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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도시 이야기 _ 찰스 디킨스

by 정윤

지난 겨울부터 올 봄 대선이 치뤄지기까지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질 듯 싸웠다. 보수와 진보의 대립이야 늘상 있어왔지만 이번엔 비방과 거짓뉴스들의 수위가 사뭇 달랐다.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감정만 부추겼다. 혐오의 유증기 가득한 곳에서 다시 만날 뻔한 계엄의 세계를 막아낸 건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평화의 축제를 이뤄낸 이들 덕분이었다. 최루탄과 분신, 화염병과 물대포, 단식과 고공농성으로 살벌했던 시위 현장이 노래와 웃음, 북치고 장구치는 축제의 장이 되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피, 땀, 눈물을 흘렸는지. 이런 시점에 ‘두 도시 이야기’를 읽게 된 건 어딘가 운명적이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모두 천국 쪽으로 가고자 했지만 우리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너무나도 유명한 첫 문장은 프랑스 혁명기의 극단적 혼란함을 보여준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1819~1901)*에 출간된 ‘두도시 이야기(1859년)’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런던과 파리를 오가며 일어나는 사건을 풀어낸다. 귀족 계급의 탐욕과 오만함이 민중의 분노를 키웠고, 결국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폭발하며, 그 광풍에 휩쓸린 사람들의 이야기로 사랑과 희생, 정의와 복수, 자유와 평등의 경계에 선 사람들의 선택이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는지 함께 얘기해 보았다.


*빅토리아 시대는 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등 다방면에서 변혁이 있었다. 보수적인 도덕주의, 엄숙주의와 함께 허영과 위선도 함께 존재하는 시대, 합리주의와 발명, 탐구를 지향하던 근대 과학자와 발명가들이 전근대의 유산인 갖가지 미신과 전설, 도시괴담을 믿던 대중들과 뒤엉켜 공존하던 시대로 일컬어진다. 프랑켄슈타인(1831), 지구속 여행(1864), 전쟁과 평화(1864), 지킬박사와 하이드(1886) 등 우리가 아는 많은 고전이 탄생했다. 작가들이 인간의 최선과 최악의 경계를 가늠하며 실험하던 시기로 모든 것이 암흑이었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이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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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1. '두도시 이야기'를 읽은 전체적인 감상은?

매 : 초반에는 인물들이 많고 배경이 촘촘해서 따라가기 어려웠지만 중반 이후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훨씬 재미있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극, 넷플릭스 시리즈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당시 연재되던 작품이라는 걸 알고는 책의 구성이 이해가 되고 소제목을 (다음이 궁금해지도록) 굉장히 잘 지었구나 생각했다. 다만 인물들이 모두 너무 고결하고 현실적이지 않아서 과장된 연극 속 인물 같았다. ‘프랑스 혁명과 그에 휩쓸린 사람들이 어떻게 고결함으로 이겨내는가’라는 주제와는 어울리는 설정이라고 생각한다.


효 : 뮤지컬로 봤다. 2012년~14년까지 3연을 했는데 뮤덕들 사이에서는 너무 그립고 소중한 작품이라 다시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저렇게까지 희생을 한다고?’ 이해가 된다 안된다 얘기가 많았다. 원작과 달리 뮤지컬에서는 시드니 카턴이 거의 주인공이고, 뮤지컬 넘버가 무척 수려하다.


승 : 추리소설 같다는 얘기에 기대했는데, 읽는 중간중간 끊기는 느낌이 있었다. 보통은 인물 관계도를 그려가면서 보는데, 초반에 지나가는 인물인 줄 알았던 사람이 뒤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게 재미있었다. 고전치고는 문장도 쉽고 번역도 괜찮았지만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상상하면서 보려니 시간이 좀 걸렸다. 소제목들이 주는 위트가 눈에 띄었는데 ‘도시의 귀족나리, 시골의 귀족나리, 섬세한 친구, 섬세하지 않은 친구, 뜨개질, 뜨개질이 끝나다’ 등 디킨스 특유의 유머가 느껴져 피식피식 웃었다. 프랑스 혁명을 잘 알았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다. 돌아가는 상황이나 무능한 사람들, 스트라이브 같은 변호사들을 보면서 현재에 너무 대입되었다.


