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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버지니아 울프가 있었다.

<자기만의 방> 독서 모임 리뷰

by 디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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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와
문을 잠글 수 있는 방 한 칸이 필요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은 적이 없는 사람도 위의 문장은 한 번쯤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자기만의 방>이라는 책 제목도. 이날 모인 사람 거의 모두가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으며,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강연을 위해 쓰여진 내용을 엮어서 만든 에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읽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버니지아 울프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선도했던 20세기 대표 모더니즘 작가로 평가받는다. 1882년 런던에서 출생해서 문화계 로열 패밀리(글수저랄까)로 자라 영국 지식인 집단 '블룸즈버리' 그룹에서도 활동했다. 여성이었기 때문에 대학에 입학하지는 못했지만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마음껏 글을 쓸 수 있었던 그녀는 자신의 특권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아래와 같이 말하기도 했다.


스크린샷 2025-05-22 오후 2.44.53.png 출처 : 민음사TV


총 6장으로 나뉘어진 이 책에서는 그녀가 제안받은 '여성과 픽션'이라는 강연 주제에 대해 다가가는 과정에서의 생각들과 여성 작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통찰, 앞선 시각이 돋보인다. 왜 여성은 가난한가, 왜 여성은 글을 쓰지 않는가(못하는가), 셰익스피어의 누이가 셰익스피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그것을 감성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고 있는 점만으로도 - 약간의 위트까지도 더해 - 작가로서의 그녀가 대단한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그녀 이후의 얼마나 많은 여성과 작가들이 그녀의 영향을 받았을지를 생각했을 때는 새삼 감사한 마음마저 드는 것이었다. 우리 안에 빛나는 아이디어들 - 이것을 작가는 '작은 물고기'라 일컬었다 - 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충분하게 확보되어 있는지에 대한 궁금해지는 마음도.


작가는 메리 카마이클이라는 무명 작가의 글을 발견하고는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백 년의 시간을 더 주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또 다른 메리 카마이클일 것이다. 무명 작가인 메리 카마이클과 백 년 뒤의 시인 메리 카마이클 사이 어딘가에 있는 또 다른 메리 카마이클들이 토요일 오전에 다시 모였다.




Q. 책을 읽고 느낀 소감을 자유롭게 나눠볼까요.


옥 : 이 모임이 아니었으면 읽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흥미롭지만 따라가기 힘들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얘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재밌어졌다. 거인의 어깨라거나, 시대적 한계에 대한 표현이라든지 재미있는 지점이 여러 개 있었다.작가의 빈정거리는 투가 인상 깊었다. 이 작가가 현대 사람이었으면 말로 배틀 붙으면 장난 아니겠다 싶었다.

영 : 이 책을 보고 '내가 무식하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세 줄 읽고 조는 것을 반복했다. 뒤쪽 내용에 여성의 지위나 권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현재도 의식의 수준은 그때에 비해 많이 나아지지 않았지만 이런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재산과 직장을 가지고 다니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 : 나는 이게 강연록이라는 게 가장 놀라웠다. 그 당시 누군까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연을 의뢰했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여성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는 게 놀랍다. 사실 내 블로그 이름도 이 책 제목의 영향을 받았는데, 정작 이 책을 읽지는 않았었다. 사람들이 하도 어렵다고 얘기해서 무서워서 읽기 싫었는데, 막상 보니 그렇게까지 어렵지도 않은데 뭘 그렇게까지 어렵다고 했나 싶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 소설 보면 엄마 얘기했다가 아빠 얘기했다가 왔다갔다 하더라니 이게 다 여자들이 소설을 거실에서 써서 그랬다는 걸 알았다!

현 : 최근 영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다. 덕분에 이 책의 배경을 상상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상승해서 작품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 등 고전에 대해 알게 되었고. 생각보다 잘 읽혔고 도움이 되었다. 의외의 발견입니다. 재밌었어요.

