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은 여름의 공기를 닮았다

여름의 시작과 끝에 숨어 있는 감정

by 달달쭈

[감정의 사전 8 – 설렘]

바람이 분다. 에어컨 같은 인위적인 바람이 아닌 진짜 바람.

아침에 눈비비고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면 커튼이 바람에 물결치듯 출렁인다. 거기에 햇살이 얇은 포말처럼 쏟아진다. 나는 가만히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만 심장이 콩콩 뛰는 것을 느낀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저 오늘이 기대될 뿐. 그렇게 여름날이 설렘이 가슴을 간질인다.


설렘이란 감정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두근거림은 어떤 예고도 없이 찾아오고, 그 짧은 순간에 나는 확신한다. “오늘은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거야.” 어제와 같은 오늘임에도 여름날의 설렘은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바꾸는 힘이 있다. 하루라는 시간에 반짝이는 빛깔을 입히는 감정, 그것이 설렘이다.


설렘에도 계절이 있다고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여름’이라고 말하고 싶다.

겨울은 잊지 못할 감정들을 만들어 주지만, 여름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니까.


더워서 땀을 쏙 빼고 난 후 손에 쥐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아이와 마주앉아 경쟁하듯 먹던 아이스크림 한 입이.

더워도 놀이터에서 놀겠다고 뛰쳐나간 아이들 뒤편으로 번져가던 붉은 노을이.


그 모든 장면 속엔 ‘설렘’이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떨림의 ‘설렘’이 아닌 그 상황 속에서 ‘나 자신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의 설렘이었다. 여름의 설렘은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피어나는 감정이었다.

무언가 시작될 것 같은 에감.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다는 믿음. 그러니까 이 감정은, 누군가가 아닌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 아이들은 벌써부터 “언제 7월이 올까?”를 묻는다.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여름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이는, 놀러 갈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방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해방감 때문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도 괜찮았고, 일어나자마자 씻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늘 일기가 밀려도 쓸 시간 많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어서 괜찮았다. 더욱이 교통이 불편했던 곳에 살았던지라 방학이 되면 학원도 모두 안가도 된다는 엄마의 말은 설렘의 최대치였다. 그 모든 여유가 모든 걸 괜찮게 만들었다.


뭔가를 ‘해야만’하지 않아도 하루들. 계획따위는 없어도 되는 나날들. 그날들의 나는 스스로에게도 세상에도 충분했다. 그리고 매일 아침이 또 새로운 이야기를 품고 올 것 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여름이 되면 그 감각이 다시 살아난다.


후덥지근하지만 팔뚝 위의 땀을 식혀주는 바람, 아무런 약속이 없지만 오후가 되어 나서는 발걸음. 무엇보다 아이들과 해가 중천에 떠오르도록 이불 속에서 뒹굴며 웃는 시간들.

그 모든 여름의 단편들이 나에게 다시 설렘을 건넨다.


나는 여름을 사랑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름 속의 나를 살아하는 것이다. 조금 게으르고, 조금 덜 완벽하지만, 살아 있다는 감각으로 가득찬 나를.


‘설렘’은 대개 짧다. 그래서 귀하고 더 선명하다.

여름날의, 여름방학의 설렘은 유통기한이 짧은 감정이기에 그때그때 받아적어둔다. 오늘의 공기, 오늘의 빛, 오늘의 기분을. 그렇게 메모하듯 기억을 적다 보면, 어느새 다시 내 안에서 여름이 피어난다. 지나간 계절이 아니라 살아있는 감정으로서의 여름이 말이다.


주말이면 장마가 시작된다고 한다.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무더위가 찾아오고, 짜증이 함께 몰려오겠지. 하지만 그런 계절의 변덕 속에서도 나는 이 짧은 설렘 하나를 오래도록 꺼내보고 싶다.

쓸쓸한 계절을 견디게 해주는 작은 반짝임처럼, 다시 나를 일으켜줄 감정으로서의 설렘을.

설렘.

여름의 시작과 끝과 숨어 있는 그 감정.

지금 이 순간, 아주 조금의 햇살과 바람만으로도 나는 또다시 조용히 설레고 있다.






*제목사진은 픽사베이에에서 가져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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