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진 아이 양말 사용법

작지만 멀쩡한 양말

by 다정한온기

아이가 자라면서 비우고 싶지 않아도 비워야 되는 것들이 많아진다

세 아이의 옷과 양말 신발 등 모든 걸 다 물려주며 입으면 가장 좋지만. 첫째와 6살 차이 나는 막내는 물려주는 게 쉽지 않았다. 처음엔 물려줄 심산으로 리빙박스에 넣어 베란다에 층층이 쌓아두고 이사 갈 때마다 이고 지고 다녔는데 몇 년 뒤 막상 아이가 입으려고 꺼내보니 흰색 옷들은 누런색으로 변해 있었고 보관할 때는 못 봤지만 음식을 먹다 흘린 지워지지 않은 자국들이 선명하다. 외출복보다는 대부분 실내복으로 막 입고 정리하게 된다

옷은 그나마 어떻게 할 수 있다지만 양말은 사실 물려주거나 다른 사람을 주기가 꺼려진다. 이제껏 막내가 물려받은 양말은 가끔 신는 레이스 양말과 반양말, 그리고 스타킹 정도이다. 일반적으로 매일 신는 양말은 아이들의 발가락 모양이 선명할 정도로 자국이 남아 있거나, 막내가 거부할 정도로 캐릭터들의 형태가 없어졌다.

둘째까지는 주변에서 얻어 입기도 하고, 첫째가 입던 옷을 바로 받아 입었는데 막내는 얻어 입을 곳도 많이 않았다. 늦은 셋째 출산이라 지인의 아이들은 이미 훌쩍 커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내는 어부지리로 새 옷을 사 입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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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껏 힘줘서 추켜올린걸 보니 아마도 뒤꿈치를 맞추려고 한 것 같다. 언제 이렇게 크고 있는 건지

지난가을과 올봄에 신은 양말들의 뒤꿈치가 아이의 발바닥에 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여름 양말을 사야 해서 정리를 한참 아이는 " 엄마 나도 언니들처럼 발등이 이렇~게 생긴 거 사주세요"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아이도 이제 양말 추켜올리기가 싫었던 걸까? 배시시 웃으며 사달라고 말하는 아이가 어찌나 귀엽던지 냉큼 사준다고 말을 던져 버렸다. 아이는 예~~~~ 소리 지르며 곧바로 "언제 와요?"라고 물어본다.

다행이다 당장 내놓으라며 떼쓰지 않는 아이가 무엇을 사면 금방 도착한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질문이라서 말이다


양말을 사기 전에 먼저 정리를 해야 했다. 아이 서랍에서 목이 긴 양말들을 꺼내니 두 계절을 신은 거 치고는 구멍 난 곳도 없고 멀쩡한데 내 아이 양말이라 나는 상관없지만, 다른 이에게 나눔을 하기에는 양말은 아닌 것 같다. 몇 개를 사야 하는지 정하고 정리해야 될 양말을 손에 들고 뒷베란다로 간다. 무엇이든 정리하기 전에는 무조건 뒷베란다 바구니에 넣어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맥시멀 한 곳. 미니멀 라이프와 제로 웨이스트를 한꺼번에 한다는 건 뭔가 교집합이 있으면서도 또 완전 반대의 성질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어떤 물건을 정리하기 전 다른 곳에서의 쓸모를 한번 더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러다 나에게 무쓸모라면 비움으로 내보내는 것이고, 찾아보니 다시 쓸모가 있을 거라면 사용해 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비움을 하다 보니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물건 선정-> 대체 물건 준비-> 쓸모의 고민-> 결정-> 비움 혹은 재 쓸모


이렇게 양말은 꼭 내 눈에 보이는 곳에 놓고 지나가며 어디에 쓸 수 있을까 잠깐씩 생각한다.


집에서도 텀블러로 커피를 마시는 나는 안과 밖의 온도차에 텀블러 겉면에 송골송골 맺히는 물방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종이를 만지거나 폰을 만지거나 키보드를 만지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손에 묻어나는 물기 그래서 손수건으로 휘뚜루 둘러놓고 고무줄로 고정시켜 놓았는데 모양새도 안나도 외부에 가지고 갈 땐 불편했다 그래서 그냥 수시로 닦았다가 대충 다녔다가 그랬는데 혹시나 해서 아이의 분홍 양말을 넣어볼까 했다 양말이 작아서 내 텀블러에 들어갈까 못미더웠는데 이런 너무 찰떡이었다 스판으로 잘 늘어나고, 길이도 딱이며 심지어 주름을 잡아 멋스러워지는 게 아닌 게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양말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양말 주인도 못 알아봤다(막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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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라온아 이거 라온이 양말이다~ 라온이 이제 작아서 못 신잖아 그래서 엄마 차가운 거 마시면 얼음 때문에 손 시려서 옷 입혀줬어~"라고 했더니 깔깔깔 거리며 너무 좋아했다 자신의 양말이라면서 말이다


그 뒤로 여기저기 양말을 사용할 곳을 찾아 헤맸다.

양말 사이즈가 어른사이즈가 아니라 작은 병들이나 텀블러 위주로 생각했는데 평소에 기름을 산화작용이 덜 되게끔 덜어서 쓰는 오일병을 닦아서 새로 기름을 넣어야 하는 아주 적절한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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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놓치지 않고 아이의 양말을 씌워 보았다 있는 힘껏 잡아당기고 물결무늬 목부분을 노랑 고무줄로 잡아주니

기름도 흐르지 않고 왠지 화병 같은 느낌이 들어 너무 이쁜 게 아닌가


그리고 들기름 참기름병까지 내친김에 넣어 보았다

들기름은 냉장고에 넣어서 가끔 쓰지만 가끔 쓰기에 잘 들여다보지 않으니

이렇게 양말로 살포시 따뜻하게 해 주기로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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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기름도 덜어서 사용하는데

작은 오일병을 사용하다 보니

꼭 언니 옷 입은 막내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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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부분을 접어서 우아한 넥 스타일을 만들어주고 고무줄로 고정시켜 주었다.


양말을 씌워 놓으면서 이쁨도 좋아졌지만

오일병을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아서 편했다. 저녁 반찬으로 가지볶음과 나물을 하는데

손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양말을 재사용하기도 하고, 묻으면 휙휙 빨아서 다시 쓸 수 있고

앞으로도 아이는 커가면서 양말을 남길 텐데 취향대로 골라서 바꿀 수 도 있고

큰일도 아닌데 난 꼭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미니멀 라이프도 살리면서 제로 웨이스트 이념도 지킬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하다


아이는 새로 산 양말에 기분이 좋아서 싱글벙글했지만.

엄마는 아이가 커가며 남긴 양말을 다시 사용할 수 있어서 어깨가 으쓱 거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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