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옆에 있을 때 나는 작아진다

긴장은 나를 작게 만들지만, 동시에 소중하게 만든다.

by 달달쭈

[감정의 사전 4 - 긴장]



운전대를 잡은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이제는 후진 주차도 한 손으로 능숙하게 할 줄 아는 내가,

딱 한 사람만 옆에 타면 다시 초보가 된다.


그 사람은, 남편.


한 손으로도 가뿐하던 핸들이

그가 옆에 앉는 순간

두 손으로도 묵직해진다.


무거운 건 핸들이 아니라,

그가 지켜보는 나의 마음이다.




면허를 따고 운전 경험 없이 결혼을 했다.

면허증은 있었지만

도로에 나서는 건 겁이 났다.


무엇보다도 ‘남편에게는 절대 배우지 말라’는

주변의 충고를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출근으로 차를 두고 간 틈을 타

혼자서 첫 운전 프로젝트를 감행했다.


목적지는 세상 맛있는 빵집.

직진 한 번, 좌회전 한 번이면 도착하는 곳.


“오늘 저녁, 맛있는 빵을 신랑에게 선물해야지.”

그 마음 하나로 시동을 걸었다.




가는 길은 무사했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이었다.


주차를 못 했다.


도저히 차를 세울 수 없어서

빙빙 돌다가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속상해하는 나를 본 남편이 말했다.

“이번 주말, 내가 아울렛까지 연수시켜줄게.

거긴 넓으니까 그 정도는 혼자 다닐 수 있잖아.”


솔깃했다.

혼자 아울렛 쇼핑이라니.

그 환상 하나로,

절대 하지 말라던 ‘남편과의 운전 연수’가 시작되었다.




“편안하게. 나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해.

나는 봐주기만 할게.”


그 말에 살짝 안심하며

천천히 출발했다.


“속도 좀 더 내도 돼~”

“잘하고 있어~”


칭찬이 기분 좋았다.

근자감이 붙었는지

커브길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돌았고,


… 쿵!


오른쪽 바퀴가 인도 턱에 부딪혔다.

당황한 나를 보며

남편은 말했다.


“괜찮아. 감이 부족한 거니까,

천천히 다시 해보자.”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눈동자는 조금 흔들렸다.




이후로 커브길만 나오면

남편의 목소리가 자동 재생되었다.


“속도 줄여~”

“미리미리 브레이크 밟아야지~”

“서서히, 더더더~”


운전은 기술보다 리듬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의 말 한마디에

리듬이 끊겼다.

감각이 사라졌다.

핸들조차 낯설어졌다.


조언이 도움이 아니라

평가처럼 느껴졌다.




나는 혼자 있을 때 더 잘한다.


T맵 운전 점수는 늘 90점대고,

복잡한 주차도 꽤 능숙하다.

가끔은 음악에 맞춰

운전석에서 콘서트라도 하듯 흥얼거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멀리서 남편이 걸어오는 모습만 보여도

손은 다시 땀에 젖고

마음은 다시 작아진다.


핸들이 무거운 게 아니었다.

마음이 무거운 거였다.




왜 그럴까.

왜 그 사람 앞에서는 작아지는 걸까.


아마도

가장 잘하고 싶은 사람 앞이니까.

가장 실수하고 싶지 않은 사람 앞이니까.


그의 시선은

나를 가장 많이 아껴주는 동시에

가장 나를 긴장하게 하는 시선이었다.




긴장은 무조건 나쁜 감정일까?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 안에는

애정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그는 나에게 안전을 주고 싶었을 테다.


그 충돌 속에서

긴장이란 감정은 자라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그 감정은

그저 불안이나 두려움이 아니었다.

남편이 옆에 있다는 사실이

내가 여전히 소중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내 마음의 반증이었다.




요즘은 혼자서 아울렛도, 빵집도 잘 간다.

남편이 깜빡 잊고 두고 간 물건을

직접 들고 가서 건넬 수 있을 정도로.


물론 남편이 옆에 앉으면

여전히 긴장되기도 한다.

핸들은 여전히 두 손으로 잡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긴장조차 나를 멈추게 하진 않는다.

그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니까.




운전대를 잡은 지 10여 년.

나는 여전히 그 옆에 있으면 작아진다.


하지만 예전만큼 작아지지는 않는다.

그만큼 나도 커졌고,

마음도 성장했다.


긴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긴장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고 있다.


언젠가 남편 옆에서도

바람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핸들을 돌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오늘도

그날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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