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뭘 할 수 있다고......라는 말의 무게
[감정의 사전 5 – 죄책감]
대학을 졸업한 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일주일 수업 후 원장선생님이 불렀고 다음 달부터는 고등학생 수업도 진행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어쩜 나를 향한 기회였고, 선생님의 자리에 나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때 내게 용기가 있었더라면, 도전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기회’를 버렸다.
늘 잊은 척 살아가지만 어떤 날은 생각해 본다. ‘왜 그때 나는 나를 믿어주지 못했을까?’
오랫동안 그런 질문들이 나를 따라다녔고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보다 그 기회를 마주한 ‘나 자신’을 내가 외면했다는 자각이었다.
이름이 불렸을 때, 나는 도망쳤다.
책을 좋아했고, 기록하는 것들이 좋았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던 내 감상을 꺼내 들고 북스타그램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그저 좋아서, 재미있어서, 누군가와 책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DM이 오기 시작했다.
“서평단 제안드려요.”
“공구 한번 열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메시지를 읽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내가 쓴 근이 누군가에 닿았구나.’ 감격스럽고 인정받는 거 같아 설레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얼어붙었다. 누군가의 신뢰가 기쁨으로 다가오기보다 부담이 어깨를 누른 것이다. 가능성에 대한 상상보다, 실패에 대한 상상이 먼저 찾아왔다.
“내가 무슨......”
“내가 얼마나 팔 수 있다고.”
감사합니다 라는 답장을 몇 번이나 쓰고 지웠다. 그리고 결국 거절의 답장을 장황하게 늘여놓고 말았다. 헛헛한 마음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책을 읽고 기록하며 ‘좋아요’와 댓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팔로워 5000쯤 되면 그댄 도전해 보자.’ 라며 당장의 도망칠 핑계를 만들었다.
제안을 회피한 기억은 금세 잊혔다. 하지만 도망친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 감정들은 단순히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아니었다. ‘왜 나는 그대조차 나를 믿지 못했을까?’ ‘나에게 한 번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기회는 나를 믿었지만,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나를 잘 모르는 타인이 분명 나의 가능성을 봐주었고, 기대를 걸어줬는데 나 스스로 믿지 못해 그 손을 뿌리쳤다. 그 누구도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난 건 나였다.
기회를 잡지 않았기에 실패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났고, 그런 제안들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기회는 늘 두드리지만 오래 문 앞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 시절 나를 향해 다가왔던 기회들은 내가 문을 연지 않아 조용히 떠나갔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건 ‘그때 해 볼 걸’이라는 짧고 단단한 문장 하나.
그리고 그 문장을 끌어안고 사는 죄책감.
그 죄책감은 내가 실패했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니었다. 오히려 도전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감정이었다. 나를 믿고, 나를 걸어보지 못한 나 자신에게 느끼는 미안함.
‘그때 너, 넌 널 너무 쉽게 포기했어.’
죄책감은 나를 자책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그것은 다음번에는 그러지 말자는 또 하나의 다짐의 얼굴이기도 했다.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엔 나를 위해
지금도 나는 북스타그램을 하고 있다. 여전히 책을 소개하고 글을 쓰고 댓글에 답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그저 좋아서 시작했던 일이 이제는 내 작은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때로는 문득 ‘그때’가 생각나지만 예전만큼 오래 아프지는 않다. 왜냐하면 나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내가 나에게 건네는 두 번째 기회라는 것.
이제는 누군가 제안을 한다면, 그때처럼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팔로워 수가 여전히 5000이 아니지만, 누가 나를 믿든 말든, 가장 먼저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나여야 하니까. 나는 도망치치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야 비로소, 나를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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