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을 딛고. 운전대를 잡다
[감정의 사전 3 - 억울함]
아빠의 생신즈음이었다. 요즘 유난히 바쁜 남편이었기에 이번 생신에는 함께 할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나 혼자 아이 둘 데리고 올라가겠다고 하니 엄마는 내내 이번 생일을 그냥 보내자고 하시더니 “김서방도 바쁜데 뭐하로 올라카노. 니 마음이 계속 그럼 우리가 그쪽으로 갈게.” 사위와 함께 올 때는 걱정이 하나도 안 되는데, 딸인 나의 운전은 여전히 걱정된다는 엄마는 결국 아빠를 운전대 잡게 했다.
부산에서 운전을 하면 전국 어디서든 운전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부산에서만 운전 경력이 가득인 나이건만 엄마는 여전히 걱정스러워한다. 그 순간 문득 오래된 한 조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억울함’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처음 찾아온 날 말이다.
나는 딸이라는 설움을 모르고 자란 편이다. 남동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첫째였기에 책상을 사도 새것은 내 것이 되고 내가 사용하던 건 동생에게 물려주었다. 이사를 가도 큰 방은 내 방이 되었고 내 방보다 조금 작은 방은 동생의 방이 되었다. 그런데 오직 하나 ‘운전면허’ 앞에서는 동생이 먼저였다.
수능을 끝내고 그 추운 겨울 엄마는 나의 손을 잡고 성형외과로 향했고, 동생은 운전면허학원으로 이끌었다. 나에게는 운전면허의 답안이 없었지만 동생에게만 있었던 것이다. 물론 고등학교 3년 내내 찔러대는 속눈썹으로 매 달 안과를 다녀야 했던 힘듦을 해소해 주기 위한 엄마의 마음은 알지만, 괜스레 동생은 준비하는 운전면허가 내게 없다는 사실이 헛헛하게 다가왔다.
물론 동생이 면허를 따야 하는 이유는 다양했다. 남자에게 운전은 필수였고, 운동신경이 좋아 빠르게 딸 것이고, 군대 갈 때도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나는 여자였기에 운전이 필수는 아니었고, 운동신경이 너무나 안 좋았기에 차후에 필요할 때 따면 된다는 게 내가 면허 없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여자라서 필요 없다는 말에 좀 저릿하게 다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억울하다’라는 말을 크게 사용할 일이 없었는데 그 순간은 분명 ‘억울했다.’ 같은 여자인 엄마가 왜 내 가능성을 쉽게 단정해 버렸던 것일까?
엄마는 운전면허가 있었다. 집에서 학교가 멀었던 나를 태워주기 위해 어린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힘들게 딴 면허였다. 지금처럼 학원에서 면허를 쉽사리 따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엄마의 면허 시험날에는 온 가족이 출동했고 한 번에 합격하지 못했던 엄마였기에 아마 나도 그럴 거라 예상했던 거 같다. 엄마보다 더 운동신경이 없던 나였으니까.
사실은 여자라서 필요 없다기보다는, 운동신경이 없던 나의 도전이 헛되이 될까 봐 걱정이 되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 철부지 나는 그저 동생에게 지는 것만 같고 나만 차별을 받는 듯한 기분에 억울함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생의 방에서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집을 쓱 들고 왔다. 필기라도 붙으면 실기야 도전하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다음날 시험을 치르러 가려는 나에게 엄마가 말했다.
“요즘은 거의 오토차량이니 1종 수동 말고 2종 보통으로 치르고 와.”
자존심이 또 살짝 상할 뻔했지만 2종의 합격점수가 낮았기에 쉽게 가는 길에 수긍했다. 면허 종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면허 하나를 가지고 싶었을 뿐이었기에.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는 가고 싶은 곳 어디든 스스로의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나아간다. 여전히 엄마는 내 운전이 불안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안다. 그 불안 뒤에는 엄마가 건너지 못한 두려움을 딛고 나아간 딸에 대한 묵직한 신뢰와 안도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그때 내가 느낀 억울함은 단지 감정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움직이게 한 첫 번째 불씨였다. 억울함이란, 무언가를 갈망할 줄 아는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이고, 세상이 내게 선을 그었을 때 그 선 너머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의 증거였다.
억울함은 내가 그 자리에 멈추지 않도록 등을 밀어주었다.
억울함을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그 단단함은, 억울함을 품고서도 끝내 앞으로 나아갔던 나의 이름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