은 : 당연히 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강연록인 줄 몰랐다. 또 읽으면서 이게 고전이라는 느낌을 딱히 못 받았다. 개인적으로는 책 앞 부분 정여울의 추천의 말(민음사 버전)이 가장 맘에 들었다. 읽기 좀 어려웠고 이 작가 분과 의식의 흐름이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라 : 강연록인 거 저도 지금 처음 알았다. 제일 유명한 문장 하나만 알고 읽고 시작했고, 강연하는 듯한 이 느낌이 소설 속 일종의 기법이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한 문장 한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기 보다는 후루룩 읽었는데 그러다 보니 의미있는 문장들이 보였다. 저도 이 모임 때문에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 : <자기만의 방>이 힘들었던 분, <3기니>를 추천드립니다. 두 작품이 같이 실린 책으로 읽다 보니 <3기니>까지 다 읽어야 되는 줄 알고 읽던 중이었다. 앞에서는 잘 안 읽혀서 계속 눈으로만 읽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잘 읽히는데 그게 <3기니>였다. 정작 <자기만의 방>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당황스럽다. 한 가지는 들었던 생각은 버지니아 울프처럼 여자는 방도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다고 어릴 때부터 얘기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연봉협상도 더 잘했을 텐데, 라는 생각.

우 : 듣다보니 저만 어렵게 읽은 게 아니구나. 내가 책을 이렇게 이해를 못한다고? 생각하며 봤다. 그래도 정말 잘 썼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는 테이프를 붙여가면서 봤다. 최근 눈물이 많아져서 인지 모르겠지만, 책 마지막 부분의 셰익스피어 누이에 대한 이야기부터 끝까지를 읽으면서는 감동했고, 눈물을 찔끔했다.

단: 저도 책이 잘 읽히진 않았다. 발제자다 보니 열린책들 버전으로 한 번 읽고, 민음사 책으로 한 번 더 읽었다. 민음사 톤이 더 부드럽고 잘 읽혀서인지, 두 번째 읽는 거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두 번 읽으니 훨씬 이해가 잘 되더라. 잘 읽히지 않은 이유는 아무래도 작가의 글이나 번역 문제보다는 배경지식이 모자라기 때문인 것 같다. 책 내용 중 '모든 책은 이어진다'는 의미의 구절이 있는데, 우리가 읽는 책들이 전혀 다른 주제와 분야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임을 하다 보면 다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던가. 이와 반대로 책을 둘러썬 배경과 흐름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면 내용도 단편적이고 제한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가 왜 대단한 사람인가 그동안 궁금했는데 여러 부분에서 선구자였기 때문이다. 글도 물론 잘 쓰지만 남들보다 앞선 시각과 통찰이 있었고 또 그걸 표현하고 전달하려는 용기도 있었다. 작가가 1882년생이던데, '82년생 버지니아 울프'가 있었기에 '82년생 김지영'이 있을 수 있었다. 발제 책을 고를 때만 해도 집에 있는 책이고,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인데다 분량이 짧아서 고른 것인데,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를 보고는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글을 쓰지 않아서, 나만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해서 부끄러웠다.




Q. 작가는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와 문을 잠글 수 있는 방 한 칸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고, 또 '고통 속에서 작품이 나온다', '창작가는 배가 고파야 한다', '헝그리 정신'과 같은 인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정 : 남자와 여자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 남자에게는 백프로 주어지지만 여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것. 여자에게는 중요한 것이 남자에게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어려움이 있거나 우울한 사람이 글을 더 잘 쓰는 건 있는 것 같다. 좋은 집에서 자란 사람들은 굳이 글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 이 질문을 보면서 '이상' 작가 생각을 많이 했다. 가난은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그걸 빠져나와야 그걸 보면서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500 파운드와 헝그리정신이 합쳐진 사람이 조앤 롤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조앤 롤링은 자기만의 공간이 없었던 울프의 시대와는 다르게 적어도 카페에서 글을 쓸 수는 있었지 않나.

단 : 글을 쓰게 하는 게 꼭 가난이라기보다는 크게 봤을 때 결국 결핍에서 비롯되는 건 아닐까.

이 : 꼭 가난이 아니더라도, 성향 때문일수도 있겠다. 부채의식이라든가. 윤동주라든가, 518 등 부채의식이 쓰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옥 : 불합리. 무엇이든 당연하게 느끼는 사람은 글을 안 쓰는 것 같고, 의문을 느끼는 사람, 질문하는 사람들이 표현하고 주제가 생기면 파고드는 것 같고, 활동을 하는 것 같다.

영 : 결핍과 욕망 사이 아닐까.

