뜨린 날

어린 날의 노란 가방, 그 안에 담긴 감정의 조각들

by 달달쭈


[감정의 사전 1- 질투]


나에게는 동갑이지만 나를 ‘언니’라고 불렀던 사촌동생이 있다. 두 달 먼저 태어났기에 ‘언니’라고 불렀고 우리는 왜 그리 호칭을 해야 하는지 자라면서 내내 의문이었다. 그 아이와 나는 어린시절 같은 동네에 살았고, 다섯 살 꼬마가 걸어가기도 가까운 거리였다. 그 덕분에 우리는 서로 이 집 저 집 왕래하며 다정하게 지냈다.


그러했기에 다섯 살 나는 그 아이가 다니던 학원으로 등원하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학원 문을 들어서며 더 사촌과 자주 놀 수 있을거란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등록을 마치자 학원에서는 선물처럼 노란색 가방을 주었다. 햇살처럼 반짝이는 빳빳한 천, 새것 특유의 냄새. 나는 그렇게 그 가방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잠들기 전에는 그 노란색 가방을 머리맡에 두고 다음날 새 가방을 들고 학원문을 열 상상을 하며 잠이 들었다. 마치 대단한 보물을 혼자서만 가진 것처럼 말이다.


다음날 사촌과 나는 같은 가방을 들고 같은 학원으로 갔다. 나는 괜스레 내 무릎위의 가방을 쓰다듬어 보고 가방 안을 열였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사촌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그저 너도 가방이 생겼구나 하는 정도의 눈빛 뿐이었다.

일주일즈음 지났을까. 내 가방은 여전히 새것 같았지만, 사촌은 이전부터 학원을 다녔던지라 그 시간만큼 가방이 더러워져 있었다. 노란색이 검어지고 가방 테두리는 닳아 있었다. 나는 그런 차이를 애써 모른척 했지만, 둘이 함께 서 있으면 유난히 그 가방이 더려워져 보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사촌을 불렀다. “가방이 많이 낡았네. 새 가방으로 바꾸어서 가자.” 그 말과 함께 사촌에게도 반짝이는 새 가방이 주어졌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뻐근하게 밀고 들어왔다. 기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내 가방은 여전히 멀쩡했지만 이상하게도 빛을 잃은 것 같았다. 내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꺾이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책상 위 모나미 볼펜을 집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 안에서 나는 가방에 선을 그었다. 검은 펜촉이 비닐 가방 위를 활보 하도록 했다. 어린 마음에 가방을 망가뜨리면서 불안했지만 이상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이제 내 것은 낡았으니, 선생님이 새 것으로 바꿔주지 않을까. 그런 터무니없는 기대를 품었다.


다음 날, 망가진 가방을 들고 학원에 갔다. 선생님이 알아봐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방을 힐끗 보기만 했을뿐. 나는 그렇게 그 날 가방을 끓어안은 채 작은 책상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마치 벌을 받는 기분으로.


그날 알았다.

질투는 갖지 못한 것을 욕심내는 마음만이 아니었다.

질투는, 내가 이미 가진 것조차 스스로 망가뜨리게 만드는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사촌을 미워하지 않았다. 사촌은 여전히 내게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나도 똑같이 받고 싶었고, 똑같이 관심 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어쩔 줄 몰라 결국 가장 아끼던 것을 망가뜨려 버린 것이다.


시간이 흘려도 질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때로는 세상 앞에서도.

누군가 앞서 나갈 때, 누군가 환호를 받을 때,

나는 내 안에 어린 날의 노란 가방을 다시 떠올렸다.

질투는 조용히 내 마음을 긁었다.


이제는 안다. 질투는 내 마음 속 깊은 곳,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소망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것을. 질투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대신, 그 감정을 가만히 들여다봐야 한다.

질투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그렇게 원하고 있니?”

“진심으로 원하는 거니?”


나는 이제 가방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누군가를 흉내 내어 억지로 빛나려 하지도 않는다.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천천히 나아간다. 때로는 질투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줄지도 모르니까.

삶은 매일매일이 작고 조심스러운 선택의 연속이다. 질투할 때마다 나는 다짐한다. 어린 날 노란 가방을 망가뜨렸던 그 마음을 기억하며 이번에는 더 단단하고 선명한 나로 살아가겠다고.

질투는 여전히 내 안에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마져도 내 삶을 엮어주는 소중한 조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