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끝없는대화 Jul 05. 2021

퇴사일기 #3

선택할 수 있는, 멈출 수 있는.

 저번 주 수요일을 마지막으로 출근하고 현재 제주도에 와있다. 여행을 가려해도 딱히 갈 곳도 없었다. 도착해서 스타벅스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는 건 매일 아침 능동적으로 몸을 일으켜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싣고, 점심을 먹고 집에 가고 싶은 발걸음을 돌려 터덜터덜 다시 자리에 앉고, 다음날도 출근을 하니까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는 뜻이다. 매 순간이 움직이거나, 혹은 움직이는 것을 참는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기계적으로 출근하고, 일하고, 오늘도 무탈하게 하루 업무를 마친 후 집에 돌아가고, 그것이 눈 감았다 뜨면 다시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데일리 루틴은 반복적이고 지루한 일상을 적은 에너지 소모로 견디게 해주는 자동항법장치다. 새벽 6시 반에 깨서 출근하는 것이 두세 달이 지나도 첫 일주일과 같이 힘들다면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환경적응력이 좋지 않고, 현상유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하는 데에 오랜 시간과 큰 용기가 필요했다.


 기차에 탑승하는 것도 힘들지만, 기차가 속력이 붙으면 뛰어내리는 데에도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뛰어내리면  충격도 받고, 쭈욱 어딘가로 나아가던 방향과 속력도 한순간에 잃는다. 낙오될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차에 계속 타지 않겠다고 거절하고 뛰어내렸다. 선택의 주체로서 멈추기로 선택한 것은 바로 나다.  잘했거나 좋은 일이 생겨서 그만두는 것은 아니지만,  삶이 얼마쯤은  손아귀에 있구나 싶어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에겐 누구나 원치 않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잠깐 엎어져있다가 눈물을 닦고 툭툭 털고 일어날  있는 선택권이 있다. 자유가 있다.


 여러 사정과 환경으로 퇴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분들도 많을 텐데,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내가 잘했거나, 잘 못했거나, 어쩔 수 없이 내몰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 운이 좋았다. 포기하겠다는 것도 선택이고, 아플 수 있다는 것도 선택이고, 계속하겠다는 것도 선택이다.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운이 좋은 거다. 시간이 흐르며 감사할 일이 하나씩 늘어간다.

 힘든 일이 다소 찾아와도 매번 일어선 것을 보면 난 항상 운이 좋은 편이었다. 무탈하지는 않아도 일어날 수만 있었으면 운이 좋은 거지. 과분한 운을 가지고 있으니 여분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살아가려고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퇴사 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