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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온기 Aug 19. 2021

나의 스승은 책이다

학부모 신고식



“음 혹시 아버님과 어머님 중에 집에서 누가 가장 엄한 편이세요?”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는 아주 낮게 들렸다. 순간, 왜 이런 질문을 하시는 거지? 

불길한 생각이 들었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첫 아이를 학교에 입학시키고 선생님과 처음으로 상담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남편과 요즘 선생님들이 학부모에게 기선제압을 한다며 농담으로 내가 가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 줄 거라고  안 하던 화장도 한껏 하고 가진 옷 중에서 그나마 가장 단아한 옷으로 갈아입고 현관을 당당하게 나섰다. 남편은 상담 잘하고 오라며 막내를 봐주었고, 난 ‘무슨 말을 할까’ 학교로 걸어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그토록 당당하겠다는 나는 선생님과 상담 후 집으로 가는 길 눈물을 떨구며 상담하러 가는 길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나의 첫 아이 리아는 속으로 삼키는 아이였다. 나도 엄마가 처음이고 아이도 아이가 처음이었던 지난 시간 서로에게 아니 어쩌면 내가 일방적으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첫 입학으로 힘들었던 마음을 혼자 삼키며 지낸 아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께서는 딸아이가 수업 시간에 교탁 앞에 계신 선생님께 다가가  품에 안기며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어본 선생님의 말에 아이는 대답했다 


“엄마가 신발주머니 못 찾으면 혼난다고 그랬어요. 근데 신발주머니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요. 엉엉엉”


아이의 울음소리가 글을 쓰는 지금도 내 귀에 들리는 것 같다. 선생님의 입을 통해 처음 듣게 된 이야기에 난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충격이었다. 나의 표정을 본 선생님의 눈동자에는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라고 쓰여 있었다. 그 일이 아니라도 수업 시간에 종이 접기가 잘 안돼서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 한 번도 그 일을 내게 말하지 않았던 딸아이는 모든 것을 속으로 삼키고 있었다. 집에 오는 길 그리고 집에 와서 남편을 보며 이야기하는 내내 난 눈물을 쏟아냈다.


셋째가 태어난 지 8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아이에겐 두 번째 동생이 생겼다. 분명 나만큼 아니 그보다 더 힘들었을 아이를 생각해주지 못하고 난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며 겨우 8살 된 큰딸을 18살 아이처럼 대했었다. 그렇게 실컷 눈물을 흘리고 나서 난 생각했다. 아이를 위해 내가 변해야 한다고 아이들을 키우고 또 셋째를 출산했지만 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엄마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할지 남편과 상의하다 결론은 나를 변화시켜줄 책을 읽기로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육아서적 중에 내가 고르고 골라 선택한 책은 ‘엄마의 말공부’였다







아이가 내게 말을 하지 않는 건 내가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였다. 말해봐야 돌아오는 엄마의 말은 위로가 아닌 호통일 거라 생각하는 아이는 혼나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때의 내 상황이라면 그랬을 거다. 늦게 낳은 셋째의 육아로 너무 지치고 힘든 시간이라 난 누구에게라도 친절하지 못했고 아이도 그걸 알고 있었다. 엄마에게 위로받지 못하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니 이 아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내가 아이에게 준 상처를 다시 되돌리수 없고 할 수 있는 건 엄마가 변하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방법뿐이었다. 그래서 아이가 다시 엄마에게 마음을 열고 정말 또래 아이들처럼 조잘조잘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책을 사서 아이들의 육아가 끝나면 혼자 방에서 눈으로 글자를 꾹꾹 눌러가며 기억하려 애썼다. 한 글자 한 글자 놓치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문장들을 가슴과 머리에 넣었다. 그렇게 넣은 단어와 문장들을 익숙하지 않지만 딸에게 말해 주었고 혼내고 큰소리만 치는 엄마가 아닌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위로해 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남편도 함께 였기에 책에서 읽은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그날그날 내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 그리고 딸아이가 나에게 했던 것들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단숨에 모든 걸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책에서 나온 것처럼 아이가 변하는데 최소 6개월은 기다려 줘야 한다는 말에 긴 숨을 몰아쉬고 아이에게 다가갔다.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는 매일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시간이면 소파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어느 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아이도 책을 보며 위로를 받고 있구나’ 그렇게 아이와 엄마는 책을 보며 위로받고 또 배우고 있는 시간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책에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나의 모습을 반성하고, 딸아이에게 어떻게 표현을 하는 게 좋을지 나 스스로 고민했다. 


아이가 선생님 품에 안긴 날 아침, 나는 그전날 아이가 실내화 주머니를 잃어버리고 온터라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다.


 “리아야 너 오늘 실내화 주머니 안 찾아오면 엄마한테 혼날 줄 알아! 왜 네 실내화 주머니를 다른 친구한테 맡겨! 꼭 찾아와야 돼!”


라고 말이다. 8살 아이는 너무 무서웠던 것이다. 못 찾으면 엄마가 어떤 말로 혼낼지 알고 있었기에 수업시간 내내 그 생각으로 앉아있다 무서움에 선생님께 안겼다. 지금도 그날 아침 아이에게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어떤 표정으로 어떤 말투로 이야기했는지 결코 잊지 못한다. 아니 잊지 않을 거다. 내가 아이에게 혹시나 그때처럼 으름장을 놓으며 큰소리를 낼 상황이 되면 그날 아이가 겪었을 무서운 감정을 기억하려 한다.


책이 내게 준 영향은 엄청났다.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읽고 혹시 기억이 안 날까 봐 형광색 펜으로 칠해 놓고, 또 읽고 계속 읽었다. 잊지 않고 하교하는 아이에게 어색하지만 기억하고 있는 대로 아이의 마음 읽어주는 대화를 시작하고 천천히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마주 보고 이야기했다. 


“리아야 학교에서 속상한 일 있었다고 선생님께 들었어 색종이 접기 하다 울음이 나왔다고? 잘 안돼서 속상했어?”


라며 대화를 시작했고 아이는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지만 참고 다시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우리 딸 얼마나 속상했어! 종이접기 좋아하는데 잘 안되니깐 힘들었던 거야?”


라고 하니 아이는 붉어진 눈시울에서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난 


“엄마가 몰라서 미안해 리아가 이야기 안 해서 엄마는 속상한 줄 몰랐어 이제 엄마가 이야기 다 들어줄게 엄마한테 속상한 거 있으면 다 이야기해줘 알았지?”


딸아이는 계속 눈물만 흘렸다. 예전 같으면 울긴 왜 우냐고 윽박질렀지만 아이의 흐르는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울고 있는 아이를 꼭 안아주며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했다. 

지금은 아이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날 이후로 조금씩 변하는 아이의 모습에 안도감이 들었고 그럴수록 난 다른 책을 읽으며 내가 변해야 할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도 아이도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고 지금은 무엇이든 나와 남편에게 이야기해주는 친구 같은 딸이 되었다. 우리 모녀에게 그런 힘든 시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너무 잘 자라주고 있다. 부모가 변하면 아이는 반드시 변한다는 글을 가슴에 문신처럼 새긴 날 이후 난 많은 육아서를 읽고 나의 아이들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더 많지만 단 한 가지 명확한 것은 그때 그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난 여전히 불통인 엄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나의 변화로 아이가 바뀔 수 있었다면 

난 책을 만나서 변할 수 있었다. 지금도 난 끊임없이 책을 통해 세 아이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 중이다.

내게 책은 단순한 글자가 적힌 종이 뭉탱이가 아니라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고, 

나를 엄마로 만들어주는 훌륭한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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