단 : 추가로 궁금한 게, 19세기 여성 작가들이 주로 소설을 쓴 이유에 대해 작가는 그들이 주로 거실에서 글을 써야 했기 때문이라며,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시보다 집중력이 덜 요구되는 소설이 적합하다는 가설을 제시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실제로 글을 쓰는 분의 의견이 궁금하다.

정 : 그럴 듯하다고 느꼈다. 당시 남자들이 자주 썼던 철학서, 에세이보다는 소설이 훨씬 쉬웠을거라는 생각이다. 소설은 아무래도 이야기에 얹기 시작하면 확 뻗어나가기 때문에 집중력을 덜 요구하고,,, 맞는 말인것 같다.




Q.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혹은 글을 쓰려면) 최소한 00이 필요하다.” 빈칸을 채워주세요.


정 : 노트북.

옥 : 은퇴를 생각하고 있어서 안 그래도 남편과 함께 최소한의 것에 대해 얘기하곤 하는데 버지니아 울프가 말한 금액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 1년에 3천만원.

영 : 돈도 돈이지만 글감이 있어야 한다. 비참하고 슬프면 글이 나오는데 생활이 안정되면 다 쓸데없다는 생각이 들고 글을 쥐어짜내게 되는 것 같다. 결국 결핍인가.

현 :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최소한 한 달에 2백은 필요하다. 또 글을 쓰는 부분에 있어서는 최근 주변 사람에게 '니가 무언가를 추진하기 위한 동력이 없어서 못 쓰는 게 아니냐. 교육을 받는 것은 어떠냐'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은 : 그 일을 하기 위한 '이유'가 필요하다. 한때 실업급여도 들어오고 시간 여유도 있었지만 써야 할 이유가 사라지니까 손을 놓게 되었다.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중요하다.

라 : 전 이유가 아니라 '여유'. 쫓기면 되려 더 안된다. 자극도 있으면서 마음의 여유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단 : 회사 다닐 때는 시간의 여유,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저에게 필요한 건 데드라인과 모임인 것 같다. 혼자서는 계속 늘어진다. 반면에 저에겐 어느 정도의 고립도 필요하다. 혼자만의 시간, 미디어나 사람과의 단절 같은 것.

정 : 나는 그래서 책을 읽는다. 다른 것을 할 때는 폰을 수시로 확인하고 있는데, 책 볼 때는 분리가 된다. (저는 티비 볼 때는 티비만 보고, 책 보거나 일할 때는 수시로 핸드폰을 보는데, 정확히 반대시네요.)

우 : '단'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게 '몰입'인 것 같다. 사유할 시간이 없으면 무엇인가를 뽑아내기 힘들다. 나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누가 내 멱살을 잡고 딱 앉혀놓는 것. 그리고 놀러다니는 거 좋아하니까 주 4일 근무하고도 페이는 똑같이 받았음 좋겠다. (에엥?)




Q. 문학에서, 혹은 다른 특정 분야에서 문득 성 불평등 혹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닫게 되거나 체감하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단 : 미친 듯이 책을 읽어대던 초등학교 시절, 사촌 언니 집에 놀러갔다. 위인전집이 있길래 책을 고르다가 남자보다는 여자 이야기가 훨씬 재밌다고 느꼈다. '헬렌 켈러' 시작했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퀴리부인'과 '나이팅게일'까지 새벽까지 이어 읽고는 다음날 아침 난생 처음으로 코피를 흘렸다. (다시 생각해 보니 2번째네요.) 그런데 100권의 전집 중 여자 이야기는 딱 이 3권 밖에 없는 게 이해가 안 가고 아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분야에서 여자가 두각을 나타내기 힘든 사회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알겠다.

은 : 유튜브 '5분순삭'을 통해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 시리즈를 다시 보고 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봤는데 지금 보니 차별적인 부분이 적나라하게 보여지고 그것이 웃음으로 소비되는 것이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댓글에도 비슷한 의견들이 적혀 있었다. 예전엔 자연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라 : 당장 오늘만 해도 지하철에서 여자 목소리로 기장 안내방송이 나오니, 어 여자네? 하면서 어색하고 생소하게 느끼는 나를 발견했다. 보통 '대표님'이라고 할 때도 남자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공사장 인부나 지게차 운전 기사가 금발의 여인라서 화제가 된 짤을 볼 때도 문득문득 느낀다. 독일에 사는 70대 할머니 레즈비안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를 봤을 때도 내 안의 고정관념을 느낄 수 있었다.

