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하여
[감정의 사전 6 – 엄마의 사랑]
사랑에는 수많은 이름이 있지만 그중 가장 조용하고도 오래된 사랑은 ‘엄마의 사랑’이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머무르며 기다리는 사랑.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사랑의 모양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늦잠을 좋아하는 내가 아이들 등교 알람시간에 번쩍 눈을 뜬다. 좋아하는 것으로 아침밤상을 차려주고 기분 좋게 등교하도록 애쓴다. 하교 시간을 챙기고 학원 시간표들을 체크한다. 손이 크면 사랑도 크다며 하루를 잘 마무리하고 모두가 모인 저녁 식탁엔 잔뜩 반찬들을 늘여놓는다. 그걸 받아든 아이들은 “이 정도는 많잖아.”라며 투덜댄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내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 같아 말이 험해진다. “먹기 싫으면 먹지 마!” 한참 잔소리를 하고 돌아서면 가슴이 쓰리다. 그리고 곧 혼자 앉아 밥을 먹으며 생각한다. ‘왜 이렇게까지 했지? 내가 이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어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책임감과 동시에 마치 내 심장이 내 몸 바깥으로 나가 걸어 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 내가 아니면 아무도 못 챙겨줄 거 같아서, 내가 아니면 이 아이가 다칠 것 같아서 쉴 틈 없이 눈과 귀를 열어둔다.
그렇게 키운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어느덧 키가 나보다 커졌고, 내가 다가가려 하면 한 걸음 물러선다. “엄마는 너무 간섭해.” “아이유보다 잔소리가 많아.”라는 말부터 던진다. 예전 같으면 그 말에 많이 서운했지만, 이제는 잠깐 입술을 깨물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을 자라는 중이고, 그렇게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되묻게 된다. ‘나는 이 아이들을 보내 줄 준비가 되어 있을까?’ 그 답은 아직 잘 모르겠다. 붙잡고 싶은 마음과 보내야 한다는 이성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고 줄다리기를 한다. 나에게서 멀어지는 만큼 자란다는 것! 자란다는 건 결국 나 없이도 잘 살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그렇게 쉽게 보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이 어릴 땐 모든 게 내 손을 거쳐야 했다. 밥을 먹여주고, 옷을 입혀주고, 잠든 얼굴을 확인하며 불도 끄고 문도 닫았다. 기침 한 번에도 덜컥 겁이 나 병원으로 뛰어가던 그 시절, 나는 아이의 세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제는 스스로 옷을 고르고, 친구들과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긴다. 무언가 잘못되었을까 봐 계속 다가가면 “엄마는 왜 그렇게 오버해?”라는 말이 돌아온다. 그럴 때면 내가 감시자가 된 건 아닐까 싶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붙잡고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올라온다.
아이들이 잠든 밤 나는 종종 그 방 앞에 멈춰 선다.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 이불을 덮어준다. 아이는 깨어있을 때보다 잘 때가 훨씬 어려 보인다. 말끝마다 반항심이 묻어나는 낮의 얼굴이 아니라, 작고 평화로운 숨소리로 내게 다가오는 아이의 모습은 여전히 내 아기 같다. 그 모습이 고마워서 그 시간만이라도 다시 나를 꼭 필요로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비로소 숨을 고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가 생각난다.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이사하며 물리적 거리만큼 엄마와도 멀어졌다. 자주 연락하지 못했고, 내 아이 키운다는 핑계로 안부 전화도 늦을 때가 많았다. 그래도 엄마는 늘 “전화 자주 안해도 괜찮아. 엄마 신경 안 써도 돼.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하지 말고 아이들 잘 돌보고 건강하면 돼.”라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그 말이 그저 형식적인 인사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이 얼마나 많은 감정을 눌러 담은 말인지 안다. 엄마는 아직도 매일 그런 마음일 테다. 자식이 멀리 있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마음만은 내 곁에 머무르고 싶었을 테다.
몇 해 전 엄마가 무릎 수술을 하게 되었다. 이틀 전 통화했음에도 별일 없다던 엄마였는데 멀리 있는 딸이 걱정할까 봐 꽁꽁 숨겨둔 거였다. 다행히 동생 덕분에 알게 되었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를 보더니 엄마는 “큰 수술도 아니고 아빠도 동생도 있는데 걱정은 무슨. 그나저나 수술은 몰래 할 수 있었는데 보험금 청구는 몰래 못하겠더라. 이왕 이렇게 알게 되었으니 퇴원하면 보험금 청구나 도와줘.”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가 나를 울렸다. “사실 너 결혼하고 한동안은 너 없는 줄 알면서 이거 저거 도와달라며 너 이름 부르고 있더라.”
나는 엄마에게서 나의 빈자리가 클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엄마는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매일 나를 부르고 있었다. 대답이 없는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들리는 이름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엄마의 시간들을 다시 상상해 봤다. 스마트폰을 처음 마주하고 힘들었을 순간들, 모바일뱅킹으로 송금을 해야 하는 상황. 그 사소한 것들도 물어보고 배우는 시간이 딸에게 방해가 될까 봐 혼자서 알아보고 시도해보고 하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치열했을까.
“나 선물 받은 기프티콘으로 피자 주문해서 먹을 줄도 알아.” 엄마가 말했다. 기프티콘으로 피자 주문 하는 게 무엇 어려울까 싶지만, 어플을 설치하고 회원가입을 하고 지점을 찾고 메뉴를 고르며 결코 딸에게는 의지하지 않고 혼자서도 할 수 있다는 그 결심. 그것들이 엄마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엄마는 그렇게 나를 보내고도 살아냈다. 그 자리에 계속 나를 붙잡고 도와달라 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배워가며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갔다. 나를 부르지 않았던 것은 부르지 않아도 여전히 내 마음은 엄마 곁에 머물러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곁에 있는 딸이 편안하고 자유롭길 바랐을 테니.
그 사랑을 이제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나도 언젠가 내 아이들을 보내야 할 것이다. 빈 방을 정리하며 울음을 삼키고, 혼자 밥을 먹으며 젓가락질을 멈추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자식을 향한 사랑에만 머물지 않고, 나를 향한 사랑으로도 계절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엄마의 사랑은 나를 키워냈고, 나의 사랑은 또 다른 생을 키워낸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모두 서로를 닮아간다. 닮은 만큼 아프고, 닮은 만큼 따뜻하다. 그 따뜻함으로 오늘 하루도 다시 시작한다.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은 닿아 있다. 그리고 나는 안다. 언젠가 아이들이 나를 보내야 할 그날이 오면 나도 그들을 걱정하며 속으로 부를 것이다. “잘 지내니?”라고.
그 말 한마디에 담긴 사랑을, 그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기를.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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