주 : 초반에는 몰입이 너무 안됐다. 특히 미스 프로스의 말투나 태도에 확 짜증이 났는데, 동시에 집중하게 되었고, 점차 그 인물이 점차 변화하는 모습에서 흥미를 느꼈다.


선 : 프랑스 혁명은 시험에 나오는 역사 한 줄, ‘자유의 여신' 그림으로만 알았는데, 실은 굉장히 휘몰아치던 최악의 시절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쏟아진 포도주에 사람들이 달려드는 장면에서 그들의 허기가 전염되는 듯 했고, 귀족의 초야권과 탐욕, 오만한 처신이 권리라고 생각했다는 설명에는 어이없음과 분노가 끓어올랐다. 혁명이 일어나고 기요틴에 귀족들의 목이 떨어져 나갈 때는 우리나라 1940~50년대가 떠올랐다. 가족도 친구도 무릎 꿇리고, 보리쌀 한 자루에 기꺼이 완장을 찼던 때. 소설은 150년 전 유럽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살아가는 게 어쩜 이리 똑같을까 생각했다. 그 와중에 디킨스의 문체는(순조롭게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중이었다. 등) 너무 웃기고 위트 있었고, 사랑을 고백하는 대사나 감정 묘사는 세레나대처럼 장황한 수사가 느껴져서 당시 문학스타일이 느껴졌다.



질문2. 프랑스 혁명은 정당한가? 아니면 또다른 폭력의 시작인가?

프랑스 민중은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귀족을 무차별 처형하지만, 그 과정은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을 낳는다. 어디까지가 정의이고, 혁명이며, 그 경계를 넘어서는 것은 무엇인가? (디,유)


효 : 어려운 질문이다. 정의를 지킨다고 생각하지만 하다보면 뭔가 복수하고 싶고, 저 사람을 망가뜨리고 싶은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매 : 드파르쥐 부인은 혁명을 수행한다는 대의와 개인적 복수가 섞여 있다. 복수심에 의해 생긴 동력이 불필요한 희생을 야기한다. 한편, 단체로 흥분해서 죽이라고 소리치던 사람들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자 막 울면서 감동받고 하는 모습을 보면 이 것은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 아닌가 싶다.

선 : 그 모습은 로마 콜로세움의 관중과 지금의 댓글문화도 너무 똑같은 군중심리 같다.

효 : 예수에게 한 짓도 똑같다.


승 : 이건 너무 당연하게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사건의 이름을 붙일 때 내란이냐 혁명이냐 항쟁이냐 등 논의를 거치는데, 오랜시간 핍박받던 국민들이 자유와 인권을 위해 들고 일어난 거니까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 자체가 이미 정당하다는 의미 아닌가?

선 : 목적이 정당하다면 과정이나 수단에 약간의 피를 흘려도 어쩔 수 없다?

승 : 혁명이 홧김에 일어난 게 아니고 나라 전체를 위해서 굉장히 오랫동안 치밀하게 준비된 계획이니까.

매 : 어떤 혁명도 완벽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희생된 사람들이 왜 없겠나, 지금도 억울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혁명이 이렇게 일어나는 구나를 느낀다.

선 : 혁명에는 억울한 사람이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다?

효 : 대의를 위해서 개인이 희생되지 않고는 혁명은 불가능하지 않나..

선 : 그런데, 이 문제가 좀 예민하게 생각되는 건 혁명을 이끄는 사람들이 이런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다수결의 원칙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다수의 이익과 편의를 위해 소수는 희생되어도 어쩔 수 없다는 선에서 멈추는 게 맞나?

다 : 예를들어 장애인 이동권 집회는 누가 보면 불법시위인데, 그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얘기다.