현 : 영국에서 공항을 향해 가는데, 공항버스를 체크하는 사람이 히잡을 쓴 여성이었다. 타고 내릴 때 보니까 심지어 운전사였다. 캐리어도 직접 꺼내주는 것을 보며,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했고, 앞으로 많이 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옥 : (오프 더 레코드)

정 : 드라마 작품 뒤풀이를 갔을 때, '발달장애인들이 나이를 먹고 늙으면 이들을 한곳에 모아서 노인 공동체로 만들려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모두가 속상해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이 많은 사람의 일을 그저 노인 문제로 뭉뚱그리는 것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Q. 작가는 당시 '백년이 더 지나면 여성들은 보호받는 성이기를 그만둘 것이라 했는데 꽤 그렇게 되어왔다는 생각입니다. 우리나라로 한정했을 때, 앞으로 백년 후 여성의 권리와 자유, 역할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영 : 30년 뒤면 우리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 (역시! ㅋㅋㅋ)

현 : 친구가 계속 우리나라 소멸 관련 유튜브 콘텐츠를 보여주는데 왜 이리 싫은지 모르겠다. 아닐 건데? 생각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 여성들이 감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쪽으로 변했으면 좋겠다. 최근 <데블스 플랜 2>를 보다가 윤소희가 1등 하지 못한 것에 분개했다.

우 : 남녀의 유전적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근력의 차이라든가, 그 차이에 따른 위험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가 다르다던가. 그것이 구조화되어 점점 고착화된 것. '남자는 악하고 여자는 사악하다' 라는 표현을 봤는데, (그 차이는 무엇이죠? 기분의 차이 같은데요. 왠지 기분이 나쁘니까요. ㅋㅋ) 여성이 피지컬적인 부분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지능적으로 더 뛰어날 수 있다는 표현인 것 같다. 그러나 백년 후라면 피지컬적인 차이도 줄지 않을까.

옥 : 유전적 차이라고 하는데, 남편과 살아보니 그 차이가 전혀 발현되지 않는 걸 느끼고 있다.

라 : 호르몬의 차이는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것의 영향을 받고 있다.

정 : 남녀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제도적인 차별을 만들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남녀의 차이도 개인차 만큼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이 : 전 세계적으로는 남녀 차가 없이 거의 같아지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만 봤을 때는 희망이 없다. 아직도 혐오가 도처에 판치는 느낌이라 회의적이다. 여성은 진보하고, 남성은 퇴보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그렇다가 아니라 정치 분야에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옥 : 적절치 못한 표현 같다. 현상에 대해서는 현재 버즈가 있는 게 맞지만, 이런 것들이 가시화되고 얘기가 되는 것만으로 진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이 거슬리기 시작한 것 자체가 나아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 : '이'의 의견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강의가 취소되는 등 공적인 분야에서 세상이 뒤로 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아갈 수 없다.

영 : 그것은 성별 차이가 아니고 권력의 차이라 생각한다. 어떤 집단이 힘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정, 옥 : 성별 차이다. (그 뒤 젠더와 섹스를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설전이 이어졌다...)

라 : 저는 백년 후를 회의적으로 보지 않는다. 남자 싫어, 여자 싫어, 하는 사람들은 어차피 자손을 안 낳을 것이고, 이상적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유전자가 계속 남아 이어질 확률이 높다. 얼마 전 유시민이 유튜브를 통해 인구 문제 때문에 한국이 망했다고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한국이 반드시 살아남아야 할 필요 있냐'는 말과 함께 '과학이 계속 발전했을 때 인공 자궁을 만들게 될 수도 있고, 인구 문제를 꼭 결혼이나 출산과 연결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말을 하기도 했다. 다정한 자들이 번영하기를 바란다.

단 : 아직 멀었지만 성 차별에 대한 인식과 행동은 우리나라도 최근 10년간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지 않은가 싶은데...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여성에게 무지하지 말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주체적으로 살라고 하는 것처럼 우리 모두가 미미할지라도 어떤 보이지 않는 틈을 계속해서 찔러볼 수 있었음 좋겠다. 익숙해질 때까지.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2025년 5월 24일 오전 11시 @문래 러스트베이커리

참석자 : 단, 옥, 영, 정, 현, 은, 이, 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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