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도로를 제외하고 양쪽으로 공군 전투부대 소유의 산이 있고 그 경계선은 차가운 철조망이 세워진 곳
이런 곳을 흔히들 도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지역이라고들 한다.
내가 사는 곳은 대구의 외곽지역
남편의 직업은 군인이어서 아이는 군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으로 등원하느라
3.7km를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외곽이지만 빈민가는 아니다.
대도시 속 작은 시골 같은 이곳이 참 좋다. 나의 딸들 일복이 이복이 삼복이 (복 많이 많으라고 지어준 최근 별명) 들도 회색 빌딩에 숨 막히는 아스팔트만 보며 생활하지 않고, 초록산과, 쪽빛 하늘과, 청아한 과실나무, 한겨울 앙상한 나뭇가지, 발로 밟고 귀로 느끼는 낙엽의 가을 냄새, 흐르는 시냇물 속 물방울의 미소까지 그 모든 걸 알아챌 수 있는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이곳에서 슬픈 아니 나만 가슴이 저미었던 일이라고 말해야겠다
여느 날과 같은 아침 등원 길
조금은 언덕이었던 길을 나의 작은 차에서 삼복이와 즐겁게 이야기하며 올라가는데
목에는 목줄이 달린 까맣고 털이 짧은 강아지를 삼복이가 발견했다
"엄마 아이 귀여워 저 강아지 보여요?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작은 것만 보면 '아이 귀여워'를 수십 번씩 남발하는 막내는 까만 강아지를 보고 연신 귀엽다고
옹알대는 목소리로 족히 스무 번은 귀엽다고 이야기한 것 같다.
"우와 진짜 귀엽네 근데 왜 길에서 혼자 다니지 위험한데 누가 잃어버렸나 빨리 주인이 데려가면 좋겠다 그렇지?"
그렇게 몇 초 되지 않았던 까만 강아지의 모습은 운전석 사이드미러에서 작아지더니 이내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같은데....'라고 말이다.
우린 다시 늘 그렇듯 신나게에 아침 라디오에서 나오는 광고음악을 합창하며 어린이집으로 향했고
아이와 즐거운 헤어짐과 함께 오후에 다시 만날걸 약속한 뒤 집으로 가기 위해 같은 길을 들어섰다.
가는 길 7분 오는 길 7분 아이 내려주는 시간 3분 합쳐서 17분
가는 길이라면 그 강아지를 보고 난 뒤 10분도 되지 않을 시간이었다.
다시 들어선 길에서 잠시 생각했다
'동물 보호단체에 전화해볼까?"
'내가 잡아서 보호단체에 데려다줄까?'
난 강아지를 개를 키우지 않는다. 그리고 키우는걸 썩 좋아라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모든 생명은 귀하다고 생각하기에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난 끝까지 책임질 수 없을 것 같고 집에서 키우는 것에서는 자신이 없기에 아이들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를 할 때도, 산타할아버지에게 강아지를 소원으로 빌 때도 난 정확하게 좀 더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동물은 절대 장난감이 아니라고 누군가 너를 키우다 재미없다고 버린다면 혹은 신경 안 쓰고 밥도 안 주고 그런다면 어떨까? 라며 직설적인 이야기를 해준다
다른 건 몰라도 생명에 대한 건 순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언덕을 올라가며 어쩌면 강아지가 안보이기를 바랐던 마음도 있었다. 사실 생각은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 까만 강아지를 구해줄 자신은 없었다. 그냥 안전한 곳으로 도로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 있기를 바랐다. 근데 만약 가는 길에 보인다면 동물단체에 전화라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다.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커브를 돌면서 바로 내리막, 내 눈보다 심장이 먼저 알아봤다.
내 아이가 귀엽다고 한 까만 강아지가 그 10분도 안 되는 사이에 차에 치어서 길에 누워 있었다.
난 길에서 로드킬을 당한 동물들을 보면 심장이 쪼그라드는 걸 느낀다
그리고 바로 성호경을 그어 좋은 곳에 가길 기도한다.
다음 생에는 꼭 원하는 삶으로 태어나길 바라면서 말이다.
지나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고, 할 자신이 없었다. 지나쳐오며 눈 미러로 본 길엔 다른 차들도 까만 강아지를 다시 밟지 않으려 조심히 돌아서 오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 길이라도 돌아와 주셔서'
그날 오후 아이 하원을 하러 다시 그 길을 가야 하는데 정말 자신이 없었다.
며칠 전 그 길 가까이에서 아기 고양이가 로드킬로 처참해진 광경을 보아야 했기에
까만 강아지의 그 모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세배 정도 되는 다른 길을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다
습관처럼 다시 하원 하러 가는 길 까만 강아지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 까만 눈동자를 먼산으로 돌리며
난 조금 비겁한 시선을 두기 시작했다 그러나 저절로 돌아간 그 자리엔
내가 생각했던 까만 강아지의 처참함은 없고 그 흔적도 없고 그냥 평소와 같은 길이었다
속도 없이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인간이라서 일까?
짐작 가는 분이 계시다.
그 허허벌판에 사는 고양이들을 위해 매일 차를 끌고 장소마다 사료를 챙겨주시는 캣맘을 계속 마주쳤었다. 하루는 그분이 차를 세워두고 사료를 챙겨주고 계시는데
잠시 '사료값에 보태실 수 있게 해 드릴까?'생각했는데 금전적으로 드리면 좀 건방진 것 같고
근데 난 고양이에 대해서는 전혀 몰라서 사료나 간식을 구매해서 드리기엔 효과적이지 않을 것 같고
이래저래 고민하다 몇 번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아마도 그분이 내가 지나간 뒤에 까만 강아지를 발견하셨다면 데려갔을 거라 생각이 들었다.
아니라 해도 어느 분이든 까만 강아지는 온전한 모습으로 갈 수 있게 되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3주가 지난 어제
아이와 하원 하는 길
산길을 거의 다 지나 동네길에 접어들 때쯤 까만 강아지와 비슷한 강아지 한 마리가 또 눈에 보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삼복이는
"엄마 저기 강아지 있어요 아이 귀여워 저 강아지는 여기가 집인가 봐요?"
다행히 그날 본 강아지는 넓디넓은 주차장이 있는 측백나무 관광센터 건물이 있는 곳에서 돌아다니고 있었고
길가와는 거리가 좀 있어서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근데 저 강아지는 주인이 없는 강아지 인가 봐 지난번에 우리가 본 강아지도 주인이 없었는데 이런 강아지들은 이런 건물이 집이 될 수도 있어"라고 이야기하자
우리 삼복이는
"엄마 저 강아지가 우리가 지난번에 본 그 강아지예요 봐봐요 맞잖아요 그때 본 그 귀여운 강아지예요 아이 귀여워~"
잠시 말을 못 했다. 아이의 기억 속 강아지는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하니 차마 다른 강아지라고 이야기해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언덕에서 봤던 그 강아지가 죽었다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거였다
" 그래? 엄마가 잘 몰랐네 그 강아지였어?
"네 그 강아지 맞아요 귀여운 강아지"
"맞네 그 강아지네 여기가 집이었나 보다 근데 왜 그렇게 멀리까지 놀러 갔던 거지 너무 멀리 놀러 가면 집 못 찾는데 우리 삼복이는 집에서 멀리 놀러 가면 안 돼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