효 : 최대한 희생자가 생기지 않는 쪽으로 모두가 노력하는 게 좋지만 그건 정말 ‘이상’이다.

장애인 시위의 경우, 최근 3~4년간 출근길에 매일 만나는데, 집회를 하는 장애인들은 10명 남짓이지만, 관리하겠다고 나온 경찰이 100명이다. 시위가 폭력적인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과잉대응 하는지 모르겠다. 협의점을 찾기보다 그 시간을 모면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아직도 저러나 하는 사람도 있고, 안타깝게 보는 사람도 있는데, 도대체 뭘 위해, 누굴 위해 몇 년째 이러고 있나 싶다.


그후로도 이런 저런 얘기는 계속되었지만, 현재의 우리로서는 혁명의 과정에서 생기는 폭력과 그에 따른 희생에 대해 이렇다 할 방법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나온 질문)

질문3. 공공의 분노가 표출된 좋은 사례 혹은 아이디어가 있을까?


효 : 이번에 탄핵 시위 때 응원봉 든 것. 엄마랑 낮에 한 번 갔었는데, 시위가 이렇게 축제 분위기일 수 있나, 광장에 있던 본심은 분노였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형태가 너무 유쾌하고 즐거웠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을 거다. 관광코스로 있을 정도 였으니까.


선 : 그런데, 같은 시기에 한쪽은 광장에서 축제를 하고, 한쪽은 서부지법을 다 때려 부수고...

이 두 집단의 차이가 뭘까? 불과 90년대, 2천년대까지 시위나 집회 현장은 사람들이 울분과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는 '다시 만난 세계' '위플래시' 이런 노래가 들려오니...


다 : 아마 지금의 시위 문화가 생기기까지 앞서 있었던 시위와 집회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선 : 인식의 수준이 최루탄에서 물대포, 지금의 모습으로 단계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걸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눈도 많아지고, 미디어 환경이 발전하고, 다음 세대와 여성들이 집회의 현장에 더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도 차이점이고.


질문4.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당신은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누구를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되었나?(이)


주 : 미스 프로스. 책을 몰입하게 해준 인물, 첫인상은 좀 짜증났지만 점점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승 : 드파르쥐 부인. 뜨개질만 할 줄 알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주도적인 인물일줄 몰랐다. 시대 속 여성의 한계를 너머 맞서 싸우는 모습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


매 : 드파르쥐 부인, 시드니 카턴, 사명감으로 똘똘뭉친 선한 인물들은 사실 매력이 좀 떨어진다. 그런데 이 두 인물은 외전이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 남자가 왜 고장났는지 계속 궁금했다. 능력도 있는데 자존감이 왜 이리 낮은지. 사실 카턴의 사랑은 현대에서 보면 정신증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사랑을 보여주겠다는 느낌, 이거 말고는 내 사랑을 증명할 길이 없다는 듯 약간 미친 사람 같은.


승 : 이 책의 가장 이상적인 캐릭터인 루시는 후반부에 어떤 변화나 반전이 있으려나 기대했는데

매 : 조금도 없어. 끝까지 고결해

선 :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라면 어떻게 질문했을까 했던 질문 중 이런 게 있다. "루시는 정말로 사랑했을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개념에 순응했을 뿐인가, 그녀는 사랑받는 여인으로는 가능했으나, 내면의 소음은 거의 묘사되지 않았다, 여러분은 그녀의 침묵에서 무엇을 들었나" 그러니까 착한 자기 캐릭터에 매몰된 여자인가?

매 : 그래서 저는 디킨스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보였어요. 그때는 선과 악을 나누던 시대인데, 루시, 다네이, 아버지, 은행원 모두 다 너무 착해.

효 : 그래서 시드니 카턴이 되게 독특하게 느껴져요. 그 시대에 이런 캐릭터가 변하는 인물을 구상하다니 그래서 디킨스가 대단한 것 같다.


