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2025년 상반기를 가득 채웠던 고전 읽기 프로젝트의 마지막은 미친 사랑 이야기 <폭풍의 언덕>이었다. 이런 미친 사랑 이야기를 읽기에는 다소 나이가 많고, 열정이 부족한 6명의 여자들이 모여서 이 소설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다.
Q. 이 소설 어떻게 읽었나요? 호? 불호?
h _ 이 소설 읽기 전에 1천페이지 짜리 책을 읽었더니, 이 정도는 껌이었다. 3시간 동안 몰입감 있게 다 읽어버렸다. 시작할 때는 불호였는데, 점점 호로 기울어갔다. 고전문학들이 난 척하는 문체가 많아 어려운데, 이 소설은 나레이션이 좋고 술술 읽혀서 좋았다. 액자식 이야기 구성도 마음에 들었다. 한가지 교훈을 얻은 게 있다면, 자식 이름은 똑같은 이름으로 짓지 말자! (이름 헷갈려 죽을뻔)
j _ 아직 초반이라 불호인 상태. 나는 로코를 좋아하지 치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또 하녀가 화자로 나오는데, 그게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
k _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이었겠다. 장면과 배경이 강렬하고, 캐릭터들이 심지어 하인조차 성격이 있고, 몰입감 있는 스토리여서. 찾아보니 심규선의 <폭풍의 언덕>이라는 노래도 있더라.
e _ 시간이 없어서 짧게 짧게 끊어 읽는데도 잘 읽혔다. 아마도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강렬해서 그런 것 같다. 아직 많이 덜 읽었는데, 뒤가 궁금해서 모임 끝나고도 끝까지 읽지 않을까 싶다.
s _ 두꺼운데도 불구하고 잘 읽혔다. 귀족들이 쓰는 어려운 문체가 아니고, 쉽게 써서 잘 읽힌 것 같다. 인간이나 자연에 대한 묘사가 머릿 속에 잘 그려져서, 호불호 중에는 호에 가깝다.
i _ 이번에 새로 읽으면서, 어릴 때 나는 왜 그렇게 이 소설을 좋아했나 의문스러워졌다. 그때는 이런 강렬한 스토리가 진정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보니 미친 이야기였다.
Q. 소설에 나오는 다섯 커플 중 가장 인상적인 커플은? 또한 가장 비호감인 캐릭터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주인공인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커플이 가장 많은 득표를 했다. (주인공이니까 당연하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 커플의 순한맛 버전이 헤어튼과 캐시 커플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DNA가 섞이면서 좀 부드러워졌고, 둘 중 하나라도 바뀌려고 노력한다면 파멸하지 않는 관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작가가 만든 게 이 커플이 아닐까 싶다.
비호감의 향연인 이 소설 등장인물들 중 가장 강력한 비호감은 히스클리프다. 하지만 힌들리와 린턴2세도 히스클리프와 비슷한 득표수를 자랑했다. 린턴은 아프다고 징징대는 캐릭터라서 싫어했고, 힌들리는 아들을 죽일뻔 했다는 점에서. 또한 히스클리프만 미친놈인지 알았다가 캐서린이 더 미친 것 같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Q. 이 비극이 초래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다양하면서도 공감가는 이야기들이 많아 니왔다.
히스클리프가 입양되어 학대만 당했고, 사랑받아본 경험이 없다는 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지만, 지리적으로 워더링하이츠가 너무 고립되어 있었다는 점(집이 두 집 뿐인데, 거기서 다른 이성을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리고 학교 교육의 부재(학교를 다녀야 또래 친구가 생기지!!), 이들을 이끌어줄 부모(혹은 멘토)의 부재, 그리고 캐서린이 히스클리프와 결혼할 수 없었던 것은 계급과 차별적인 시선 때문이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나 같이 공감가는 주장이었다.
Q 사랑에 실패하게 만드는 나의 성격적인 문제점이 있다면?
상대를 고치려고 했다 /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맞춰주려고 했다가 서운함을 느껴 마이너스의 감정이 쌓인다 / 진입장벽(조건)이 높다 /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이 없다 / 일관성이 있지만 애교가 없고 표현하지 않았다 / (연애 안해도) 대리만족 되는 게 많다 / 사막을 혼자 걸어가는 사주를 타고 났다.
이런 다양한 의견을 나눈 끝에, <폭풍의 언덕>을 읽기에 우리는 너무 나이 들었고, 지쳤고, 연애세포가 부족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ㅋㅋ
Q 나에게 사랑의 원형을 만들어준 연애 컨텐츠가 있다면?
j _ 드라마 <커피 프린스 1호점> : 이 드라마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사랑이 이루어진 후 여주가 유학을 떠난다. 그걸 보고서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고,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또한 여주가 남주에게 프로포즈를 하는데, 그것도 파격적이었다.
s _ 귀여니 소설, 만화 <캔디캔디> :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겠다.
k _ 드라마 <미지의 서울> : 최근에 본 건데 서로의 좋은 점을 끌어내주는 관계가 바람직한 듯.
i _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스칼렛이 좋아했던 남자는 자기 옆의 여자 때문에 멋져 보였던 것이고, 실제로 그녀를 좋아해줬던 레트가 떠난 뒤에야 그 사랑을 깨닫는다. 레트가 좋아해주는 동안 귀찮아하고 싫어했던 스칼렛을 보면서,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 다른 눈(어쩌면 저 사람이 내가 좋아서 저럴지도?)으로 보게 되었다.
h _ 만화 <캔디캔디> : 테리우스도, 수잔나도 싫어했다. 그때부터 비련의 여주인공을 안좋아했고, 나는 캔디과라고 생각했다.
e _ 어릴 때는 신분이나 처지를 뛰어넘는 사랑에 열광했고, 20대에 <연애시대>, <그사세> 등을 보며 싸울 때도 '너를 상처주진 않겠어'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 성숙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졌다.
그 외에 히스클리프가 3년 동안 런던에서 뭘 했을까 상상해봤다.
도박을 배웠을 것이다, 인도 등에서 외노자로 살며 돈을 모았을 것이다, 배를 탔을 것이다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상류층 여성들을 후리고 다니며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폭풍의 언덕>을 끝으로 우리의 고전 읽기 프로젝트를 마감했다.
8월부터는 각자 읽고 싶은 책으로 다시 돌아간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