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한 감정, 듣지 못했던 마음의 언어
[감정의 사전 7 – 짜증]
매일 아침, 아들의 짜증 소리로 하루가 깨어난다.
날씨가 좋아도, 비가 와도, 일찍 일어나도, 늦게 일어나도
짜증의 이유는 날마다 다르지만, 그 소리는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그 짜증의 소리 속에, 나는 아주 오래전 나의 마음과 마주한다.
짜증이라는 감정 속에서 내가 꺼내본,
엄마로서의 기억과 아이라는 존재의 고단함에 대한 작은 고백이다.
1. 아침을 여는 짜증
매일 아침, 아들의 짜증 소리로 하루를 연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날씨가 좋아서, 비가 올 것 같아서, 일찍 일어나서, 늦게 일어나서. 남마다 이유는 제각각인데, 짜증의 톤은 한결같다. 기상 알림보다 먼저 찾아오는 짜증. 그것이 우리집 아침 풍경이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다. 이불을 너무 성급히 걷었나, 말을 너무 빨리 걸었나, 재촉하며 깨웠나. 그렇게 매일 짜증의 원인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도달하는 건 허탈함뿐이었다.
도대체 이 아이는 왜 짜증을 내는 걸까? 이유없이 짜증이 쉼없이 길어지니 나는 이 감정의 고리를 들여다 보기로 했다.
2. 짜증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처음부터 짜증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울음이 많은 아이였지만 짜증은 없었고, 표현도 소극적인 어쩜 무던한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날부터 하루 짜증 질량의 보존을 착실히 지키듯이 뿜어내는 것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이의 짜증 시작점을.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등교하기 싫다고 유난이었다. 아이에게 왜 등교하기가 싫은지 묻기보다는 그저 가야하는 곳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일까? 그즈음부터 등교하는 아침엔 늘 짜증이었던 거 같다.
표현이 소극적인 아이였기에 낯선 친구들, 긴 하루, 줄 세우기와 발표하기. 작은 몸으로 세상을 감당하느라 힘겨웠던 그 시절, 아이는 등교를 거부했고 엄마는 철벽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표현을 토해낸 방법이 짜증이었던 것이다.
등교 거부 앞에는 철벽이었지만, 아이의 짜증 앞에서는 따스하게 품어주려고 했다. 이 짜증만 품어주면 등교가 익숙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번 보듬어주면 아이의 마음도 풀릴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이 짜증 유지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3. 짜증이라는 언어
“왜 그렇게 짜증을 내?”
나는 매일 아침 반사적으로 묻는다. 하지만 물음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더 큰 짜증이 남는다. 그러다 문득 거울처럼 나를 마주보게 된다.
나도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 숙제를 미룰 때,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을 때, 말끝마다 “귀찮아.”라고 할 때. 나 역시 말없이 인상을 찌푸리고 말을 날카롭게 던지며 짜증으로 반응하고 있다.
그렇게 짜증은 아이만의 감정이 아니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줄 모르는 감정.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터져 나오는 감정. 그것은 아이와 엄마 우리 둘 사이에 있는 언어였다. 하지만 짜증의 언어로는 아무것도 소통되지 않았따. 서로 상처만 남긴채, 우리는 그렇게 그 감정 안에서 길을 잃어 가고 있었다.
4. 그때의 나, 오늘의 아이
백일도 안 된 아이가 울던 어느 날이 떠오른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멈추지 않던 날이었다. 등센서는 어찌나 예민하던지 침대에 내려놓기도 전에 울음이 터지고 터졌다. 그 때 나는 벽을 보며 소리쳤다.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누구에게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터져나온 울부짖음이었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감정을 어쩔 줄 몰라 폭발시킨 사람이었다.
짜증이라는 것이 그랬다. 무기력과 외로움 두려움과 불안을 품은 감정의 배설.
지금의 아이도 그럴 것이다. 학교에서 받은 피로, 말 못할 불안, 조절 안되는 감정. 그 모든 것들이 섞여 짜증이라는 이름으로 아침마다 나를 향해 쏟아내는 것이다. 아마도 그건 공격이 아니라 신호일 것이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요. 내 마음 좀 봐 줘요. 나를 봐줘요.’
5. 감정의 이름표를 다시 붙이다
나는 짜증이라는 감정을 싫어했다. 그 감정은 날카롭고, 무례하고, 어른스럽지 않다고 여겼다. 그래서 내 감정을 누르고, 아이의 감정을 다그치려고만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사이엔 더 큰 짜증만 남겨졌다.
이제는 안다. 짜증은 말하지 못한 감정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슬픔, 불안, 외로움, 무력감……이름 붙여지지 못한 감정들이 짜증이라는 옷을 입고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지금, 나는 아이가 짜증을 낼 때마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럴 수도 있어. 엄마도 네 마음 알아. 많이 힘들었지.”
늦은 말일지 몰라도, 진심은 늦지 않는다. 나는 아이가 감정을 말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그리도 나도 나의 감정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엄마로 살아가고 싶다.
짜증이라는 단어에 가려 보지 못했던 마음들. 그 마음들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는 것,
그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가는 시작일 것이다.
*사진은 픽사베이에서 가져왔습니다.
#감정의사전 #짜증 #감정글쓰기 #엄마의기록 #아이의감정 #일상에서생각하는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