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것만이 용기는 아니다.머뭇거림에도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감정의 사전 2- 주저함]
갓길에 정차된 차 한 대. 갈까 말까를 5초 동안 몇 번이나 고민했던지. 주저하며 다가갔지만 결국은 직진신호가 바뀌고서야 우회전을 할 수 있었다. ‘오늘도 실패’ 창밖으로 스쳐가는 표지판들 사이에서 내 마음은 그 자리에 정차되어 있었다.
운전을 못하지는 않는다. 나름 경력이 15년차에 접어들었으니. 고속도로도 달리고, 정거리 여행도 혼자서 거뜬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 앞에 보이지 않는 날들도 아이들 학원 라이딩이 가능할 만큼은 된다. 그러함에도 여전히 좁은 공간의 주차는 힘겨웠고, 갓길에 정차된 차가 있으면 그 사이를 비집고 나갈 수 없다.
부끄러운 일은 10년차 운전 경력으로 면허 갱신이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을 때다. 근처 교통안전공단을 검색하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그런데 아뿔사. 주차장이 너무 좁고 대각선으로 주차를 해야 했던 것이다. 경력자가 주차를 못해 면허 갱신을 못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주저하다 결국 나는 교통안전공단을 벗어나 주변 사설 주차장을 이용해야 했다.
내게 ‘주저함’은 이런 식이다. 남들이 다 하는 일인데, 나는 그 사이에서 늘 머뭇거리게 된다. 갓길에 정차되어 있어도 그 사이로 충분히 우회전이 가능한데 그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여러번 움직이면 주차선에 들어갈 수 있음에도 뒷차 눈치에 혼자서 돌아 나가버리는 마음. 주저함은 생각보다 감정의 결이 깊고 미묘했다. 실패가 두려워서라기보다, 실패 후에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며 비난한게는 두렵지만, 그것보다 내가 나를 다시 깎아내릴까봐 두려웠다.
운전 3년차 즈음이었다. 이제 운전에 제법 익숙해졌다 자부하던 시기. 저 멀리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는 것이 보였고, 여유롭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드폰을 잠시 들여다 볼려는 찰라 ‘툭’하는 느낌이 들었다. 앞차와 붙어버린 것이다. 아뿔사. 나는 급히 차에서 내렸다.
앞에 서 있던 화물차의 운전자가 천천히 내려왔다. 일이 지쳐 피곤한 얼굴로 내린 그 아저씨는 나를 보더니 한숨부터 쉬었다.
"도대체 싼타페 왜 이러나요? 어제도 산타페 몰던 여자분이 뒤에서 박았는데... 오늘 또네요"
"죄송해요. 몸은 괜찮으세요?"
"아니 이런걸로 안 죽어요. 안 아파요. 엇 애들 타고 있어요?"
"네. 죄송해요. 보험사 부르겠습니다. 차량 수리도 하고 그래도 병원 가보세요."
"아니 아니요. 깨진 등만 갈면 되겠네요. 어제 갈아보니 4만원쯤 되더라. 그정도로 끝내죠.“
나는 당황스러움과 고마움 사이에서 뭐라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덧붙인 한 마디.
"아니 나는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임신중인거 같은데 더 많이 놀랐겠네요. 걱정말고 등은 내가 알아서 갈테니 4만원만 보내줘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임신 중이 아니었다. 단지......뱃살이 조금, 아니 꽤 많았다. 순간적으로 ‘아 그래서 나한데 이렇게 친절하셨던 걸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그의 다정함은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나는 그 착각을 바로잡지 않은 채 ”감사합니다. 혹시라도 불편하시면 꼭 연락 주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는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함참을 웃었다. 민망함과 허탈함. 그리고 어쩔 수 없는 나 자신에 대한 연민. 다치게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보다 ‘임신’으로 오해받은 충격이 더 오래 남았다.마음 한켠에서 작은 웅덩이가 생각 듯,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왜 주저할 수 밖에 없었을까?
주저함은 나를 보호하려는 방어기제처럼 시작되었다. (물론 가끔은 주저함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찰라의 ‘임신’아님을 인정하지 않았고, 교통사고 수습이 간단히 끝났으니 말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가두는 벽이 되기도 했다. 남들이 나를 판단하기도 전에 나는 먼저 나를 판단하고 있었다. ‘이 정도는 해야지.’ ‘남들은 다 잘하던데.’ ‘창피하게 또 실패할 거야.’ 그런 말들로 내 가능성의 문을 닫았고 익숙하고 안전한 길로만 돌아서곤 했다.
여전히 갓길 주차가 된 길은 쌩쌩 달리기 두렵고, 주차는 힘겹다. 하지만 매 순간 다짐하고 다짐한다. ‘다음에는 해 보자. 오늘보다 조금 더 용감하게.’ 그렇게 나의 주저함을 용기로 채워보려고 한다.
10여년 전 ‘임신’으로 오해 받았던 뱃살은 여전히 남아있다. 민망하고 서운하고 그러면서 웃겼던 그날의 뱃살은, 내 안의 주저함과 닮은 거 같다. 사라지는 듯 하지만 다시 차오르는 내 배처럼, 기회가 생기면 다시 고개를 내미는 주저함이란. 하지만 그조차도 나의 일부라면 이제는 잘 품어주는게 맞지 않을까 한다.
주저함을 가지고도 나아갈 수 있다는 거.
그렇게 주저함에 용기를 더해보는 오늘이다.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