선 : 은행원, 사명감이 어마어마하다.

매 : 일 중독에, 고결함 중독자

효 : '업무일 뿐입니다'를 몇 번이나 말하는지

승 : 이름도 '자비스 로리'에요. 아이언맨의 자비스, 일 잘하는 이름 ㅋㅋㅋ



질문5. 우리는 왜 폭력보다 더 자주 침묵을 선택할까?

승 : 폭력이라기보다 '행동'을 할 것인가, 순응하고 가만히 따를 것인가' 이렇게 질문했을 때, 나는 후자에 속하는 인물인데, 나름의 적극성을 발휘해 항상 행동하는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거나 딴지는 걸지 말자라고 생각한다.

다 : 폭력이 ‘행동의 폭발’이라면, 잘 참는게 어떤 비겁함이라기 보다 임계점이 높은 사람들이 있는 거다. 탄핵 사건을 보고 광장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고, TV보면서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 하는 사람이 있는 차이 아닐까?


매 : 참는 사람의 대부분은 안바뀌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선 : 비슷한 맥락에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품는 사람과 죽은 단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 아닐까.

효 : 음악극 '태일'을 봤다. 전태일에 대한 얘기인데, 힘들게 노동운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찾아와 신문을 읽어달라고, 우리 얘기가 실린게 맞냐며 힘들게 번 500원을 내민 여공을 통해 이런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내려는 마음(희망)을 이해하게 됐다.

승 : 희망이 있고 없고 차이만은 아닐 거다. 나만을 위해서 라기 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 같다.

효 : 희망 외에 욕망도 있다, 드파르쥐 부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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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6. 당신에게 가장 좋은 시절이자, 가장 나쁜 시절은?

지금까지 자신의 삶 중에 최선과 최악 이 두가치가 공존하던 시기가 있었는지?

'효'는 첫 직장 그만두고 카피라이터를 준비했던 2년여, 절망과 희망을 극단으로 가지고 있던 시기,

'승'은 코로나 때, 가족에게도 개인적으로도 가장 힘들고 큰 변화가 있었던 시기를 꼽았다. 둘은 너무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지만 그때를 계기로 삶에 대한 많은 생각들이 바뀌었고, 지나고 나니 인생에 필요한 시기였다고. 그때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고.

'주'와 '다'는 최고와 최악이 그날그날의 컨디션과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매'는 1년 여행할 때, 돌아가서의 생활이 걱정되어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고. 또 영화 일이 최고의 상을 받을 때 영화 시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떨어졌고 지금까지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했다.

'선'은 직장을 그만두고 하고 싶던 일을 시작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지만, 그 일을 유지하는 현재가 최악으로 힘들다고, 그래서 매일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일이, 다음 스텝이 있을지 궁금하기도, 두렵기도 하다고.

이야기 끝에 '주'는 떠오르는 말이 있다고 했다. '매일이 행복하지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곰돌이 푸)'




짧은 삶도, 긴 역사도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는 시기가 있다. 그 에너지가 양극단으로 치달아 한 번은 선택을 해야 할 때, 만약 누군가가 다시 ‘바스티유’를 향해 걸을 때, 우리는 그 행렬에 함께 설 수 있을까? 희망이 안보이면 희망을 발명해서라도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야 할 거다. 그래야 때때로 이기고, 때때로 배우며 내일의 누군가는 축제의 장에서 노래를 부를 테니까. 변화와 혁명은 어쩌면 대의와 사명에 짓눌린 사람보다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모르니까’ 가볍게 한 걸음 내딛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지 모른다.


*질문2,4,5는 각각 챗gpt에게 ‘네가 만약 디킨스, 유시민, 이동진, 이어령, 송길영, 김하나, 버지니아 울프라면 <두 도시 이야기>를 읽은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하고 싶니?’라고 물어서 나온 질문들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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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2025년 6 월 14일(토) 오전 11시

장소 : 용산역, 카페 옹근달

참석 : 매, 효, 승, 주, 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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